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형생활 반년... 조국 교수가 쑥스러워 하는 이유

[서평] 조국 교수의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등록 2014.06.19 10:55수정 2014.06.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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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다산북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회 참여가 비교적 활발한 편에 속한다. 지식인의 일성이 필요한 때, 그는 세상을 향한 자신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해 왔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미 정년을 보장받은 그리고 학문적으로도 성공한 교수라는 직업을 고려하면 어지간한 소신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조국 교수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플라톤의 발언을 인용했다.


"정치 참여를 거부하는 데에 대한 벌 중의 하나는 당신보다 저급한 자들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책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통해 뒷받침된다. 이 책에서 조 교수는 '공부'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풀어놨다. 공부라는 일관된 인생의 항로에서 조 교수의 과거 '국가보안법 전과자'와 현재 '서울대 교수' 사이에는 일관된 뭔가가 있다. 이 책은 그 접점을 찾아간다.

책은 네 단락으로 구성돼 있다. 교육철학이 엿보이는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과 더 나은 미래는 개인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한다는 '호모 레지스탕스-저항하는 인간' 그리고 따뜻한 가슴을 가지라는 '호모 쥬리디쿠스-정의로운 인간'과 주변을 돌아볼 것을 촉구하는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

공부란 자신을 알아가는 길이다

책에는 어린 조국 교수를 키웠고, 현재 그가 실천하고 있는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조국'이라는 강렬한 이름은 학창시절 그를 선생님들의 '주요 타깃'(?)으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외우기 쉽고 주목받는 이름이라, 수업 중에 불리는 빈도가 높았단다. 문제를 풀어 보라, 준비해 오라. 그는 은근히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단계까지 나갔다고 고백한다.


"특이한 이름 덕에 나는 칭찬의 맛을 알게 되고 인정 욕구가 충족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치켜세워주고 칭찬해주는 것, 그것이 아이의 마음속 빛을 밝히는 방법이다."(본문 중에서)

또한 그는 오로지 '좋은 성적'만을 갈구하는 획일적인 사회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 합쳐져야 명문대를 진학할 수 있다고 했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이 아이의 학력과 스펙에만 매달린다. 하지만 꼭 '일류 인생'이 '일류 행복'을 주는 건 아니다. 우선 자신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게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진정한 '나'를 찾은 사람이 주체적 개인이 된다. 자신의 분야에 진정성을 가지고 꿈을 키워가는 열정은 우열을 나눌 수 없다. 주체적인 개인은 서로를 존중하며 연대한다. 주체적 개인의 연대는 진정한 '나'와 '나'의 어울림이다. 갖가지 색깔을 가진 개인이 어우러지는 무지개 같은 연대는 개인을 더욱 창조적으로 만들고 사회를 더욱 풍성하고도 다양하게 만든다."(본문 중에서)

부마항쟁(1979), 10·26(1979), 서울의 봄(1979~1980), 5·17(1980), 5·18(1980), 제5공화국 출범(1981)이 조 교수의 고교 3년 동안 일어났다. 조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과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 사이에서 큰 괴리감이 느껴져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조 교수의 고민은 계속됐다. 더군다나 자신이 공부하는 법이, 군부독재의 법률 자문을 하고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 모습은 그의 경향에 더욱 불을 댕겼다. 그는 형사법이 싫었다고 했다. 수업도 많이 빼먹었다. 독재정권시절, 각종 악법은 조 교수를 그렇게 만들었다. 수사 절차에서 고문이나 폭행이 다반사로 이뤄졌으니 말이다. 형사법학은 이 처참한 법 현실을 외면하거나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 우리나라의 형사법학을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기준에 맞추고 싶다고 밝혔다. 그것이 진짜 '선진화'이고 '글로벌화'라고 지적했다. 형사법이 결국 자유와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가 되기를 희망하며 그는 지금도 공부하고 실천한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본문 중에서) 

"굴복하지 마라, 그리고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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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손배 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약칭 '손잡고') 출범식 당시 모습. ⓒ 유성호


조 교수는 1993년 울산대 교수로 재직하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아래 사노맹) 사건에 휘말렸다.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을 무렵, 조국 교수는 주체사상과 선을 긋고 레닌주의 이론과 페레스트로이카 이론을 접하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을 고민했다. 마침 학교 선배가 '사노맹' 참가를 권하자 그는 독점재벌과 대결하는 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손을 잡았다.

그는 형사법 학자로 직접 수형생활을 경험하며 값진 경험을 했다고 술회했다.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더 혹독한 생활을 해야만 했던 이들에 비해 반 년도 안 된 수감생활이 쑥스럽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와서는 다시 창살 밖의 세상이 자유로운 것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자유를 옥죄는 쇠사슬이 곳곳에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쇠사슬은 너무나 견고하게 우리를 묶고 있다. 공부는 호기심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끊임없이 생겨나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과연 이 쇠사슬이 옳은 것일까?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본문 중에서)

개발 정책에 맞서 주거권을 지키다 '용산 참사'를 당한 철거민들, 정리해고 후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해고노동자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차례차례 20대 초반에 백혈병에 걸려 숨진 노동자들을 열거하며 그가 인용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예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경제성장은 우리 대부분에게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압도적 다수인데도 여전히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도 더 심각하고 냉혹한 불평등과 더 불안정한 조건 및 더 많은 추락과 원통함과 모욕과 굴욕을 겪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즉, 사회적 생존을 위한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싸움을 예고한다."(<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중에서)

그러면서 조 교수는 개인의 힘에서부터 사회 변화가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불씨는 내면의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불이 활활 타오르기 이전에 개인의 가슴 속에 잉걸(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이 피어나야 한다.

버클리 로스쿨 유학 시절 논문을 지도했던 필리 교수는 조국 교수에게 연구 상황을 보고받다가 단호하게 "킬 유어 파더(Kill your father!, 네 아버지를 죽여라)"라고 말했단다. 조 교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무슨 존속살해를 명하나? 그러나 이는 대가들의 이론을 비판 없이 수용하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권력·권위·통념·관습 앞에 겁먹지 말라는 의미였다고.

"다른 말 다 제쳐두고 이 말부터 하고 싶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기죽지 마라. 쫄지 마라. 길들여지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굴복하지 마라. 그리고 저항하라."(본문 중에서)

그래서 공부는 필요하다. 저항을 위해, 공감을 위해, 정의를 위해.
덧붙이는 글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조국 지음 / 다산북스 펴냄 / 2014.06 / 1만5000원)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다산북스, 2014


#조국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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