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GOP 문제아였다
'관심병사'에 대한 오해들

[주장] 고립감·부조리·수면부족의 GOP 삼중고... 군대라는 시스템이 문제

등록 2014.06.25 10:20수정 2014.06.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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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무개 병장 체포작전 이틀째인 지난 23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와 마달리 사이 도로에서 작전에 참가한 22사단 장병들이 부대가 매복하고 있던 앞산에서 총성이 들리자 급히 뛰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임아무개 병장이라는 사람처럼 GOP(일반전초)에서 근무했다. 내가 근무한 지역은 중동부 전선인 화천이었고, 그가 근무한 곳은 동부전선 쪽이다. 임 병장이 근무한 부대가 금강산 관광갈 때 버스가 지나는 큰 철문(통문)의 개폐를 담당하는 부대라고 설명하면 알만 한 사람은 알 수도 있을 것이다.

2011년 4월, 서른 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늦깎이로 군에 입대한 나는 고령이라 관심병사였고, 한부모 가정이라 관심병사였다. 체력이 약해 관심병사였으며, 말년에 학생운동 경력으로 기무사 조사까지 받았으니 관심병사 갑(甲)류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GOP는 24시간 철책 경계를 서는 곳으로 보통 오전(전반야)·오후·후반야, 이렇게 3개조로 나눠서 근무를 선다. 이 근무는 3개 분대가 1주일 단위로 돌아가는데, 임 병장은 사고 당일 아마도 오후 근무조였을 것이다.

3개 조 중에 유일하게 일반 부대와 같이 오후 10시에 취침을 해서 오전 6시에 기상하는 오후근무조였던 그는 아마도 오전 6시에 기상해서 급하게 밥을 먹고 우천을 대비해 오전 내내 작업을 하다가, 또 급하게 점심을 먹고 급하게 근무에 투입됐을 테다.

그리고 사고 시각이 오후 8시 15분인 것으로 보아, 전반야 근무조와 교대를 마치고 탄약 반납을 위해 내려오는 길에 '어떤 이유'로 사고를 친 것이다. 보통 실탄 15발이 들어있는 탄창을 장착하고 탄알 1발을 장전한 상태로 근무를 서기 때문에 그 15발을 점사(한 번에 3발씩 연속 발사)로 갈기거나 조준사격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그가 실탄 60여 발을 들고 도주했다며 무거운 죄질을 부각하며 군의 탄약관리실태를 고발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이 15발을 소총에 장착하고 60발을 조끼 주머니에 휴대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미 12명에게 난사를 한 마당에 주머니에 있던 탄창(탄알집)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도주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고립감, 부조리, 수면부족의 삼중고... GOP의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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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중부전선에서 육군 제6사단 청성부대 장병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건 발표 이후 세간의 관심은 그가 '관심병사'라는 것에 모아졌다. 한 개인의 부족한 인성에 주목한 것이다. 그러나 늦깎이에 입대한 나도 관심병사였으며, 한부모 가정 출신은 무조건 관심병사가 되고, 여자친구와 헤어져도 관심 병사가 된다.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도 관심병사다(GOP에서는 소대장이 정기적으로 병사와 일대일 상담을 한다).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군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관심병사가 되기도 하니, 우리 모두는 군의 입장에서 '예비' 관심병사이기도 하다. 누구나 관심병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 GOP는 더욱 관심병사가 되기 쉽다. GOP가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극심한 '고립감'이다. 사방팔방이 산과 나무뿐이고, 사람이라곤 선후임과 간부뿐이니 돌아버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사복을 입은 민간인은 1주일에 한번 올까 말까 한 '황금마차' 아저씨가 전부다.

게다가 근무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주말은커녕 주 1회 비번도 없고 휴가도 맘대로 나가지 못한다(간부도 마찬가지다). 뿐만이랴, 밥조차 급하게 먹어야 하는 처지다 보니 계급이 높아져도 여자친구에게 전화할 여유도 많지 않다. 민간인통제선 안쪽에서 근무하는 조건이라 군생활의 활력소인 '면회'나 '외박'조차 불가하니 그 고립감이야 말로 할 수 없다.

GOP가 사람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수면부족'이다. 말했듯이 GOP는 3개조가 교대로 근무를 서는데, 1개조가 철책에 올라가면 2개조가 막사에 남게 된다. 예를 들어 오전시간대에는 오전근무조가 철책에 올라가고 후반야근무조는 취침에 들어가게 되서 오후근무조만 깨어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오후 근무조가 오전 내내 작업과 청소와 취사도우미를 다 해야 하는 조건이다.

