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일곱 홀로 키운 어머니의 길... 그건 실크로드였다"

[인터뷰] 30년 만에 어머니와의 약속 지킨 최병관 사진작가

등록 2014.05.12 16:27수정 2014.05.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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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남동구 아암대로에 위치한 남동문화예술회관. 지하 1층에 내려가니 갤러리 '화·소'가 있다. 영상물의 최소 단위인 화소(畵素)이자, 화(和)합과 소(疏)통의 첫 글자 발음을 따 만든 '화·소'. 미술·서예·공예·조각·사진 등을 전시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머니'를 주제로 사진전을 준비하고 있는 최병관(63) 작가를 지난 1일 만나봤다. 그는 다음 날 개관 준비로 분주했다.


작품 활동은 혼자, 조용히, 고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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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관 사진작가 ⓒ 김영숙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사진 찍고 정리하는 데 시간을 씁니다. 어디를 잘 다니지 않아요. 인터뷰나 방송에도 많이 안 나가는 편이어서, 나를 보려면 좀 어렵지요."

첫 인상이 조용한 성직자 같았다. 말소리가 워낙 낮고 작았으며, 느낌이 최소한의 말만 허용하고 묵언을 수행하는 고행자 같았다. 자신을 적극 알려야 하는 시대에 오히려 그런 기회를 거부하는 이유를 물었다.

"작가는 작업에 몰입하는 게 당연하죠. 작품 활동을 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그런 거 할 시간이 없어요. 작품 활동은 혼자 조용히 고독하게 하는 거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사진가의 길을 가는 게 작가가 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사라져가는 내 고향과 어머니의 삶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전혀 그런 것과는 무관합니다."

그는 개관 전날이라 바쁜데도 오전에 사진을 찍고 왔다고 했다.


"거의 밤에 작업을 시작해서 새벽까지 하니까 시간이 불규칙하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사진가의 길을 택해서 다른 일에 관심도 없고 구애받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이 길을 택했죠. 폼 잡기 위한 것도 아니고요."

민간인 최초로 휴전선 155마일로

최 작가는 테마 스물여덟 가지를 정해놓고 작업을 해나간다. 예를 들면, 비무장지대(DMZ)나 갯벌, 염전포구 등이다. 그 카테고리 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특히 비무장지대는 그에게 남다르다.

포털 사이트에 '비무장지대 사진작가'라고 치면 그에 대한 자세한 자료를 볼 수 있다. DMZ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부터다. '건군·건국 50주년 국방부 육군본부 작가'로 위촉받아 국내에서 유일하게 민간인 신분으로 2년여에 걸쳐 DMZ 155마일을 왕복 세 차례나 횡단하며 사진을 찍었다. 발목지뢰를 밟았다가 수색대원이 제거해줘 간신히 살아나기도 했단다. 한번은 차가 미끄러져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나무가 지탱해줘 목숨을 건졌으나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기까지 했다.

1998년 9월부터 10월까지 용산전쟁기념관에서 '회한과 긴장 그리고 소망의 땅 휴전선 155마일'이란 주제로 전시했다. 유엔 초청으로 뉴욕 유엔본부에서 2010년 6월 28일부터 7월 9일까지 '한국의 DMZ, 평화 생명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전시회도 열었다.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전시회 개최로 국내보다 외국에 더 알려진 최 작가는 여전히 '남동구'와 '어머니'에 대한 시선 그리고 그리움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으로 바치는 사모곡

이번 전시회 제목은 '어머니의 실크로드'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최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자식 일곱을 남겨 놓고 최 작가가 중학교 1학년 이던 때, 세상을 떠났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7남매를 혼자 책임져야했던 어머니는 허구한 날 끼니를 거른 채 새벽부터 밤까지 밭일과 행상에 매달려야 했다. 첫 기차를 타고 장터로 간 어머니는 해가 오봉산 너머로 숨은 뒤에야 돌아오곤 했다.

소래에서 시흥으로 이어진 다리를, 작가는 '어머니의 다리'로 부른다. 자식 일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힘겹게 장사를 다니던 삶의 고단함과 애절함이 녹아 있는 그 다리를 카메라 렌즈로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저려온다.

"어머니는, 고행의 길이었지만 그 길을 다니며 고생하면서 자식들에게 실크로드를 만들어 준 거지요."

30대 초반, 그가 사진가의 길을 결심한 이유도 어머니와 고향이었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깊고 큰 사랑을 조금씩 깨달았다. 영원할 수 없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고단하게 살아온 고향땅이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 고향이 사라진 지 10년, 그리고 사진을 시작한 지 30년이 된 지금, 이번 전시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

"어머니는 제 종교이자 신앙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어머니는 제 믿음과 사랑과 신뢰지요."

