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에서 옷 벗고 수영을... 이럴 순 없다

[셀림의 팔레스타인 여행 세번째 이야기] 다라그마 가족의 끝나지 않은 투쟁

등록 2014.07.02 11:37수정 2014.07.02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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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도가 넘는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 칼리드 다라그마(Kalid Daraghmah) 가족의 집을 찾아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근처까지만 가는 합승택시에서 내려서 그늘이라고는 전혀 찾아보기 어려운 비포장 길을 걸었다. 길을 물어볼 사람 하나 없는 고립된 지역을 20분 정도 묵묵히 걷다 보니 도로 바로 옆에 집 한 채가 나타났다. 혹시나 문을 두드리니 다행히 다라그마 가족의 막내 누르(Nour)가 문을 열어준다.

나를 포함한 ISM 활동가들은 지난 6월 30일 오전, 수년째 이스라엘 정착촌민들과 군인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있는 다라그마 가족을 방문했다. 다라그마씨는 격정적이고 격양된 말투로 그 동안 본인이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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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 활동가와 필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칼리드 다라그마씨 ⓒ 이동화


다라그마 가족은 알 루반(Al-luban) 지역에 거주하다가 2006년 친척으로부터 현재의 칸 알 루반(Khan al luban) 지역의 20도넘(donum, 18800평방미터)과 집 두 채를 구입했다. 다라그마씨는 이 지역에 올리브 나무와 각종 채소 및 농작물을 재배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이스라엘 불법정착촌인 말레 레보나(Ma'ale Levona) 마을과 엘리(Eli) 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다라그마씨의 집을 지나는 길은 바로 말레 레보나 정착촌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였다(현재 그의 집으로 가는 도로는 이스라엘 정착민에 의해 봉쇄됐고, 그 도로의 열쇠도 정착민이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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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그마 씨의 집과 주변 토지, 가운데 하얀색 벽돌로 된 1층짜리 건물이 집이고 그 뒤와 옆이 다라그마씨의 토지이다. 집 윗쪽의 도로가 정착촌으로 향하는 도로이고, 정착민은 이 도로를 타고 내려와서 공격을 하였다. ⓒ 이동화


다라그마씨는 처음부터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공격을 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 6개월 동안에는 친근한 말투로 "하비비(친근한 이를 부를 때 쓰는 아랍어), 당신의 땅과 집을 팔 생각은 없니? 얼마에 팔고 싶으니?"라면서 접근했다. 하지만 다라그마씨가 절대 땅과 집을 팔 생각이 없다고 하자 정착민들은 적대적인 태도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 집 농장과 집으로 내려와서 나무를 자르고, 음식을 가져갔다. 심지어 내 집 근처의 샘에서 가족들이 집안에 있는데도 옷을 벗고 수영을 했다."


이사온 지 1년이 지났을 때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집에 불을 질렀다. 상황이 갈수록 위험해지자 다라그마씨는 본인과 첫 번째, 두 번째 아들만을 남기고 나머지 가족들을 다시 알 루반 지역으로 이주 시켰다.

하지만 계속되는 정착민의 공격과 그에 대한 저항으로 본인과 두 아들은 반복적으로 체포와 구금을 경험하게 되었다. 현지에서 이스라엘 정착촌과 팔레스타인인이 충돌하면 이스라엘 군인은 무조건 팔레스타인인을 영장 없이 행정 구금한다(최대 6개월까지 가능). 하지만 정착촌민은 처벌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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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한밤중 다라그마씨의 집에 들이닥친 정착민의 차량 ⓒ 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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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다라그마씨의 집을 공격하기 위해 모인 정착민들과 이스라엘 군인들, 그들은 머지 않아 다라그마씨의 집을 공격한다 ⓒ 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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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다라그마씨 집에 급습하는 정착민들, 손에는 큰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다. ⓒ ISM


정착민의 공격과 적대행위, 이스라엘 군인들의 체포와 구금이 계속되자, 다라그마씨는 국제인권단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ISM을 비롯한 EAPPI(Ecumenical Accompaniment Programme in Palestine and Israel)은 지난 2012년 8월부터 다라그마씨 집에서 체류하며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의 적대적 행위를 감시하고 사진을 찍는 연대활동을 진행했다.

