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년 만에 진짜 절터가 된 지리산 법계사 터

법계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등록 2014.07.01 17:29수정 2014.07.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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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 삼층 석탑 ⓒ 임윤수


※이 기사는 '믿거나 말거나 한 법계사 산신기도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법계사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넝쿨에 줄줄이 달려 나오는 호박 같은 결과들을 기도발이라고 표현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2004년, 법계사가 554년에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 된 이래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 동안 법계사에서는 밤이 되면 관솔불과 호롱불, 촛불로 어둠을 밝혀야 했습니다. 2~3년 전부터 태양광 전지판 몇 개를 놓고 전기를 생산했지만 그 용량이 워낙 미미해서 호롱불이나 촛불과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랬던 법계사에 2004년, 관해 스님이 법계사로 올라오시던 해부터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법계사가 창건된 지 1460년 만에 제대로 밝힌 전기 불빛이니 결코 작은 일은 아닙니다.

기분 좋은 우연, 1500년 만에 공급되는 전기

전기가 들어온 일까지 관해 스님이 기도를 열심히 올린 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뤄진 일의 크기에 비하여 기도 기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밥을 할 때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듯 어떤 기도가 제대로 이뤄지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계사 종무소로부터 100m 쯤 아래에는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로터리 대피소와 공공시설이 있습니다. 이 대피소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배선공사가 진행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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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계사에 전기가 처음으로 들어온 다음 해(2005년) 초파일 ⓒ 임윤수


기분 좋은 우연이지만 관해 스님이 법계사로 올라오시던 해부터 법계사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계사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또 있었습니다. 물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도시들을 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물(강)을 끼고 발달합니다. 물 없이는 사람이 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전기야 불편만 감수하면 호롱불이나 촛불로 대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해발이 1450m나 되는 고지에서 넉넉한 물줄기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해 스님은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올리던 중 꿈결처럼 현몽한 산신할머니가 물이 날 자리를 일러주시더랍니다. 마치 꿈은 꾼 것 같았지만 너무도 선명해 산신할머니가 일러준 장소를 찾아 얼른 표시를 해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비웃기조차 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로터리대피소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주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랬고, 심지어 수맥을 찾아 물을 개발해 주는 전문가조차도 측정을 해보고는 이곳은 물이 날 자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해 스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파면 물이 폭포수 쏟아질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산신기도 중 알려준 물자리, 하루 200톤 물량

결국 고집에 가까운 스님의 주장이 관철돼 관정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관정을 뚫어야 할 법계사는 해발 1450m나 되는 고지입니다. 필요한 장비를 마음대로 이동해 사용할 수 있는 여건도 못됩니다. 여건이 그렇고 자리가 그러하니 장비 또한 제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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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옆 바위에 올라가 법계사를 설명해 주시는 관해 스님 ⓒ 임윤수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만을 옮겨 와, 산신할머니가 일러준 자리에 관정을 뚫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문가도 측정을 한 뒤 나올 물이 별로 없을 곳이라고 했던 그 자리에서 암반수가 콸콸 솟구쳐 올라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장량을 측정해 보니 하루 200톤이 넘는 물이 나오는 량이었습니다. 법계사를 목마르게 했던 물, 가뭄이 들거나 겨울이 되면 갈증을 참듯이 견뎌야 했던 물 문제는 이렇게 해결됐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루 200톤을 쓸 수 있는 물량이면 조금 넉넉하게 써도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도 법계사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해 스님이 유·무언으로 당부하는 첫 번째는 다름 아닌 물을 아껴 쓰라는 당부입니다. 물을 허비하거나 오염시키는 건 물에 대한 배은망덕이자 자신을 병들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걸 강조하고 계십니다. 

전기가 들어오고 물까지 넉넉하게 나오니 밑으로부터 올라오면 좋은 것들은 어느 정도 다 올라온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법계사가 가지고 있는 진짜 문제, 1500여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권력이 있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니 스님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갖지 말아야 할 것은 갖게 못하게 하는 것도 큰 가피

6월 28일 오후, 스님께서 따라주시는 차를 마시며 스님께서 법계사에서 생활한 10년 이야길 들었습니다.

한때는 너무 배고팠던 시절, 사회공부조차 제대로 시켜주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부모님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복이라 생각했답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가피(加被,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들에게 자비의 힘을 베풀어 이들을 보살피는 은혜)를 말합니다. 가피가 주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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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에서 온 불자들에게 법문을 하고 계시는 관해 스님 ⓒ 임윤수


