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식 '은하철도 999', 색다릅니다

분천에서 철암까지 협곡 열차를 타고 떠나는 추억 여행

등록 2014.07.03 16:49수정 2014.07.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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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열차 분천역에서 백호모습을 한 열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임재만


6월 마지막 휴일, 강원도 철암으로 기차 여행을 떠났다. 기차 여행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되새기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열차의 편리함에 끌렸다. 기차 여행만의 색다른 낭만도 느껴보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동해 바다가 아닌 탄광 지대로 향했다. 철암은 기차 여행의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탄광 지대다.

경북 분천에서 강원도 철암까지 좁디 좁은 협곡으로 열차가 다닌다. 기차가 다니는 협곡은 경치가 매우 뛰어나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열차가 다니는 경북 분천에서 철암까지는 낙동강의 상류다. 기암괴석과 금강 소나무가 즐비하고 맑은 물이 쉼 없이 흐르는 협곡 지대다. 기찻길이 협곡을 따라 계곡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그 위로 빨간색의 관광 열차가 주인공이 되어 폼 나게 달리고 있다. 일명 '브이 트레인(V-train)'으로 불리는 백두대간 협곡 열차다.   


수원에서 출발하는 중부 내륙 열차는 천안-오송-충주-제천-영주를 거쳐 경북 봉화로 들어선다. 춘양역과 현동역을 지나 수원역을 출발한 지 4시간이 넘어 분천역에 도착했다. 분천역은 협곡열차의 출발지로 주말이면 이 열차를 타기 위해 각지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분천역 아담하고 조용하기만 분천역 이곳에서 협곡열차가 출발한다 ⓒ 임재만


분천역은 역이라기 보다는 일반 가정집 같은 분위기다. 아담한 크기의 창문에는 화사한 분홍빛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가까운 친척집을 찾아온 듯 마음이 편안하다. 역무원의 환영을 받으며 역내를 빠져 나왔다. 푸른 잔디를 깔아 놓은 조그마한 마당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로 알록달록한 마을의 지붕이 내려다 보인다. 현대식 건물은 찾아 볼 수 없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분천역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역 마당에는 몇 그루의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아래에 놓여져 있는 들마루가 여행에 지친 사람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소나무 아래에는 백호가 앉아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가만히 살펴보니 살아 있는 백호가 아니라 조형물이다. 마치 집에서 키우는 견공처럼 순한 모습이라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역사 오른편에 눈에 띄는 조그마한 사무실이 하나 있다. 자전거와 자동차를 대여해 주는 사무실이다. 1인용과 2인용 자전거가 20여 대 세워져 있다. 1인용을 기준으로 대여료가 한 시간에 5000원이며, 시간마다 3000원씩 추가된다. 역내에 주차되어 있는 소형차 4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자동차 대여료는 하루 6만 원을 넘지 않으며, 시간당 대여도 가능하다.

분천역 주변에는 조립식으로 지은 간이 음식점과 지역 특산물을 팔고 있는 조그마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가게라고는 하지만 난전 수준이다.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고 채취한 각종 나물과 잡곡·옥수수 등을 팔고 있다. 음식점에 들어가 보았다. 곤드레밥과 비빔밥이 주 메뉴다. 감자전과 메밀전, 묵무침도 있다. 주인이 직접 담근 동동주를 한 잔 마셔 보았다. 여행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마음에 여유가 찾아온다.


양원역 주민이 직접만든 양원역에 협곡열차가 잠시 정차를 하고 있다 ⓒ 임재만


오후 2시께, 백호의 모습을 한 기관차가 빨강색 열차를 끌고 분천역에 들어섰다. 동화책에 나오는 기차마냥 예쁘다. 창 밖의 자연 풍경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도록 천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유리로 되어 있다. 천장에는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에어컨은 없고 그 전력으로 선풍기가 돌아가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설레고 여행의 즐거움이 막 살아난다.

열차 내부는 시내 버스와 같이 1인용과 2인용 좌석이 나뉘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다. 창밖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어 있는 좌석도 있고 순방향으로 일반 열차처럼 배치되어 있는 좌석도 있다. 기차 내에는 간단한 음료를 파는 매점이 설치되어 있다. 멋진 카우보이 복장을 한 안내원도 있어 여행에 불편함은 없다.