2012년 8월 한 달 동안 정착민과 이스라엘 군인에 의한 적대행위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었다. 다라그마씨는 특히 2012년 8월 28일에 있었던 공격을 언급했다.

당일 아침 8시 30분경 약 10여 명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다라그마 가족의 집에 쳐들어와서 막내 누르를 집어 던지고 아내인 타그리드에게도 폭력을 행사해, 결국 아내와 누르는 병원에 실려갔다. 그리고 다라그마씨와 두 아들에게는 긴 나무 막대기와 심지어 총을 사용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고, 다라그마씨의 차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파손됐다. 하지만 출동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둘째 아들 잘랄을 정착민 폭행 혐의로, 다라그마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관련 <알 자지라> 보도:  http://www.aljazeera.com/indepth/features/2012/10/2012102712652415500.html
ISM 보고서: http://palsolidarity.org/2012/08/child-wounded-by-settlers-my-brother-was-arrested-for-protecting-my-mother/)

이후에도 정착민들은 수시로 다라그마씨의 집과 농장에 난입해, 욕설을 하고 돌을 던졌다. 때로는 폭력도 행사했다.
(관련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imS2M6F4eDg
ISM 관련 보고서 http://palsolidarity.org/2013/12/harassment-and-arrest-in-khan-al-luban/
ISM 가장 최근 보고서 (2014. 4. 20) http://palsolidarity.org/2014/04/khan-al-luban-israeli-army-attack/)

요즘은 어떠냐는 질문에 다라그마씨는 한 달 전쯤의 공격 이후로 최근 라마단(이슬람 음력9월, 금식월) 기간이어서 그런지 정착민들의 공격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찾아간 날은 라마단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두 시간 가깝게 토해내는 다라그마씨의 표정과 말투를 통해 그가 얼마나 힘겹게 지냈는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야기 후반부에 현 팔레스타인 정부의 무능도 질타했다.

"이스라엘 정착민은 이스라엘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정부는 전혀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중략)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차지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라그마씨는 라마단 기간이어서 음료수나 차를 대접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보고 자고 가라고 한다. 다음날 일정이 있었던 우리는 다음에 꼭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나는 다라그마씨 집 현관문 앞에 달린 여러 대의 CCTV와 철재 현관문을 뚫은 총탄 자국에 눈길이 갔다. 그와 그 가족은 여전히 자신의 집과 가족, 땅을 지키기 위한 전쟁 그 한가운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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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그마 씨의 집으로 향하는 도로, 정착민에 의해 봉쇄되었고, 철문도 정착민이 열쇠를 소유하고 있다. ⓒ 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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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라그마 씨의 집 대문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그리고 철문 좌측 상단에 보면 정착민의 총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 이동화


다라그마씨가 거주하는 구역은 유대교의 역사적인 장소로 그가 살고 있는 집은 오트만 제국 시기의 상인들의 숙소였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Al-Lubban_ash-Sharqiya

현재 이스라엘 극우 단체인 레가빔(Regavim)이라는 단체는 다라그마씨의 소유한 집과 토지가 이스라엘 역사적 유적지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강제 수용해야 한다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현재 이스라엘 최고심급인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과거 자신들의 땅이었다며 현재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으려는 이스라엘 정착민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정과 너무도 닮은 꼴이다.
덧붙이는 글 이동하 기자는 현재 팔레스타인 여행 중이며, 'ISM'이라는 단체에서 단기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점령 #정착민 #정착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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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디(ADI)에서 상근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 재난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장활동가와 함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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