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알려주고 만오천원? 이 나라 무섭다

[모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열 번째 이야기

등록 2014.05.25 21:49수정 2014.05.2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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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 모로코의 시작인 탕헤르 ⓒ 송진숙


북아프리카의 진주라고 불리는 모로코. 영화 <카사블랑카>로 친숙한 나라지만, 모로코를 소개하는 한국어 가이드북은 한 권도 없다. 돌아다니다 보면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모로코로 떠나기로 한 전날까지도 얻은 게 없었다. 운 좋게도 세비야에서 우리와 같은 방에 묵었던 처자 한 명이 모로코를 다녀왔다기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모로코는 호객 행위가 심하다고 아무 곳이나 가지 말라며 본인이 묶었던 숙소 이름과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 배를 타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비행기를 알아보란다. 그러나 당장 내일 떠나는 비행기에는 자리가 없었다. 딸은 너무 아는 게 없는 것 같다고 걱정하며 밤새 인터넷을 검색한다. 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만 찾아 놓고 잠을 청했다.


설마 우리가 마약사범?

모로코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스페인 최남단의 해안도시 타리파로 가야 한다. 프라도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타리파까지 달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유럽이 아닌 아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3시간 반 만에 타리파에 도착했다. 검색한 바로는 타리파에서 탕헤르까지 가는 배는 매시 정각마다 있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15분 전 오후 1시. 캐리어를 끌고 뛰다시피 걸어서 줄을 섰지만 1시에 출발하는 타리파행 페리 매표는 우리 앞에서 끊겼다.

발을 동동 구르며 매표원에게 사정을 해보았지만 눈도 끔쩍하지 않고 창구를 닫는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배인 오후 4시에 출발하는 페리 티켓을 끊었다. 대합실에 앉아 인터넷을 하며 3시간을 때우고 나서야 승선을 했다.

지중해는 색깔이 곱다. 에메랄드빛이란 이런 걸까. 바다를 제대로 감상할 시간도 없이 바로 탕헤르에 도착했다. 맑은 날이면 스페인에서 모로코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라 그런지 겨우 50분 걸렸다. 배를 탈 때는 별다른 검사 없이 여권만 확인하더니 내릴 때는 꽤 까다롭다. 보안검색대에서 엑스레이에 찍힌 화면을 보더니 대기하란다.


다른 승객들이 모두 통과한 뒤에야 우리의 짐을 검사했다.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하여 내 것부터 열었는데 대충 확인하더니 통과를 시킨다. 뒤이어 딸이 캐리어를 열자 짐을 하나하나 뒤진다.

남자 직원 둘은 딸이 챙겨온 로션 샘플들을 보며 이건 뭐냐며 하나하나 묻더니 지퍼백 속의 하얀 가루를 가리킨다. 이게 뭐냐고 물어서 베이킹 소다라고 대답했으나 알아듣지 못한다. 어디에 쓰는 것이냐고 묻기에 설거지와 세탁 및 냄새 제거에 쓴다고 말했으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긴장하니까 쉬운 영어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딸은 영어사전을 검색해 가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직원들은 우리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직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상의를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혹시 우리를 마약사범으로 오해하는 건가. 여기서 여행이 끝나면 어떻게 하지. 몸에 땀만 흐른다. 딸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하나.

잠시 후에 여자 직원이 왔다. 우린 다시 이건 베이킹 소다라며 빵 구울 때도 쓴다고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설명했다. 여자 직원은 가루를 조금 찍어서 맛을 보더니 소다잖아 라며 픽 웃는다. 그리고선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말을 하더니 가라고 한다. 30여 분 만에 풀려났다. 휴! 십년감수 했네. 아프리카까지 와서 하마터면 감옥 갈 뻔했다!

이제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한다. 페리 터미널에서 기차역까지는 제법 멀다. 택시를 잡았더니 거리가 5Km나 된다며 1인당 2유로씩 내라고 한다. 흥정이라면 인도에서 충분히 겪어 본 우리이기에 합해서 2유로로 깎았다. 탕헤르역에서 마라케시행 열차 티켓을 구입했다. 오후 8시 반에 타서 오전 6시에 도착하는 야간열차다. 모로코에서는 또 어떤 여행이 기다릴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누굴 호구로 아나? 길 알려주고 1만5천 원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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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헤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길 탕헤르에서 마라케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본 풍경 ⓒ 송진숙


기차는 나름 쾌적했다. 뭘 탄들 인도보다 못 하겠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침대칸이 아닌 앉아서 가는 좌석을 구매한 건 실수였다. 안 그래도 불편한 잠자리인데 차표를 검사하겠다고 역에 설 때마다 깨운다.

