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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설악산은 돌산, 돌샘이며, 우뚝하게 뛰어나고 깊숙하고도 싸늘하다. 겹쳐진 묏부리와 높은 숲이 하늘과 해를 가린다"고 하였다. 때문에 설악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대청봉에서 바라본 설악산)
ⓒ 최오균
설악산(1708m)은 남한에서는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힘차게 뻗어 내린 백두대간 배꼽쯤에 위치한 설악산은 북쪽으로는 금강산(1638m), 남쪽으로는 점봉산(1424m), 오대산(1563m)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1690~1752)의 택리지에 보면 "설악은 돌산, 돌샘이며, 우뚝하게 뛰어나고 깊숙하고도 싸늘하다. 겹쳐진 묏부리와 높은 숲이 하늘과 해를 가린다"고 표현했다. 과연 그렇다. 이처럼 깊고 험한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등반사고의 대부분은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부주의, 상식 부족, 욕심, 과로 등에서 비롯된다. 특히 기상변화가 심하고 협곡과 암벽 사이를 오르내리다 보면 실족이나 길을 잃기 쉽고, 조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조난 시에는 우선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119 등에 조난신고를 해야 한다. 당황하여 중심을 잃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 무리한 산행을 감행할 경우 탈진으로 이어지고 생환의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특히 겨울 등반 시에는 추위, 눈, 바람에 대비해야 하므로 비박 장비, 복장, 비상식량, 아이젠 등 기초적인 장비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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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설악산에 오르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낡고 오래된 등산장비를 철저하게 점검하여 손질을 했다. ⓒ 최오균
산에 오를 때는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동국여지승람>(조선시대 지리지)에 의하면 설악산은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고하여 '설악(雪嶽)'이라 불린다고 하였다. 설악산은 여름에도 우박이 내리는 등 기후변화가 심하다. 그러므로 우비, 여벌의 옷 등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극히 산을 존경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에 오를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내가 심장이식을 하고 난 후 나는 지난 5년 동안 거의 산을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다리에 힘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한 달에 몇 번은 산행을 하기로 하고 지난 해 가을부터 가까운 산을 오르기로 했다. 설악산을 오르기 위한 예의를 갖추기 위한 예비등산이랄까? 8000m급 높은 산을 오르는 전문산악인들도 반드시 5000~6000m급 산을 예비등산을 한 다음에 8000m 이상의 산을 오른다.
절친한 친구 P도 산을 너무도 좋아한다. 그는 거의 매주 몇 번씩 그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관악산을 오른다. 그래서 나는 그를 관악산 도인(?)이라고 부른다. 지난 해 11월에는 콩 타작을 하고 그와 함께 오른 산이 고대산(832m)이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은 탓이라 고대산을 오르는 것도 무척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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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은 암벽이 험하고 계곡이 깊으며 기후변화가 심하다. 어느 코스를 통하 완주를 하던 최소한 1박 2일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천불동계곡에서 바라본 기암괴석) ⓒ 최오균
겨울이 지나고 금년 5월 3일에는 고구마 순을 심어 놓고 친구와 함께 소요산(587m) 일주 산행을 했다. 5월 9일에는 도봉산(740m)과 오봉을 일주했는데, 무려 10시간이나 걸렸다. 그렇게 산행을 몇 차례 하고 나니 어느 정도 다리에 탄력이 붙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5월이 가기 전에 설악산을 오르기로 계획을 했다.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산을 오르는 마음은 겸손해야 한다. 산은 말이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러므로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겸손하게 하고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소청대피소와 봉정암에 숙소를 예약을 하고, 신발과 배낭, 스틱, 전지, 비상식량, 구급약, 카메라 등을 점검하고 산행코스를 점검했다.
