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이 '막말' 김호월 교수에게 쓴 편지

[전문] 고 박수현군 아버지 "당신 학식이 역겨울 따름"

등록 2014.05.14 20:34수정 2014.05.1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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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수현군의 가족사진 ⓒ JTBC 뉴스 캡처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안산 단원고 2학년 박수현(17)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김호월 홍익대 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김호월 교수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향해 "벼슬 딴 것처럼 쌩난리친다" 등 망언을 해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박수현군은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이 담긴 '15분 동영상'을 찍은 당사자다.(관련기사 : 단원고 아이들이 남긴 세월호에서의 '마지막 15분'). 그러나 박종대씨는 지난 어린이날 정부가 마련한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아들의 영정사진을 빼버렸다.

박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정부는 사건 진상조사는 제대로 안 하면서 계속 추모 분위기만 띄우고 있다"며 "우리 아이가 분향소 추모 행사에만 이용되는 것 같아 그곳에 계속 두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검찰 수사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비리에만 집중될 뿐 사고 초동대처와 구조과정에서의 의문점은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는 우려다.

그런 박씨는 김호월 교수의 막말로 다시 상처를 입었다. 김호월 교수는 지난 9일 KBS의 사과와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운 세월호 유족에 대해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난리친다"고 했다. 그는 또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 세월호 유족에겐 국민 혈세 한 푼도 줘선 안 된다"며 "만약 지원금 준다면 안전사고로 죽은 전 국민 유족에게 모두 지원해야 맞다"고 했다.

이에 박씨는 14일 김호월 교수에게 편지를 한 통 썼다. 그는 편지에서 "나를, 우리를 미개한 저항자로 만든 것은, 상황 판단도 하지 못하면서, 이 아픔을 호소할 통로도, 조직도, 제도도 만들어 놓지 못했으면서, 쓸데없는 우월감에 빠져 있는 바로 당신들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오마이뉴스>는 박종대씨의 동의를 얻어 김호월 교수에게 쓴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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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17)군의 생전 모습 ⓒ 박종대


김 교수님! 


우리는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일부 유가족들입니다. 당신들의 표현을 정확히 빌리면 사랑하는 자식들을 지키지 못한 못난 "미개인"들입니다. 

먼저, 최근 국민일보 쿠키뉴스에서 귀하의 발언 내용을 보고, 글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유족 전체의 뜻이 아닌 미개한 일부 유족들의 개인 생각임을 미리 밝혀 둡니다. 

워낙 보고 배운 것이 없어 귀하의 표현대로 미개한 방법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바이며, 우리들의 미개함을 깨우쳐주신다면 평생 스승으로 알고 잘 모시겠습니다. 

1. 동영상에 대한 문제. 이 미개인들은 적어도 유가족이 조작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하의 편파적인 생각을 언론에 도배질하지 마시고, 검찰에 공식적으로 수사를 의뢰하십시오. 만약, 사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미개인들은 그때 귀하와 해경 관계자의 표정이 정말 궁금합니다. 제발 빨리 수사를 의뢰하시고, 검찰에서도 의혹이 있다면 빨리 수사를 진행하여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시기 바랍니다. 

2. '유가족에게 혈세 한 푼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에 대하여 이 미개인들은 현재까지 장례비용 외에 지원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위 요구 사항이 국민 전체의 뜻이라면, 장례비용을 정산해주십시오. 정산해 주신다면 국무총리, 각부 장관, 도지사 등이 보내주신 조화 대금까지 정산하여 집을 팔아서라도 전액 반환하여 드리겠습니다. 

3.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생난리 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는 발언에 대하여 소위 자신이 상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자가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한심함을 느끼며, 타인의 아픔을 가십거리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당신의 학식이 역겨울 따름입니다. 

우리가 청와대에 돈을 요구했습니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습니까? 우리는 공영방송 보도국장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던 것이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아 KBS와 청와대를 향했던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사고 발생시간, 구조 방법의 부적절성, 침몰 후 생존자 구조 지체 이유" 등의 사실은, 유가족이기에 앞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사고 발생 시 당연히 구조의 의무가 있으며,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답답함에, 정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께 호소하는 것이 과연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이 나라에 그분 빼고 호소할 사람이 있습니까? 조직이 있습니까? 제도가 있습니까? 나를, 우리를 미개한 저항자로 만든 것은, 상황 판단도 하지 못하면서, 이 아픔을 호소할 통로도, 조직도, 제도도 만들어놓지 못했으면서, 쓸데없는 우월감에 빠져 있는 바로 당신들이라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귀하께 가장 미개한 방법으로 맞장토론, 끝장토론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토론제안에 앞서 잠시 우리 미개인들이 한 행동을 한번 살펴볼까요? 그래도 우리들은 항의 집회시 욕설을 자제했고, 경찰의 통제도 잘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집회가 종료되었을 때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하였으며, 국민 여러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귀하께서는 이것이 과연 미개인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온갖 부정부패에 찌든 0.01%의 우아한 상층민보다 확실히 아름다운 모습이라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귀하의 판단과 생각이 옳았다면, 계속해서 그 입장을 고수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비겁하게 언론 뒤에 숨어서 사과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우리 앞에 나서서 솔직하게 고백하십시오. "잘, 못, 했, 다"고. 

다시 한번 제안합니다. 이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를 명백히 밝혀주시고, 수용할 수 없다면 그 이유 또한 명백히 언론을 통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귀하가 우아한 상층민인지 천박한 0.01%인지는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선택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4년 5월 14일 

자식을 잃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미개인들 드림
#세월호 참사 #김호월 #박수현군 #박종대 #세월호 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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