"살찐 사람 정말 경멸해"... 저한테 왜 이러세요

비만은 게으름의 표상?... 그대들의 공포를 투영하지 말라

등록 2014.04.08 14:56수정 2014.04.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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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sxc

나는 올해로 서른을 맞은 '고도 비만' 여성이다. 아이돌, 다이어트, 성형이라는 키워드가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2014년, 나는 외모 양극화 사회의 최하층민으로 자리잡았다.


며칠 전 카페 옆테이블에서 20대 초중반 남녀들이 큰 목소리로 "난 살 찐 게 제일 싫어. 경멸해"를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 남자친구는 다른 건 다 되는데 나한테 제발 살만 찌지 말래."
"너 엄청 날씬해. 완전 예뻐. 걱정하지 마."
"맞아. 나도 다른 건 다 돼도 살 찐 여자는 안 돼."
"그래, 네 여자친구 날씬하잖아."

바로 옆의 고도 비만 당사자를 두고 들으라는 듯 떠드는 그들 옆에서 나는 완전히 굳어 버렸다. 그것은 마치 바로 옆을 지나가는 흑인을 향해 "깜둥이 완전 싫어"하고 말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을 향해 "장애인 진짜 짜증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 다른 것이라면, 고도 비만 인구는 사회적 약자나 차별 구제 대상이 아닌 게으름의 표상이라는 것뿐이었다.

'초고도 비만'을 벗어난 이후에 이런 일은 실로 오랜만에 겪어보는 충격이었다. 지금도 비만이지만 105kg에 육박했던 20대 초중반 당시, 길을 걷는 것만으로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길을 걸을 때나 자리에 앉을 때 내 바로 옆자리를 피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던 친구들을 나는 기억한다. 길을 걸을 때면 나를 발견하자마자 빠른 속도로 몸을 피하거나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표정도 생생하다. 나는 그 시절 단 한 번도 마음 편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라본 기억이 없다.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한결 생활이 자유롭다. 나는 지금도 20kg 이상 살을 빼야 하는 고도 비만 여성이지만, 길을 갈 때 나를 피하거나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기 꺼려 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날 정말로 놀랐다. 그리고 한편으로 안도했다. "다른 건 다 돼도 살 찐 여자는 안 돼"라고 앙칼지게 말하는 저 날씬한 여성의 희생양이 나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슬펐다.

나를 자살로 내몬 것은 아빠의 죽음도, 가난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살을 결심하고 학교를 결석했다. 그날을 제외하고는 초중고 모두 개근을 했던 내 이력에 비춰봤을 때 그 결석은 정말로 단단한 결심을 의미했을 것이다. 4학년이 되던 해에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 가족은 절망했고 가세는 기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소아 비만에 속했던 내 체중은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1년이 되지 않아 20kg이 불어났다. 

체중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터진 살만이 아니었다. 친구가 아예 없는 왕따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를 놀리거나 소외 시키려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초등학생들의 잔인한 인신공격에 하루하루 우울증이 깊어졌을 것이다. 나로 하여금 자살을 결심하게 한 것은 아빠의 죽음도, 가난도 아니었다. 그것은 뚱뚱한 나를 향한 그들의 말과 시선이었다.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없었던 그 시절의 초등학생을 자살이라는 궁지로 몰고 갈 만큼, 사람들은 배려하지 않았고 잔인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만약 그날 카페에서 그 날씬한 여성의 옆에 앉았던 사람이 내가 아니라 비만한 사춘기 학생이었다면?

50kg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을 시작해 보라

스트레스나 유전자 때문에 암에 걸린 사람을 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통풍, 백혈병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고도비만은 게으름과 결부된다. 다 살이 찌는 이유가 있다고들 쉽게 이야기 한다. 본인들의 몸무게는 마치 매일같이 철저하게 관리하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단과 운동의 결과인양 포장한다. 사람들은 고도비만한 사람들을 향해 자기관리를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소리를 함으로써 스스로는 자기관리 잘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 한다.

고도비만, 특히 소아비만은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가 누군가에게는 암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비만이 되는 것이다. 몸은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한 번 고도 비만을 겪은 사람은 평생 관절 통증, 호르몬 이상, 우울증 등과 싸워야 한다. 50kg이 나가는 사람과 100kg이 나가는 사람의 식욕과 자제 능력, 움직일 때 들이는 노력과 에너지는 같을 수 없다.