오래 묵은 45리터짜리 등산배낭을 창고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등산화도 점검을 했다. 배낭과 신발은 등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20년은 족히 넘었을까? 비록 오래되기는 했지만 배낭은 그래도 쓸 만했다. 요즈음 새로 나온 배낭은 가볍고 기능이 더욱 좋아졌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 배낭도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바랑보다는 기능이 훨씬 뛰어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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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등산화를 점검하여 깨끗하게 세탁을 했다. ⓒ 최오균
오래된 등산화, 이정도면 끄덕없다
오래된 등산화가 두 켤레가 있는데 한 동안 신지 않아서인지 한 켤레는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 있다. 또 다른 등산화는 그래도 아직 신을 만했다. 신발도 좀 쓸 만한 것은 보통 20만 원이 넘는다. 새로 사기에는 너무 부담이 가는 금액이다. 고무신에 새끼줄을 동여매고 봉정암을 오르는 할머님들도 있지 않던가.
십수 년 전 어느 가을 봉정암을 오를 때 어떤 할머니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기도 일념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신발을 보니 고무신에 새끼줄을 감고 있었다. 그 할머니 신발에 비하면 비록 해지기는 했지만 내 헌 신발은 매우 양호하고 고급스럽다.
네팔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셰르파들을 보면 슬리퍼를 신고 몇 천 미터 산을 가볍게 오르기도 했다. 비록 고급스런 신발이 아니더라도 산을 오르는 마음가짐이 바로 서 있으면 어떤 산이든지 오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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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급약 ⓒ 최오균
구급약과 랜턴, 비상식량 등도 준비하여 두 개의 팩에 별도로 나누어 보관을 했다. 등산스틱도 쓰던 것을 점검하여 두 개를 준비했다. 스틱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30% 정도의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헤드 랜턴은 구입한 지 아마 30년도 족히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지를 끼우니 불이 들어왔다. 그래서 좀 무겁고 우둔하지만 그대로 넣어 두었다. 아미칼은 1998년 스위스를 여행할 때 구입한 것인데 아직도 날이 새파랗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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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턴 등 비상 도구 ⓒ 최오균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모든 일에는 모름지기 사전에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고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산을 오를 때에도 마찬가지다. 높은 산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Plan(계획)-Do(행동)-See(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시행착오로 인한 고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번에 계획한 설악산 등정 일정은 다음과 같다.
▷5/26 동서울-속초(금강고속)-설악동(7번 버스), 설악동 민박(1박)
▷5/27 설악동-천불동계곡-희운각-소청-중청-대청봉-소청대피소(1박)
▷5/28 소청-끝청-서부능선-봉정암(1박)
▷5/29 봉정암-오세암-백담계곡-용대리-동서울
느린 산행으로 천천히 볼 것을 다 보며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른바 게으른 산행이다. 또 철저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대피소에서 숙박을 하기로 했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오직 산행을 위한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 흔히 설악산에 가면 동해안에서 회를 한사라 먹는 계획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정을 철저히 배제를 했다.
이제 설악산 등산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아내를 집에 두고 홀로 산행을 하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아내도 기꺼이 이번 산행을 도와주었다. 지난 5월 26일 이른 아침 연천군 임진강변 집에서 출발하여 소요산역에서 1호선 전철을 타고, 다시 왕십리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갈아타고 강변역에 도착하니 2시 10분이다. 동서울터미널에서 2시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전철이 지연되는 바람에 10분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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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산스틱도 두 개를 준비했다. 스틱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약 30%의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최오균
동서울터미널 매표소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친구 P를 만났다. 속초행 금강고속 티켓은 미리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좌석은 이미 확보를 한 셈이다. 1인 당 1만7300원, 티켓을 들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속초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동서울 출발하여 한강을 지나자 문득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이란 말이 떠올랐다. 자만하는 자가 손해를 부르게 되고, 겸손한 자가 이익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라는 뜻이다.
지극한 정성은 신까지 감동시킨다고 한다. 이제 나는 아주 낮고 겸손한 자세로 설악산을 향해 가고 있다. 내 생애 일곱 번째로 오르는 설악산 등산이지만 마음은 처음 설악산을 올랐을 때처럼 마냥 설렌다. 과연 설악산 산신은 초로에 접어든 나를 대청봉까지 오르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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