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갔다 온 남편, 정말 불쌍합니다

[주장] '폭력의 정당성' 가르치는 군대, 임 병장만의 잘못인가

등록 2014.06.25 15:16수정 2014.06.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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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임 병장에 대한 기사다. 그는 다섯 명을 죽이고 일곱 명을 다치게 했으며 무기를 들고 탈영해서 민간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인이 나라를 위협에 몰아 넣었다. 때문에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관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과연 그만의 죄일까, 그만의 잘못일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가야만 하는 곳 군대. 정치인들의 도덕성을 논하는 데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아들들이 군대에 다녀왔느냐 하는 것이다. 연예인들도 군복무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심한 경우 연예 활동을 못하기도 한다. 군대에 갔다 왔느냐는 어느새 우리나라 남성의 도덕성과 건강의 척도가 되었다. 입사지원서에도 남성의 경우 군대에 대한 사항은 꼭 기입하도록 하고 있고 이제까지 그에 대해 논란을 제기한 사람들은 없다.

처음 만나는 남성들이 친해지는 것도 바로 이 군대 이야기를 통해서다. 어디에서 복무했다, 무슨 일을 했다, 어떤 일을 겪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남성들은 하나가 된다.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특히 면제 받은 연예인들 이야기를 하면서 분노를 토해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뭐가 양심적이냐고, 비양심도 그런 비양심은 없다고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들의 말이 다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은 많은 고생을 했고, 그것을 견디어 냈고, 그 속에서 '어려움을 버티어 나가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제대 후에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는 데에도 그런 힘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 동안, '사람을 죽이는 일'을 훈련 받고 난 그들이,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배운 그들이 과연 좋은 경험만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폭력을 거부한 무리들을 향해 무조건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선임이 준 고추장에 눈물겨웠다던 남편

남편은 2002년 군복무를 했다. 남편에게 몇 가지 이야기만 들어도, 군대라는 곳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곳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이 처음 주특기를 배울 때에, 선임은 남편을 호되게 나무라고 기합을 주며 주특기를 가르쳤다고 한다. 하나 알려주고 그것을 제대로 안하면 바로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다시 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알려준 것을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 번을 반복하고 연습을 해야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임은 자신이 '배운'대로 그것을 후임에게 가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겨우 그것을 다 배웠을 때, 식판에 고추장을 주면서 격려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 고추장이 참 눈물겨웠다고 말한다.


만약에 학교에서, 수학 공식 하나를 가르치고 그것을 제대로 못하면 바로 기합을 준 후에 다시 가르치는 방식으로 공부를 가르친다면, 학생은 배울 것은 배우겠지만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그는 수학을 잘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그것을 좋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옆에 사람이 있으면 수학 문제를 풀겠지만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졌을 때에는 수학을 제일 먼저 내팽개칠 것이다.

하지만 군대에서의 학습은 이런 식이다.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 있는 곳에서 하나 하나 자상하게 가르치는 인격적인 방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나라도 두려울 정도로 각인 시켜서 가장 급박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군대에서의 훈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결코 사람을 먼저 생각하거나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주특기를 가르치는 것은 좀 낫다. 남편이 당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동료가 당한 것은 더 끔찍하다. 남편의 동료에게, 한 상사가 발냄새가 난다고, 늘 발을 물에 담그고 있으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동료는 늘 발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때리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남편의 동료는 그 때에, 그리고 그 후에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얼마나 큰 치욕과 두려움을 느꼈을까. 어쩌면 평생 남는 트라우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훈련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약해 보이는 남을 괴롭히는 이런 것도 군대에서 늘상 있는 일이고, 묵인되는 일이다. 바로 군대가, 폭력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임 병장의 행동 '충격적'... 그만 비난할 수 있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 나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고, 그곳에서 폭력을 배워야 하고, 그들이 제대하고 나서 이 나라의 일꾼이 되고 아빠가 되는 이런 나라가, 과연 건강한지 나는 의문이다.

정상적인 남성이라면 군대에 가야 하는 이 나라에서, 그 정상적인 남자들에게 '폭력의 정당성'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 나라는 짊어지고 갈 사람들에게 그러한 비인격적인 교육을 하는 것을 왜 사람들은 묵인하고 있는가.

임 병장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그가 군인이었고, 제대를 3개월 앞둔, 그래서 오랜 시간 이미 군복무를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에는, 그의 폭력적인 행위는 결국 학습된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군 복무한 기간뿐만이 아니다.

분단 이후로 군 복무가 의무가 된 상황에서 임 병장은 군복무를 한 아버지를 두었을지도 모르고 군복무를 한 선생님, 군복무를 한 어른들이 이끌어가는 나라에서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폭력을 학습했을 수도 있다. 이미 학교가 그렇고 가정이 그렇고 나라 또한 그렇다.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입시 제도와 그런 입시 제도에 발 맞추어 가는 가정,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나라 모두가 폭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폭력을 대놓고 가르치는 군대를 강제적으로 가야 하는 나라, 그런 곳에 다녀와야 비로소 정치가로도 연예인으로도 인정 받는 그런 나라에서 우리는 반성할 것이 없는가. 과연 이 모든 잘못을 임 병장의 잘못이라고만 보아야 하는가.
#임병장 #탈영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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