열차내부 창이 크고 시원하게 만들어진 협곡열차의 모습. ⓒ 임재만


역무원의 신호에 따라 드디어 열차가 출발한다. 곧이어 시원한 계곡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나고 안내원은 기다렸다는 듯 쉬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쏟아낸다. 열차가 지나는 주변의 산은 대부분 금강 소나무로 가득 차 있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산밭에는 감자와 옥수수등이 주로 심어져 있다.

좁은 협곡을 따라 기찻길 옆으로 시골길 하나가 쉼 없이 따라온다. 자동차 한 대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기도 하다. 이 길은 분천에서 승부역까지 이어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계곡물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야단스럽게 흘러간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시원한 청량감과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다.

협곡 열차는 시속 30km로 천천히 이동하며 여행자들이 협곡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한다. 거북이를 닮은 바위가 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나는가 하면, 깎아지른 벼랑에 소나무가 곡예를 하듯 위태롭게 서 있기도 하다. 백호가 이끄는 열차가 오염되지 않은 미지의 땅에 들어서니, 처음 들어가는 것처럼 긴장된다. 협곡 열차는 하늘에 놓여진 다리를 건너는 것 같다. 깊은 협곡의 다리를 건너서 긴 터널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마치 <은하철도 999>처럼 우주 속으로 날아가는 느낌이다.

협곡 열차는 분천역을 출발하여 비봉-양원-승부-석포역을 지나 철암역에 이른다. 이들 역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역이 있다. 바로 양원역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역이 없어서 보따리를 창 밖으로 던져 놓고 다음역에서 내려 보따리를 찾아 들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주민들이 직접 삽과 괭이를 들고 역을 만들었다고 한다.

양원역 양원역에는 주민들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시장이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 임재만


협곡 열차는 양원역에 10분쯤 정차한다. 주민들이 직접 생산하여 파는 산딸기, 감자떡, 나물 등과 동동주까지 맛 볼 수 있어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예전 기차역에서 잠시 기다릴 때 먹는 가락국수가 있었다면, 시골 간이역인 양원역에서 먹는 산딸기와 감자떡 그리고 동동주는 협곡 기차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더욱이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행운이다.

다시 협곡 열차는 양원역을 출발하여 승부역을 향해간다. 잔치집 마당 같았던 양원역에서 곡기를 채운 탓인 듯, 협곡의 모습은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시골스러운 양원역의 사람들, 소박한 역 주변의 모습이 계속 남아 머릿속에 맴돈다. 기차는 이러한 여행객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암을 향해 쉼 없이 달려만 간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계곡으로 뛰어 내려가 물에 발을 담궈 보고도 싶고, 산골에서 나는 수박도 쪼개 먹고 싶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계곡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지나는 계곡이 맑고 깨끗하기만 하다. ⓒ 임재만


드디어 종착역인 철암에 이르렀다. 한 때 번성했던 곳임을 말해 주듯 지나온 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역사였다. 철암은 산으로 깊게 둘러 있는 협곡 지대다. 검은 흙더미가 역 주변에 산처럼  쌓여 있고 검은 물이 하천으로 흐르고 있다. 누가 보아도 탄광 지대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역 주변에는 오래된 건물이 줄지어 하천을 따라 서 있는데, 매우 낡아 금방 무너질 것 같다. 하지만 철암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특별히 전시장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다. 예전 탄광 지대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느낄 수 있도록 정성스레 꾸며 놓았다. 이제는 옛 명성을 찾아 볼 수 없지만 역사의 한 현장으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하천을 지나 산언덕에 있는 마을로 올라갔다. 아직도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이며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던 옛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은 아직 옛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철암은 이제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 교육장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종종 영화 촬영도 있다고 한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머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일터가 아닌 기차 여행 코스로 혹은 탄광 지대의 역사적 현장으로 이곳을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왔던 옛 모습을 어떻게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것인지, 또 후대들에게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철암이 생생한 역사 현장을 보여주어 방문객들에게 조그만 지혜를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광지로 변모하기를 기대한다.
#협곡열차 #양원역 #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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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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