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번 버스의 배신... 내가 어리석었다

[주장]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저상버스... 장애인 위한 대중교통 정보서비스, 아쉽다

등록 2014.04.26 11:47수정 2014.04.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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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참석해야 할 교육이 있어 서울 은평구 녹번동을 방문해야 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다다르는 방법이다. 그것도 한 달 전 즈음에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에 척추가 아직 고통스러운 관계로 대중교통수단(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내려 전동휠체어를 최대한 적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어떤 교통수단과 경로를 취해 이동하면 좋을지 전날 밤부터 약간 생각을 해 두고 잠을 청했다. 그때 세운 계획은 이랬다. 집에서 출발해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저상버스를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인 길음역에 하차해 4호선을 타고 충무로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한다는 것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3호선 녹번역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니... 종로3가의 배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충무로역에 있는 교통약자들을 위한 리프트가 마음에 걸렸다. 4호선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려면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리프트로 이동을 해야 한다. 충무로역의 리프트는 운행 길이도 길이지만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는 곳의 경사가 정말 아찔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하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결심을 하고 혜화역에서 하차해 종로 3가역까지 전동휠체어로 인도를 이용해 이동했다. 종로 3가역에서는 엘리베이터로 환승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막상 도착한 종로 3가역에는 리프트만 두 번을 이용해야 겨우 3호선으로 환승할 수 있었다. 더 문제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탑승해야 하는 리프트가 이동하는 통로가 너무 좁아 지하철에서 하차한 시민들이 모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운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뭐 피하려다가 뭐 만난 격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그렇게 3호선을 탑승하고 녹번역에 하차해 순조롭게 모든 교육 일정들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또 다시 종로 3가역이나 충무로역에서 리프트를 사용해야 할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돌아가는 길은 저상버스를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일단 스마트폰에 설치되어 있는 지도 앱을 구동해 집으로 갈 수 있는 버스와 노선도를 확인하고 어디서 어떻게 환승하면 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그랬더니 녹번역 3번 출구에서 1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에서 녹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는 7730번 지선버스를 탑승해 세검정에서 153번으로 환승하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초간편 노선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함정은 153번 버스에 있었다.

7730번 지선저상버스를 탑승해 룰루랄라 하고 아무 어려움 없이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의 도움으로 세검정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 거의 도착할 때쯤 7730번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백미러를 보시더니 "뒤에 153번 버스가 따라오기는 하는데 저상버스가 아니네요. 조금 기다렸다가 저상버스 타셔야겠어요" 하셨다. 탑승할 때부터 친절하게 도와주시더니 거기까지 신경 써 주시는 마음이 너무 고마워 여러 번 인사를 드리고 하차했다.

7730번 버스기사 아저씨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뒤따라오던 일반버스를 보내고 저상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리고 보니 세검정 버스 정류장에는 버스 운행 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153번 버스의 배신... 내가 어리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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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가 없는 153번 시내버스 우이동과 시내를 연결하는 153번 버스에는 저상버스가 없다 ⓒ 이정훈


그런데 뒤이어 또 한 대의 153번 버스가 세검정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것이 보일 즈음 "어, 저 버스도 저상이 아니네? 한 대 더 보내야겠군"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또 다른 153번 버스도 일반버스고 그 뒤이어 도착한 153번 버스도 그렇고 모두 3대의 153번 일반버스를 보내고서야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4번째 도착한 153번 일반버스 기사 아저씨께 여쭈어 보니 153번 버스는 저상버스가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정보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방법들을 떠올랐다. 그러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버스를 몇 번 환승하더라도 오늘은 버스로만 움직이자"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는 버스노선도를 한참을 들여다 본 후에 결국 110A번 저상버스에 올라타 정릉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보건대학에서 하차했다.

다시 171번 저상버스를 잡아타고 미아리고개 하차한 다음, 거기서 106번 저상버스로 갈아타고 최종 목적지인 수유동에 위치한 강북구청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침몰한 세월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단원고 학생들과 승객들이 무사히 구조되기를 기원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 때 시간이 6시 40분. 응암동에서 출발한 게 3시 30분경이니 3시간 넘게 걸린 셈이다. 강북구청 앞에 도착할 즈음부터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고,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초죽음 상태였다.

그날 겪은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현재 서울시에서 운행하는 일반버스와 저상버스의 비율은 7:3 정도다. 아무런 전제 없이 생각하면 서울시 내에서 운행하는 모든 버스회사가 보유한 버스들의 비율이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각 번호의 버스들 중에서 아예 저상버스가 없는 버스가 있는 것이다. 즉, 내가 탑승하지 못했던 153번 버스 같이 저상버스가 한 대도 없는 노선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만 해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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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보안내 단말기(BIT)가 설치된 버스정류장 모습. ⓒ 서울시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버스들이야 저상버스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을 운행하는 버스 노선은 어떨까? 서울에는 버스 운행 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다. 그 전광판을 통해 이번에 도착하는 버스가 저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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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운행 정보가 서비스되고 있는 '서울대중교통 ' 앱 화면 ⓒ 서울시

문제는 모든 버스정류장에 전광판이 있지 않다는 거다. 내가 겪은 것처럼 버스정류장에 버스 현황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없으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리고 전광판에서는 저상버스 유무 자체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서울시에 알아보니, 저상버스 운행 정보는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과 '서울대중교통'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서비스된다고 한다. 나는 '서울대중교통'이 아닌 다른 앱을 이용하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한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렇게 한 번 고생을 하고 나니 뭐가 필요한지 그제서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장애인에게는 더 절실한 말인 듯 싶다.
#교통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저상버스가 없는 노선의 안내체계가 필요하다 #153번 시내버스는 저상버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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