표준 체형인 사람에게도 매일 운동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무거워진 몸 때문에 걸을 때마다 관절에 통증이 오는 데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체 얼마나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루의 운동을 마칠 수 있겠는가? 당장 50kg짜리 모래주머니를 차고 운동을 시작해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초고도 비만 환자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기에 너무 우울하다.

초고도 비만은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변에서부터 인지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은 약하고 우울하고 힘들다.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도움, 특히 전문 의료진의 컨설팅과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다.

'비만포비아' 비만이 곧 가난을 뜻하는 자본주의 활극의 시대

남녀의 미모를 경쟁력이라고 칭송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만과 못남은 곧 가난을 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난은 자유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의식주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비만에서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배려라는 이름의 이성을 잊게 만들 만큼 강력한 공포가 그들 무의식 속에 자리잡았다면?

최근 한 프로그램에 출연중인 곽정은 에디터가 자신의 외모를 조롱하는 악플러에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자타공인 자존감 '갑'인 곽 기자조차 그들의 극단적인 배타심의 칼날은 피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전방위로 칼을 맞고 다니는 외모 최하층민 입장에서 가슴이 아프고 공감이 갔다.

비만을 질병이나 유전자의 다름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닌 게으름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핀잔이 항상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니 한편으로 사람들이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반감 또한 동시에 아주 강력하게 내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만은 이제 사회 문제다. 사회 문제란 시스템의 결함에서 파생되며,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큰 이슈다. 몇 년 전만 해도 고칼로리 먹을거리는 많아지고 움직일 일은 적어지는 사회 환경 때문에 비만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횡행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적 양극화에 따라 비만 인구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가난할수록 영양은 낮고 칼로리가 높은 인스턴트 음식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공교육은 학생들을 운동시키지 않으며, 가난한 노동자와 소시민은 운동할 시간을 내기 힘들 만큼 과도한 시간 노동을 한다. 

그러니 뚱뚱한 사람들을 볼 때 마음속 공포가 게으름이나 경멸이라는 단어를 불러오려고 하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과 공감을 가동 시키는 노력을 해보자. 아픈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과 의지만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고 위로하지 않듯, 가난한 사람들에게 성실한 노동만으로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듯, 섣부른 자극이나 조언도 하지 말자. 그들은 이미 스스로 너무나 괴롭고도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나를 향해 그대들의 공포를 투영하지 말라

그래서 그날 자살을 결심한 초등학교 5학년 소아비만 학생은 어떻게 되었냐고? 나는 중학교 이후로 오히려 더 활발하고 외향적이며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딜 가나 리더 활동을 했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솔직하게 도움을 청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내가 소아비만을 겪은 것도,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가난해진 것도,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것도 모두 내 잘못이 아니라고 되뇌었다.

그렇다고 비만에 따른 차별이나 스트레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만 스트레스에 때문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 이후로도 수천 번은 더 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뚱뚱한 사람 싫다'는 주변 사람들의 공공연한 핀잔을 듣는다. 나와 식사를 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적게 먹으려고 노력하거나, 옆에 서서 걷기 싫어하는 지인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회사에 다닐 때는 (지금은 쉬는 중) 이따금씩 살 좀 빼자는 상사와 부장들의 농담 섞인 발언들을 다른 동료들 앞에서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머리가 좋지 않은 대신 지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다. 건강을 위해 체중을 더 감량해야 하고 앞으로도 평생 식욕과 싸워야 하지만 나는 그런 내가 좋다.

그러니 당신들도 내가 좋아하는 나, 그대들에게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도 경멸을 받아내야 하는 나를 향해 그대들의 공포를 투영하지 말라. 뚱뚱한 사람들을 경멸한다고 해서 그대들이 한순간에 자기관리의 신이 되거나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은 앞으로도 영영 없을 테니까.
#비만 #고도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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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이상적인 사회를 꿈 꾼다. 사회가 변화하길 꿈 꾼다. 사람들이 변화하길 꿈 꾼다. 나이를 먹을수록, 꿈 꾸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 내가 어떤 이상을 바라왔던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미래를 꿈 꾸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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