아프리카 땅이어도 밤에는 추운지 딸은 춥다고 몸을 자꾸 움츠린다. 내가 입고 있던 패딩까지 벗어서 덮어 주었으나 잠을 이루지 못한다. 9시간쯤 걸린다던 기차는 11시간이 지나서야 마라케시역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역일 줄 알았던 기차역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깨끗했다. 유럽의 기차역처럼 세련되고 현대적인 시설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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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케시역 생각보다 크고 세련된 마라케시역 ⓒ 송진숙


세비야에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10번이나 66번 버스를 타고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가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이 보이질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냐고 물었으나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모로코가 과거에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영어보다 프랑스어에 능하다. 가는 방법을 프랑스어로 설명해 주었지만 학창시절 제2 외국어로 배운 프랑스어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버스 번호를 종이에 써가며 간신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분명 이곳이 맞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피곤함에 지친 딸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냥 택시를 타자고 한다. 그때 버스가 왔다. 10번 버스를 타고 무사히 제마엘프나 광장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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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의 전통 등.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 송진숙

호스텔로 가는 길은 광장에 있는 45번 오렌지 주스 포장마차 옆 골목에 있다고 했다. 골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모로코 전통 복장인 젤라바를 입은 할아버지가 다가와서는 자기가 길을 알려주겠다며 따라오란다. 딸은 낯선 사람을 따라가도 되냐며 젤라바를 입은 뒷모습이 꼭 사신처럼 보인다고 싫은 내색을 했지만, 비도 오고 길을 찾기엔 지쳐서 할아버지를 따라가기로 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는데 왼쪽으로 돌고 다시 오른쪽으로 돌고 어찌나 돌아가는지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참을 가더니 여기가 호스텔이라며 알려준 대가로 100디르함(약 1만5000원)을 내란다. 이 인간이 누구를 호구로 아나? 10디르함짜리 지폐 한 장을 줬더니 화를 낸다. 자기가 호스텔 문을 안 열어주면 못 들어간단다. 여기 말고 다른 데로 가도 된다고 가는 척을 했더니 욕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며 홱 돌아서 가버린다.

그 남자가 간 것을 확인하고 호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한국인인 듯한 여학생이 있었다. 한국말로 인사를 했더니 반갑게 인사하기에 한국인이냐고 물었더니 조선족이라며 스위스 유학 중에 모로코로 여행을 왔단다. 모로코에 들어오면서부터 여러 사건을 겪었기에 귀찮을 만큼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친절하게 대답해 준다. L은 마침 오늘이 스위스로 돌아가는 날이라며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으니 마라케시 안내를 해 주겠다고 자청한다.

우리보고 아침은 먹었느냐고 묻더니, 괜찮은 파니니집이 있다며 데려가 주었다. 우리는 파니니를 먹었고 L은 이미 아침을 먹었다며 민트티를 마셨다. L은 아까 그 호스텔보다 더 저렴하고 괜찮은 곳이 있으며, 사막투어도 그곳에서 신청할 수 있다고 멀어도 괜찮으면 데려다 주겠단다. 얼마나 고마운지.

파니니집을 나와서 빗길을 걸어갔다. 바지가 빗물에 젖어 걷기가 불편해진다. 호스텔은 생각보다 꽤 멀어서 30여 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호스텔 주인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민트티를 대접해 주었다. 모로코 사람들은 손님이 오면 언제나 민트티를 권한단다.

호스텔 주인과 사막투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가격이 좀 비싼 듯하여 고민하던 차에 한국인인 듯한 젊은 처자가 들어온다. 혼자 여행 중인 한국인 처자 J는 마라케시에 2주째 머무르고 있단다.

스페인을 떠나 처음으로 만난 한국인. 게다가 모로코 정보가 전무한 우리에게 2주나 여행한 J의 등장에 우리는 구세주를 만난 듯했다. L은 공항으로 떠나고 우린 J와 함께 호스텔을 나와 제마엘프나 광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그녀의 단골 가게에 들러 저렴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간식으로 좋은 땅콩과 대추야자도 샀다.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다는 J의 말에 광장으로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마트로 향했다. J의 추천을 받아 사막에서 먹을 초코바와 요거트 등을 샀다. 사막의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한 와인도 구매하려고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이기 때문일까. 직원들에게 물었더니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손으로 가리며 술을 취급하는 마켓이 따로 있다고 말해준다. 번화한 골목을 지나 조금 으슥한 거리로 들어서자 술을 파는 마켓이 보인다. 우린 와인 2병을 사고는 의기양양하게 마켓을 나와 광장으로 갔다.