'모자라는 것, 얻고 싶어 하는 걸 얻게 해 주는 것'도 부처님 가피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관해 스님께서는 그동안 당신께서 살아온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지 못하게 해주는 것'도 커다란 복이며 가피라는 생각을 하게 됐답니다.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갖게 됨으로 허세를 부리고, 누리지 말아야 할 권력을 남용하다 자칫 잘못되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보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배고프게 살고, 가난한 절에 들어가 힘들게 살다보니 딴눈을 팔수가 없더랍니다. 남들과 겨룰 만큼 사회공부를 하지 못했으니 출세나 명예를 좇기 위해 다툼을 벌일 이유가 없더랍니다. 당장 주어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살다보니 스님 당신의 성정이 보이고, 스님 본래의 모습이 보이더랍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출가도 하지 않았을 테고, 사회공부를 좀 더 했으면 어떻게라도 한 자리 해 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게 당신의 모습이더랍니다. 사회공부를 좀 더 했더라면 큰절 주지나 어떤 감투라도 써보려 여기저기 줄을 대가며 출세(?) 좀 해보려 수작을 부렸겠지만 아예 그럴 여건이 되지 못하다 보니 오로지 주어진 현실에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살다보니 가난하고 많이 배우지 못한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천왕봉에서 흐르던 정기를 끊어놓고 있던 철심 제거

구도자로서의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부처님 제자로 부끄럼 없이 생활하며 기도 또한 열심히 올리며 살다보니 알게 되더랍니다. 스님이 법계사로 올라와 천왕봉산신제를 두 번째로 올리던 2005년 6월 7일(음력 5월 1일),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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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법계사 그리고 쇠말뚝이 제거된 현장 ⓒ 임윤수


일제 강점기,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정기를 끊어 놓기 위해 우리나라 명산 곳곳에 일본인들이 철심을 박아 놓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설화로만 내려오는 게 아닙니다. 전국 곳곳, 명산 혈맥이라는 자리에서 발견 돼 제거되는 철심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올리는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천왕봉에서 법계사 쪽으로 흐르고 있는 산줄기, 그 산줄기를 타고 흐르는 기를 끊어 놓으려는 듯 무시무시하게 박아 놓았던 철심이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길에 발견됐습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천왕봉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오는 중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다니지 않던 길이었지만 왠지 누군가가 오늘은 이리로 가라는 듯이 끌어당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무심코 들어선 길에서 발견되었습니다.(관련기사 : 지리산 혈맥 끊은 대형철침 제거)

그렇게 발견된 쇠말뚝은 민족정기선양위원회원들을 위시한 사람들에 의하여 6월 25일 제거되었습니다. 쇠말뚝을 제거하고 나니 스님은 10년 묵은 체증이 뻥 뚫어지듯 한 기분이 들며 가슴이 후련해지더랍니다. 하지만 왠지 가슴 한 구석에는 찌꺼기 같은 답답함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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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제거 된 쇠말뚝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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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제거된 쇠말뚝. 무려 80Kg이나 나가는 크기였습니다. ⓒ 임윤수


첫 번째 말뚝을 뽑아낸 이후에도 스님의 기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말뚝을 발견한 날로부터 100여일 쯤 될 때, 첫 번째 쇠말뚝을 뽑아낸 자리로부터 80m 쯤 아래에서 두 번째 쇠말뚝이 다시 발견 되었습니다.(관련기사 : 개천절날 지리산 쇠말뚝을 뽑다)

두 번째 쇠말뚝은 10월 3일 제거했습니다. 두 번째 쇠말뚝까지 제거하고 나니 천왕봉에서 발원한 정기가 걸림 없이 법계사 까지 쏟아지는 느낌이 들더랍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산신할머니가 바로 응답을 해주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더랍니다.

쇠말뚝을 뽑고 나서부터 정말 알 수 없는 일들이 줄줄이 해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가 의아스러울 정도의 일들이 줄줄 이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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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제거된 쇠말뚝. 첫 번재로 발견된 쇠말둑 보다는 조금 가벼운 크기였습니다. ⓒ 임윤수


관해 스님이 법계사로 올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토지사용료'를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받았답니다. 그때까지는 1500년 가까이 된 법계사가 남의 땅에 들어서 있는 절일 거라는 건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고 봤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법계사가 자리하고 있는 터는 국가소유로 산림청이 관리하고 있는 땅이더랍니다. 1500년이나 가까이 된 법계사지만 국가소유의 땅에 매년 80만 원 정도의 세를 내며 살고 있는 더부살이 절집이더랍니다.

땅이 남의 땅이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각도 지을 수 없었고 모자라는 요사로 늘릴 수 없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라도 법계사가 자리하고 있는 터만큼은 온전한 부처님 공간으로 만들어 드리고 싶어지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님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더랍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또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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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법당이 꽉 차 적멸보궁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 ⓒ 임윤수


쇠말뚝을 제거하고, 정말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기 시작한 지 2년 째가 되던 2007년 말쯤, 재정경제부에서 보낸 공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법계사가 사용하고 터를 관리하는 관리청이 산림청에서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로 변경되었으니 토지사용료를 재정경제부 지정계좌로 납부하라는 공문이 였습니다. 관리청이 기획재정부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에 행여 매매가 가능한지를 알아 봤지만 이 또한 법계사가 그 땅을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더랍니다. 

1500년 만에 진짜 절터가 된 법계사 터

기다리는 마음, 부처님의 가피가 반드시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다시 또 2년여 동안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던 2009년, 법계사가 사용하고 있는 토지 관리청이 기획재정부에서 환경부로 변경됐으니 토지사용료를 환경부로 납부하라는 공문이 오더랍니다. 관리청이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또 알아보니, 매매는 불가능하지만 같은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같은 가격대의 토지와는 맞교환이 가능하다고 하더랍니다.