그나마 오후 근무조는 괜찮은 편이다. 오전/전반야 근무조의 경우에 새벽에 기상해서 오전 근무를 서고 내려오면 식어 버린 점심을 먹어치우고는 오후 내내 작업을 하다가 전반야 근무에 들어간다. 전반야 근무에 들어갔다가 자정 12시 즈음에 막사로 내려와 급하게 씻고 잠자리에 들어도 5시간을 제대로 못잔다. 규정상 전반야 근무 전에 한두 시간 정도 수면을 보장해야 하는 규정이 있지만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작업 인력이 부족해서 그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GOP뿐만 아니라 군대 어디에나 존재하는 '부조리'도 평범한 사람을 관심병사로 만드는 큰 요인이다. 불과 3년 전, 서른 둘에 이등병이었던 내가 생활하던 생활관은 분대원 10여 명 전체의 모든 빨래를 이등병이 도맡아 해야 하는 '분대빨래' 전통이 있던 곳이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아서 정말이지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선임들의 전투복은 물론 양말과 속옷까지 모두 빨아서 말리고 다 마르면 차곡차곡 개어서 선임들의 관물대부터 부족하지 않게 채워야 했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으면 한 여름에도 이등병들은 이틀씩 속옷을 입어야 했지만, 선임들은 하루에 두번씩 갈아입을 수 있게 맞춰줘야 했으니 빨래가 잘 안 말라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 때엔 내 손에 쥐어진 소총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GOP는 부조리가 생기기 좋은 조건인데, 이는 약 30여 명의 소대급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잘해봐야 간부가 2~3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병사들 사이에서 '군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일정한 부조리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간부들이 조금만 눈을 감으면 그만큼 병력관리와 작전수행이 편해진다. 간부가 적으니 윗선에서 순찰을 나오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는 그 간부들끼리만 합의되면 될 일이다.

침묵과 동조를 대가로 관심병사에서 해제되었지만

나이도 많고, 학생운동 경력으로 인해 기무대의 조사가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군생활 내내 나 스스로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나이가 많으니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지' '괜히 튀어서 주목받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은 입대 직전까지 사회운동을 하던 나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들었다.

이등병 시절, 누가 봐도 부조리임이 확연한 '분대빨래'를 하면서도 침묵했다. 나와 띠동갑의 선임이 매일 같이 뒤통수를 치고 커피 심부름을 시켰어도, 알고 보니 대학 후배였던 소대장이 욕설을 퍼부었어도 침묵했다. 다른 이들이 그렇게 당해도 침묵했다. 계급이 좀 올라가고 나서는 어느 정도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군대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동조하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나는 일찌감치 관심병사에서 해제되었고, GOP생활 반 년 만에 중대 행정병으로 차출되어 관심병사가 아니어야만 맡을 수 있는 '총기·탄약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더 지나 GOP 임무가 해제되어 우리 부대 전체가 민통선 바로 밑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분대에 '맞맞후임(2계급 아래 후임)'이 들어왔다. 일주일 정도 같이 생활했을까? 그 후임은 화장실에서 전투화 끈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병원으로 옮겨 살아나는 듯 했으나 그대로 죽어 버렸다.

온 부대가 발칵 뒤집혔고, 우리 중대는 간부며 병사며 할 것 없이 헌병대의 조사를 받았다. 당연히 나를 포함한 분대 선임들은 개별 조사를 받기도 했다. 괴로웠다. 나는 침묵과 동조의 대가로 관심병사에서 해제되었지만 그 대가로 후임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돌아왔다. 힘들었을 이등병 후임에게 아무런 자극도 하지 않은 대가로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징계를 받지 않은 대가는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았으리라.

관심병사에서 해제된 내가 정상이었을까

지난 22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명파리 인근 야산에서탈영한 초병과 체포에 나선 병력들과 교전이 일어난 뒤 배치된 헌병 특수임무대 대원이 교전이 일어난 지역을 바라보며 경계를 서고 있다. ⓒ 연합뉴스


군 복무 중에 연대장이 한 번 교체되었는데, 나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교체 전후 두 명의 연대장을 각각 1:1로 면담하여 GOP 상담병 차출을 지시 받았다. 모든 훈련과 근무 열외를 조건으로 GOP를 돌아다니며 이등병 상담을 해주라는 것이었다. 이를 거절하면 연대장의 지시에 '지시불이행'으로 영창에 가도 모자랄 일이고, 상담병이 굉장히 편한 직책이었지만 나는 그 지시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들을 상담해서 무엇이 바뀌겠는가. 내가 잠깐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서 생활관으로 돌아가면 선임들에게 '너 그 아저씨한테 무슨 말 했냐'며 혼날 텐데. 내가 상담해 주는 것 만으로 그의 군생활을 아무것도 바꿔줄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최근 언론에서 '재정부족으로 전문상담관 채용 못해'라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군대라는 공간이 사회와 매우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동시에 '군대는 군대다워야 한다'며 군대와 사회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식도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다른 한편에서 군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보곤 '관심병사'라며 딱지를 붙이고 의심어린 눈초리를 보낸다. 이 모든 것은 모순관계에 있다. 이 모순관계에 따르면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잘 적응한 사람이 군대에서 부적응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거꾸로 사회생활을 군생활처럼 하면 당연히 이상한 것 아닌가.

이 사회가 이번 총기난사 사고를 다루는 시선은 임 병장이 '관심병사'라는 데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전제를 걷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건은 한국군대에 언제나 내재되어 있을 것이며 언제든 재발할 것이다.
#총기난사 #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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