모로코의 메디나는 복잡한 미로 같아... 숙소 못 찾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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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엘프나 광장 해가 넘어가면 제마엘프나 광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 송진숙


해가 저물고 어둑어둑해지자 텅 빈 광장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장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그전에 우선 사막투어를 알아봐야 했다. J는 자기가 사막투어했던 곳이 꽤 좋았다며 괜찮으면 한 번 가보겠냐고 물었다. 우린 당연히 따라갔고 그녀는 우리 대신 흥정까지 해 주어서 1인당 750디르함(약 11만 원)에 계약을 했다. 이 가격은 2박 3일 동안의 교통비와 식사비, 숙박비가 모두 포함된 것이라 한다.

사막투어는 대부분 700디르함에서 900디르함 사이의 가격으로 흥정을 하게 된단다. J는 더 낮은 가격으로 흥정할 걸 그랬다며 미안해한다. 게다가 여행사 직원에게 우리가 마라케시로 돌아오지 않고 페즈로 갈 계획이니 마지막날 페즈 가는 길목에 내려달라는 부탁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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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엘프나 광장의 밤 밤이 되면 넓은 광장은 상인과 구경꾼들로 가득 찬다. 이 날은 비가 와서 사람들이 적었다. ⓒ 송진숙


해가 지고 여기저기서 불빛이 켜진다.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찾으니 J가 자신의 단골 카페로 가자고 한다. 카푸치노를 한 잔 시키고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포장마차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는가 싶더니 비가 내리자 철수하는 듯한 눈치다. 제마엘프나 광장의 야경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쉽다. 비가 그쳤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적다. 평소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서 시끌벅적하고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단다.

다시 광장으로 내려갔다. 뱀을 부리는 사람, 원숭이와 손을 잡고 걷는 사람이 보인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포장마차 쪽으로 갔다. 자기네 가게로 오라며 호객행위를 하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음에 오겠다고 하니 번호를 말해주며 꼭 기억하란다.

J가 추천해 준 36번 포장마차의 오렌지 주스는 100% 오렌지즙이라 시원하고 달았다. 딸은 스프인 하리라와 깔라마리 튀김도 먹어 보고 싶단다. 달팽이 요리도 도전해 보았는데 국물은 마치 우리의 한약처럼 진한 갈색에 독특한 향이 있었다. 달팽이는 골뱅이 같은 식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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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마엘프나 광장의 다양한 모습 제마엘프나 광장의 다양한 모습들 - 깔라마리 튀김과 소스, 깔라마리 튀김 포장마차의 주인, 달팽이 요리, 오렌지주스를 파는 포장마차 ⓒ 송진숙


호기심에 가득 차서 여기저기 돌아보고 먹어보는 사이에 오후 9시가 되었다. J는 마라케시에 일주일 더 머무르다가 다른 도시로 떠난단다. 우리를 위해 하루종일 함께해 준 J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헤어졌다. 사막투어를 위해 이쯤에서 숙소에 들어간다.

모로코의 메디나(구시가지)는 복잡한 미로 같아서 길 잃을 염려가 많다고 하더니, 이리 가 보고 저리 가 봐도 숙소가 나오지 않는다. 경찰이라는 남자가 와서 길을 알려준다고 했으나 아침에 당한 게 생각나서 떼어버렸다. 스스로 숙소를 찾아보려 헤매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숙소를 못 찾으면 어쩌지. 길바닥에서 자야 하나? 짐이 숙소에 있는데 내일 사막투어는 어떻게 가나. 온갖 걱정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히 생각했다. 아침에 어떻게 나왔는지, 무엇이 있었는지, 어디서 길을 꺾었는지를 정리해 봤다. 3칸 정도의 계단을 올라왔던 걸 기억해 낸 다음 카페 옆이었던 걸 떠올려서 걸었더니 길을 알 듯했다. 길 끝에 애타게 찾던 호스텔이 있었다.

휴! 살았다. 정말로 긴 하루였다.
#마라케시 #모로코 #사막투어 #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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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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