사방팔방으로 알아보니 법계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같은 지리산 국리공원 내에 3000평의 사유지가 있더랍니다. 사유지 토지주를 만나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며 땅을 팔 것을 부탁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넘기고 나서야 그 땅을 살 수가 있었답니다. 토지를 맞교환하려면 두 토지의 가격이 90% 이내로 근접해야 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있더랍니다. 어렵게 마련한 땅을 감정평가원 두 곳에서 평가한 결과 법계사 터 가격에 90만 원이 모자라는 가격으로 평가되며 90% 이내라는 조건이 충족 되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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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에도 끊이지 않는 법계사 기도 ⓒ 임윤수


모자라는 90만 원은 현금으로 지불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3000평을 환경부가 관리하는 국유지로 넘기고 나니, 그동안 세를 내며 사용하고 있던 법계사 터를 법계사 소유로 할 수 있게 되더랍니다. 지목 또한 종교용지로 변경되니 1500년 동안 세 들어 살던 법계사 터가 이제야 온전한 불국토로 되는 순간입니다.

스님께서는 정말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을 뿐인데 누가 일부러 처리를 해 주듯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 듯 착착 진행됐으니 이거야 말로 믿거나 말거나 한 일들이 현실에서 기적처럼 이뤄진 부처님 가피가 아니겠냐고 하셨습니다.  

보색대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빨간색은 어디나 놔도 빨간색이지만 보색대비를 이루는 파란색 과 함께 놓으면 더 빨갛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밀양에 있는 어떤 절 주지였던 스님은 절 소유의 땅은 물론 사명대사의 부친 묘터까지 팔아먹어 현재 영어의 신세가 돼 부끄러운 출가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 스님이 있어서 인지 1500년 동안 극가소유였던 땅을 온전히 절터로 만들어 놓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는 관해 스님의 기도가 더더욱 지극하게 느껴집니다.

한 번 일이 성사되기 시작하니 막혔던 물이 터지듯이 모든 일들이 술술 성사되기 시작했습니다. 법계사에는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루나 이틀쯤 머물며 기도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도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없어 기도를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머물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법계사가 토지 소유자가 되고, 지목 또한 종교용지로 바뀌니 국가 소유의 땅이라서 지을 수 없었던 요사도 지을 수 있고, 지리산 자락에 은은하게 법음을 울려줄 범종을 매달 수 있는 범종각도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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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소유였던 법계사 터가 1500년 만에 오롯하게 절터가 되었음을 볼 수 있는 국가기록(등기사항전부 증명서 중 일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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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소유였던 터가 1500년 만에 법계사 터로 돼 세울 수 있었던 범종각과 법종 ⓒ 임윤수


2012년에는 2~300정도가 머물 수 있는 요사가 마련되었고, 2014년에는 1080관이나 되는 범종을 울리는 타종식까지 올렸습니다. 이쯤이면 법계사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설화에서나 나올법한 소원성취 만사형통의 기도발이 보여주는 결과들이라 생각됩니다. 

법계사에서 흘러넘치는 기도발, 간절함과 지극한 정성이 이루어 내는 합일

법계사에서 받을 수 있는 기도발은 법계사에만 고여 있는 게 아닌 가 봅니다. 법계사 터는 천왕봉에서 발원한 기가 흘러드는 커다란 웅덩이일지도 모릅니다. 웅덩이에 물이 가득차면 물은 아래로 흘러내립니다. 법계사를 가득 채운 부처님 가피와 천왕봉에서 발원한 정기가 지리산 자락을 타고 법계사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을 따라 구비구비 흘러가나 봅니다.

가정불화로 힘들어 하던 어떤 보살(여신도)는 법계사에서 산신기도를 올린 후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이 이유 없는 개과천선을 보이며 집안이 평온해 졌다고 합니다. 고위 경찰간부였던 어떤 이는 근무시간에 골프를 쳤다는 모함에 휘말려 파면을 당한 후 법계사에서 산신기도를 드릴 후 소송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아 누명을 벗으며 대기업에 스카우트 되는 가피까지 입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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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새도 기도를 드리고 싳었던 모양입니다. ⓒ 임윤수


관해 스님의 간절한 기도는 천왕봉에서 법계사로 이어지는 산줄기 혈맥을 끊고 있던 쇠말뚝을 차례로 발견하게 해 제거하도록 했습니다. 쇠말뚝을 제거함으로 천왕봉에서 발원한 정기가 법계사까지 이어지고, 법계사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올리는 기도와 정성은 법계사까지 올라와 합일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간절함과 지극한 정성으로 올리는 기도이기에 법계사에서 올리는 기도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부처님 가피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우연의 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과 지극한 기도이기에 만사형통의 기도발과 소원성취로 드러나는 게 법계사 기도발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법계사 #지리산 #천왕봉 #적멸보궁 #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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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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