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뒤져도 짝을 찾기 어렵다

[김성호의 독서만세⑫]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

등록 2014.06.14 14:38수정 2020.12.25 15:58
0
원고료로 응원
a

월탄 박종화 삼국지 세트 전10권 ⓒ 달궁


<삼국지>는 비록 우리의 역사가 아니지만 국경과 시대를 넘어 계속 전파될 만한, 또 그럴 가치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어찌보면 고작 80년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과 사건을 조명하고 여기에 생명력을 부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현재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한 업적은 한 명의 소설가에게 주어질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주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삼국지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부터 삼고초려 후 육출기산에 오장원에서 천수를 다하기까지 실로 놀라운 지략과 행적을 보여준 제갈량, 천하를 손아귀에 움켜쥐고 당대 영웅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던 조조, 적벽에서 조조를 깨치고 동오를 기반으로 중원을 넘보았던 손권, 그 밖에도 수많은 영웅,명사들의 이야기가 밤하늘의 별 처럼 흰 종이를 검게 수 놓는다.


월탄을 비롯해 이문열과 황석영, 정비석과 장정일 등 <삼국지>만도 십여 차례 읽어온 나지만 읽을 때마다 그 방대하고 깊이있으며 교훈적인 내용에 새로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탁의 암살을 실패하고 말을 빌려 내닫던 조조의 기지가 여백사의 일가를 몰살시키는 다심함과 성급함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그의 목을 자르는 불의에 가서 닿을 때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한실을 생각하며 의를 좇아 조조를 따르다 그의 불의를 보고 몸을 빼낸 진궁이 여포와 만나 마침내 조조에게 사로잡히던 장면이며 끝끝내 꺾지 않던 사나이의 기개에 그를 희롱하던 조조가 단 아래까지 쫒아가 눈시울을 붉히던 장면은 또 어떠한가.

뇌물과 미녀에 넘어가 의부의 예로 섬겼던 정원과 동탁을 베고 압도적인 무용으로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찬사까지 받으며 천하를 횡행하던 여포가 그 불의와 불신의 끝에 조조에게 사로잡혀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 마음이 작고 눈이 어두워 시대를 보지 못하고 황제를 참칭하여 결국 비명횡사하고마는 원술의 최후,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않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아 우세한 전력으로도 패배를 취했던 원소의 이야기까지. 이런 영웅들의 마지막에서 또 어떤 감정을 느꼈던가!

끝까지 옳음을 이야기하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던 공융의 모습이나 한실에 보답하고 충성하려는 태도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던 동승과 길평, 마등과 경기 등의 용기에 새삼 감동한다. 조조에게 사로잡힌 어머니를 위해 마음으로 섬기는 주인을 떠나가는 서서의 지극한 효심과 너그럽게 그를 보내주는 유비의 넓은 마음을 보았으며 아들의 앞날을 위해 스스로 목을 매다는 서서의 어머니의 사랑과 기개를 살핀다.

천리를 멀다 않고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명의 장수를 벤 관우의 의리와 용맹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유비와 관우라는 당대 영웅호걸을 만나 형으로 섬기며 기꺼이 사재를 털어 의용군을 모집한 이래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용맹을 뽐낸 장비의 의기와 열의는 일백년을 수백번 넘더라도 조금도 옅어지지 않는다. 적병으로 가득한 장판파를 역으로 내달리며 마침내 품에 작은 주인을 안고 돌아온 조운의 무용담은 여전히 이 소설의 가장 유명한 대목 중 하나다.


필마단기로 북해의 포위를 뚫었던 태사자의 의기와 지략에 감탄하고 기꺼이 몸을 내던져 주인의 목숨을 구한 조무와 전위, 주태의 희생과 용기에 감동한다. 나라를 위해 몸바쳐 고육계를 실행한 황개의 충성이며 이를 잘 써 적벽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제갈량을 넘지 못해 비극적으로 죽고 마는 주유의 안타까운 최후를 본다. 정군산에서 하후연의 목을 베어 떨어뜨린 황충의 노익장과 합비에서 오나라 대군을 격퇴하는 장료의 용병, 관우에 맞서 끝끝내 싸우다 마침내는 죽고마는 방덕의 최후도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순욱과 양수를 보며 놀라운 재주를 갖고도 섬길 이를 잘못 고르고 말할 것과 말하지 않을 것을 가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웃는다. 원소의 충신으로 죽은 전풍과 저수의 절개, 몸을 아끼지 않고 조조를 도운 곽가와 가후의 절묘한 지략, 방통의 안타까운 죽음과 여몽과 육손의 놀라운 활약을 밤새워 읽고 또 읽는다. 맹달의 교만과 유봉의 어리석음을 한하고 강유의 치우침과 후주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태도를 안타까워 한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물들이 제 뜻을 펴고 또 펴지 못하며 스러져간다. 결국은 모두가 스러지고 애써 쌓은 업은 공이 되었지만 이 한 편의 대작이 가슴에 새기고 간 감동은 결코 공으로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오탈자를 비롯해 부분적으로 다소 오류가 엿보여 안타까웠지만 월탄의 문장은 분명 매력적이고 이야기 자체가 워낙 대작이며 걸작이어서 만족스러웠다. 이 작품을 일컬어 고금을 뒤져도 짝을 찾기 어려운 대작이라 평한 월탄은 과연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중국에 나관중이 있어 삼국시대 수많은 영웅들이 시대를 초월해 독자의 마음을 울려 절로 웅혼한 기상을 키우게끔 되었으니 어찌 민족과 국가의 홍복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웃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삼국지>라는 작품을 가진 그들이 너무도 부럽고 또 그렇지 못한 우리의 상황이 안타깝다.

역사서 속에 담겨있는 딱딱한 사료에서 벗어나 인구에 회자되는 역사야말로 진정으로 후인들을 감명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도 인물과 역사가 없지 않은데 아직까지도 <삼국지>에 견줄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삼국지>(나관중 지음, 박종화 옮김, 달궁 펴냄, 2009년 1월, 전10권, 100000원)

월탄 박종화 삼국지 1 - 도원결의, 난세가 영웅을 만들다

나관중 지음, 박종화 옮김,
달궁, 2009


#삼국지 #월탄 박종화 #나관중 #삼국지연의 #적벽대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장난 우산 버리는 방법 아시나요?
  2. 2 세계에서 벌어지는 기현상들... 서울도 예외 아니다
  3. 3 삼성 유튜브에 올라온 화제의 영상... 한국은 큰일 났다
  4. 4 세계 정상 모인 평화회의, 그 시각 윤 대통령은 귀국길
  5. 5 마을회관에 나타난 뱀, 그때 들어온 집배원이 한 의외의 대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