최 작가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난 죽으면 까치가 될 거다, 네 창문 앞에서 까치가 울면 어미인 줄 알고 창문을 열어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저는 동물 사진을 안 찍는데 출판사에서 까치 사진을 꼭 넣어야 된대요. 근데 까치가 얌전히 앉아 있나요? 당장 다음날 출판사에 보내줘야 하는데 날아 다니는 까치를 보면서 걱정만 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생태공원에 갔는데 까치 한 마리가 앉아서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속으로 '어머니가 나 찍으라고 오셨나 보다' 생각했는데, 참 신기했어요."

찰칵 하는 순간에 작품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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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어머니의 실크로드’가 열린 남동문화예술회관 지하1층 갤러리 ‘화ㆍ소’. ⓒ 김영숙


모든 카메라에는 렌즈 앞에 별도로 끼우는 후드가 달려있다. 불필요한 빛을 차단하고 렌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최 작가도 처음엔 남들처럼 후드를 사용했다.

"오랜 세월 사진을 연구해보니 필요 없다는 빛과 버리는 빛을 갖고도 더 좋은 사진을 만들 수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후드를 안 씁니다. 두 번째로 색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칼라필터를 사용하지 않아요."

자연의 색은 사람이 만든 물감의 색으로는 따라올 수 없단다. 그는 마지막으로 트리밍(사진 원판에서 인화지에 밀착하거나 확대할 때 구도를 조정하기 위해 원화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3불(不) 작가'로 불린다. 보통은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잘라내고 색을 보정하는데, 최 작가는 안 한다. 찰칵하는 순간에 작품은 끝난다는 생각에서다.

"보정하고 트리밍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면 그 사진은 버려야죠. 평소 찍을 때 제대로 찍어야지 그림 그리는 사람이 다 그려놓고 잘라내지는 않잖아요? 사진은 빛의 그림이에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같습니다. 사진작가는 카메라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화가는 붓과 물감을 사용하죠. 피아노는 그 자체로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누군가 두드려야 소리를 냅니다. 어느 피아니스트가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명곡이 되는 거죠. 저는 똑같은 원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문명의 편리함을 거부하는 그의 고집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한 번 더 물었다.

"그런 생각을 가졌으면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사진에 집착을 안 했습니다. 명작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죠. 오랜 고뇌와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쉽게 만들어지면 누구나 할 수 있겠죠."

사진은 세계 공통 시각언어

그의 작품에는 옛 고향 사진뿐만 아니라 최근 많이 변한 남동구 논현동의 모습도 담겨있다.

"현대화된 것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오래된 것만 좋은 것은 아니죠. 물론 예전에는 대문만 나서면 찍을 것 투성이였는데 지금은 좀 멀리 나가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지만 문명의 발달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균형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겠죠."

사진은 세계 공통 시각언어다. 글은 규칙을 알아야 해독이 되는 '읽는 언어'지만 사진은 '보는 언어'라 어디에서든 누구나 봐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아름답다는 것과 아름답게 보는 것은 세계 공통어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 분야는 끝이 없어요. 그런 각오를 하지 않으면 도중하차합니다. 고난의 길이지만 여기저기 기웃하면 안 됩니다."

연일 전시회 준비로 무리해서인지 많이 피곤해하는 작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30년 동안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작가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극적인 순간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에요. 비무장지대는 동족끼리 남긴 아픈 역사의 땅이에요. 작업하면서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 때,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꼭 찾아오길 진심으로 소망했어요."

사진작가 최병관이 태어나고 살아온 고향은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산뒤마을 101번지로 수인선 협궤열차가 하루에 세 번, 시내를 오가는 '깡촌'이었다. 보자기로 둘둘 말은 책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메고 흙먼지 날리는 황톳길과 철길을 따라 초등학교를 한 시간 가까이 걸어 다녀야했던 그 길은 그와 고향 사람들이 오랫동안 걸어온 길이었다.

그리움과 아픔이 함께하는 이 길을 '어머니의 실크로드'라고 이름 붙인 후, 그는 사진으로 추억 속의 소래포구와 고향마을 그리고 어머니를 되살려냈다. 작은 주제 여섯 개로 나눠 사진 69점을 전시했다.

작은 주제는 그리운 어머니, 사라진 고향, 고행의 실크로드, 소래포구와 염전, 유난히 꽃을 좋아하신 어머니, 달나라에 계실까이다. 또한 작가가 집필한 책과 관련 자료들이 영상자료와 함께 전시돼있다.

'어머니의 실크로드' 전시는 5월 31일까지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까지.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문의는 032-453-5710으로 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 실림
#최병관 #어머니의 실크로드 #남동문화예술회관 #갤러리 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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