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병장은 '호모 사케르'일까

[주장] 보호받지 못한 약자... 우리 사회의 맨얼굴 드러났다

등록 2014.07.01 09:38수정 2014.07.0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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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머리를 잘라서 잔인하게 죽이는 중국 청년들과 도로변에서 개를 굽는 노인이 인터넷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다. 어떤 누리꾼들은 욕설 섞인 비난을 하기도 하고 어떤 누리꾼들은 도로변에서 개를 굽는 노인을 두고 저 시대의 사람에게는 저 행위가 도덕적으로 문제될 만한 행동인지 몰랐을 것이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찬반에 대한 논의를 미루고 이 논란을 보면 이것이 '논란이 될 수 있는 가치가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들 이견이 없는 듯했다. 만약 바퀴벌레의 머리를 자르고, 지렁이를 잡아서 구웠다면 '논란이 될 수 있는 가치가 있었을까??' 아마 논란이 되더라도 잠잠해졌을 것이며 그 논란의 대해서 논의부터 되었을 것이다.

왜 개를 죽이면 논란이 되지만, 바퀴벌레나 지렁이를 죽이면 (아마도) 논란이 되지 않을까? 이런 경우라면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라는 개념을 빌려와 설명할 수 있겠다. 호모 사케르는 '죽일 수는 있지만 희생제물이 될 수 없는 존재'들이다. 돼지나 닭 등은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있지만 길가의 바퀴벌레나 지렁이를 제사상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바퀴벌레나 지렁이를 죽인다 한들 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소위 '임 병장 사건'에 대해서 지금까지 밝혀진 경위를 보자면 군대 내 왕따 문화가 사건의 주요 원인인 듯하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너만 힘드냐. 군생활 다 힘들다' 등 예상되는 반응부터 심지어 '왕따 당하는 놈들은 전부 본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등등의 괴랄한 논리를 펴는 자들도 있었다.

임 병장은 왕따였다는 이유로 처벌이 덜 해져서도 안 되며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왕따 임 병장'이라는 이유로 '살인자 임 병장'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살인자 임 병장'이라는 이유로 '왕따 임 병장'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몇몇 사람들은 임 병장을 '호모 사케르' 같은 존재로 보는 것 같다. 그저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도 없고, 죽여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존재 말이다. 호모 사케르는 본인이 선택한 실수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제도의 문제와 부조리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임 병장의 경우를 살펴보면, 관심병사인 임 병장을 실탄을 장착한 채 근무를 서게 했고 임 병장의 잘못된 행동들을 '개인적인 방식'으로 처벌하는 행태가 드러난다. 임 병장으로 하여금 정신과 치료 혹은 의가사 전역 등의 제도적 방안을 마련한 군대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고 임 병장의 잘못에 대해서 '군법'이라는 '공적인 방식'으로 처벌하는 것 역시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서 개인의 선택과 권리는 사라지고 개인의 폭력은 정당화된다. 또 한 개인은 개인이 아닌 호모 사케르로 간주된다. 호모 사케르는 '공적인 방식'의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그는 어디까지나 사회 밖의 타자이기 때문에.

사회는 개인이 모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개인은 보호받을 권리도 있지만 다른 개인을 함부로 훼손할 권리도 없다. 또 개인은 사회의 약속과 의무를 지켜야 하며 또 사회와의 약속과 의무를 위반하면 처벌 받을 의무도 있다. 그런데 왜 현 상황에서 개인의 의무와 권리는 보이지 않으며 약속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 않는가?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의무와 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증오와 책임 전가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 지켜져야 할 의무와 권리에 대해서는 논해지지 않는가? 물론 인간적으로 임 병장을 미워하는 것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고 임 병장을 옹호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증오는 증오로서 분출하고 원인이 무엇이고 지켜져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제2의 임 병장 사건을 막을 수 있고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의 청년들을 지키는 길이다.

최근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대한민국의 맨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맨얼굴에는 대한민국의 부조리와 가치의 망각이 가득했고 '책임 전가'만이 있었다. 언제까지나 사건의 책임을 개인에게 뒤집어씌우고 비난해서 해결한 사회의 풍토는 가득 채워진 음식물쓰레기통처럼 흘러넘치고 있다.

사회적 타자가 된 호모 사케르를 사회 안으로 품는 논의가 필요하다. 아마 그 논의는 굉장히 낯설 것이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과 낯선 논의 속에는 새로운 가치로의 발돋움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나, 이 글을 읽는 당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호모 사케르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빠져 있다. 더 이상의 한 사람도 타자로서 버려지지 않기를. 그리고 그 의무와 권리를 갖게 될 수 있도록.
#임병장 #총기난사 #호모사케르 #왕따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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