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 짚는 '세월호' 원인규명, 범국가조사위로 풀어야

참사 근본 원인은 '한국사회 시스템' 문제... 권한·기간 제한 없는 조사위 절실

등록 2014.06.17 14:20수정 2014.06.1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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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이 길을 잃었다. 현재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하여 국정조사와 선장 재판, 유병언 체포 등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 규명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쟁점에서 멀어지고 있다. 이전의 재난사고 때와 비슷하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얼마나 허약한 시스템 위에서 살고 있는지를 잔인하게 보여주었다. 세월호는 언제 어디에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현대 위험사회의 특징, 그리고 낡은 선박, 비정규직인 선장, 일방적인 규제완화와 같은 한국 고유의 문제를 정면으로 보여주었다.

유병언 체포·국정조사만으론 '세월호' 본질적 원인 규명 어렵다

당연히 원인규명을 해야 한다. 원인규명도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어야 한다. 원인규명을 해야 우리가 과연 안전한지, 안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와 정치권이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을 시도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원인 규명이 되기는 어렵다. 국회는 국정조사를 시도하고 있다. 국정조사, 당연히 해야 한다. 사고의 원인과 관련한 국가의 책임, 사고 이후 대응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국정조사로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는 어렵다. 정치적 책임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과 같은 여야의 대립구도에서는 제대로 된 국정조사조차 힘에 겨워 보인다.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에 대한 재판과 유병언 체포도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 원인 규명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본질적인 원인 규명과 거리가 멀다. 재판은 형사책임을 묻는 절차이므로 선장과 유병언의 책임을 묻는 데에만 집중한다. 한계가 있는 것이다. 292명이 숨지고 12명이 실종상태인 세월호 참사는 진행형인데 원인 규명은 이렇게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국의 지성 총동원해 범국가적 조사위원회 발족을 제안한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세월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 시스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우리 시스템에 내재해 있다. 결국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를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한국의 지성이 모두 동원되어야 겨우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과 관련한 전문가나 지식인으로는 부족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원인이 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 현장노동자, 사회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인문학자, 법학자 등 한국의 지성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의 문제점이 어떻게 세월호로 나타났는지 토론을 통하여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 권한과 기간의 제약이 없어야 한다. 특히 광범위한 조사권한이 부여되어야 한다. 정치권 특히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처벌위주가 아니라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정치적 책임과 형사책임은 국정조사와 재판의 몫이다. 필요하다면 면책을 조건으로 조사하는 방안도 생각해야 한다.

셋째, 정략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만일 부담이 된다면 조사결과 발표를 박근혜 대통령 임기 후에 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의 문제는 국정조사로 해결하면 된다.

넷째, 위원회의 의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위원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위원회는 오직 원인규명과 대책을 통하여 우리가 십년 이상 참조할 보고서만 내면 충분할 것이다. 

국가·지자체·기업·개인 등 '주체별 위험도' 정확한 실태조사 필요

조사위원회의 과제는 한국 사회 위험의 실태조사, 그 원인의 규명, 장단기 대책 마련이다. 먼저 위원회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실태를 조사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사회의 위험도를 모른다. 이러니 대책이 제대로 수립되지도 않고 그나마 나온 대책도 일관성있게 추진되지 않는다. 현대사회는 복합위험사회이므로 항상 위험하지만 과연 얼마나 위험한지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한다.

위험도는 먼저 위험을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 주체별로 검토되어야 한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가계, 개인별로 각각 위험도가 측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험을 만든 주체에 책임을 묻기 위한 기초이다.

위험도는 또한 사전, 사후단계에서 모두 측정되어야 한다. 즉, 제품제조나 건설단계의 사전단계, 시장에서 상품이 소비되는 시장단계, 사고발생 이후의 단계 등 세 가지 단계에서 각각 측정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 위험의 세가지 특징 - 장비노후·숙련인력 부족·규제완화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 규명은 위원회의 두 번째 과제이다. 현대 사회의 위험의 특징과 함께 우리 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대형사고에 더 취약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한국 사회가 최근 더욱 위험해진 이유는 첫째, 물적 장비의 노후, 둘째, 구조조정으로 인한 숙련 인력의 부족, 셋째, 규제완화의 열풍 때문이다. 안전전문가인 박두용 한성대 교수의 지적이다.

물적 장비의 노후화는 최근 투자의 부진으로 새로운 장비가 투입되지 않아 비롯된 것이다. 과거의 위험한 장비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세월호는 도입 당시 18년된 배였다. 과거 같으면 여객선으로 운용할 수 없는 선박이었다.

숙련인력의 부족은 최근 급격하게 이루어진 비정규직화, 외국인 근로자의 증가, 고령화, 외주화로 인한 것이다. 이로 인하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현장을 잘 모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위험에 대한 현장 대응력이 떨어진 것이다. 배에서 먼저 빠져나온 세월호 선장도 책임감없는 1년짜리 계약직이었다. 청해진 해운의 직원 안전교육비는 지난해 54만 천원이었다고 한다.

규제완화는 한국 사회의 위험을 증가시킨 주범이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시작된 규제완화는 박근혜 정부에서 최고에 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규제를 쳐부숴야 할 원수, 암덩어리로 불렀다. 규제를 철폐하기 위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소위 규제개혁 끝장토론)가 열린 것은 지난 3월 20일. 그로부터 1달이 되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한국이 위험한 것은 한국의 경제성장, 발전전략에 따른 결과이다. 한국 사회 전체를 분석하지 않고 개혁하지 않으면 세월호 같은 위험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안전예산 1%로 증액·범국가적 조사위 이끌 리더십이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위원회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장 필요한 개혁과제는 단기간에 마련되어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10년 이상 개혁해야 할 장기과제는 철저한 준비 속에 정권에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되어야 한다. 위원회는 정권을 뛰어넘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래의 한국 모습을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의 확보이다. 2014년 한국의 재난관리 예산은 1조 원이 되지 않는 9440억 원이다. 한국의 1년 예산이 357조7천억 원이므로 재난관리예산은 0.26%이다. 이것도 내년이면 8610억 원으로 줄어들게 되어 있었다. 전체 안전관리 예산은 정부도 모른다. 기업들의 안전비용은 집계조차 안 되고 있다. 이들 경제주체들의 안전비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위험을 만들고 관리하는 기관에게 안전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

여기에서 나는 국가가 국가 예산의 1%를 재난관리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지금의 4배이다. 다른 안전관리예산도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안전이 확보되는 시점까지 순차적으로 확대할 것을 제안하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 기업의 안전예산을 1%까지 우선 확보하고 이를 1%씩 10년간 증가시켜보자.

물론 1%는 어림잡아 하는 말이다. 정확한 비용은 향후 전문가들의 연구로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예산의 1%도 안전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안전한 사회에 살 수 없을 것이다. 현대 한국 사회는 그만큼 위험하다.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은 절박하고 중대하다. 한국의 모든 역량이 투입되어야 한다. 한국의 지성을 자처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야 겨우 위험의 실태, 원인, 해법을 그나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때에만 겨우 안전한 사회는 아니지만 덜 위험한 사회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이 표류하고 있는 지금 범국가적 위원회를 제안하고 이끌 통 큰 리더십이 더욱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세월호 원인규명 #범국가조사위 #안전예산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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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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