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 직접 보니 참혹합니다

[셀림의 팔레스타인 여행 다섯번째 이야기] 이스라엘과 전면전이란 표현, 동의 못해

등록 2014.07.12 15:52수정 2014.07.1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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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 하나, 제닌 난민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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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프 아버지와 친척들, 가운데가 아버지 조세님임 ⓒ 이동화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떠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해가 진 후에 저녁을 먹고, 해가 뜨기 전에 간단한 아침을 먹어요. 아들 요세프(19, YousefZagha)는 아침에 먹을 빵을 사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어요."

팔레스타인 북부 제닌(Jenin) 난민 캠프의 조세(Joseh)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야기했다.

"우리 아들은 어느 단체 소속도 아니에요. 돌도 던지지 않았고, 그들(이스라엘 군인)을 위협하지도 않았어요. 도대체 왜 우리 아들이 죽어야 하나요? 그들(이스라엘 군인)은 전날 죽은 3명의 이스라엘 정착촌 아이들의 복수를 했어요. 심지어 총을 쏘았던 그 군인은 내 아들의 피로 자신의 티셔츠에 '복수'라고 써서 이를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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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세프를 쏜 이스라엘 군인이 사망자의 피로 자신의 티셔츠에 ‘복수’라고 히브리어로 적고 페이스북에 올림. ⓒ 이동화


지난 1일 오전 3시경, 이스라엘 군인 수십 명은 제닌 난민 캠프에 난입하여 가택수색 등을 진행하였고, 요세프씨는 이스라엘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 이야기 둘, 세키드 정착촌

팔레스타인 북부 제닌에서 차로 약 20분 정도 서쪽에 위치한 야베드(Yaabed) 마을 근처에는 세키드(Shaked)라는 불법 정착촌이 있다. 이 정착촌의 건설과 확장으로 인하여 아부 니달(AbuNidal)씨는 딸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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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 옥상에 올라서 자신의 딸의 집이 있는 장소를 설명하는 아부 니달. ⓒ 이동화


1980년도 소수의 유대인 정착촌민들로 인해 구성된 세키드 정착촌은 점차 규모를 키우다가 2000년도에 주변에 철조망을 치면서 주변 땅을 병합시켰다. 그 과정에서 아부 니달의 결혼한 딸이 거주하는 다틀러 알 말레이(DatlerAl Maleh) 지역은 철조망 안쪽에 놓여지고 아부 니달이 거주하는 나즐렛 자이드(NazletZaid) 지역은 철조망 바깥쪽으로 놓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넓은 지역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옴 리한 검문소(Om Reihan Check point)뿐이다.


검문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의 특별허가가 필요한데, 다행히 아부 니달은 허가를 받았지만 마을의 대부분 젊은 청년들은 허가증을 받지 못했다. 물론 아부 니달이 검문소를 지나기 위해서는 거의 공항에 준하는 검문 검색을 받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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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 리한 검문소. ⓒ 이동화


# 이야기 셋,  바라의 형제들과 친구들

팔레스타인 서쪽 이스라엘과 맞닿아 있는 툴가렘 지역, 그곳에서 약 10분 거리의 안압타(Anabta)마을에서 만난 바라씨의 형제는 총 5명이다. 집안의 맏이인 바라(22, Barah)씨, 밑으로 바하(21, Baha), 디아(18, Diah) 그리고 그 밑으로도 두 명이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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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희생자나 구금자를 기억하기 위해 제작된 플랑, 오른쪽부터 바라, 바하, 디아 형제. ⓒ 이동화


2013년 4월 3일 오후 9시경, 셋째 디아는 평소에 존경하는 수감자가 이스라엘 교도소 측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친구들 4명과 데모를 모의하고,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안압타 검문소에 다가가서 그곳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군인들은 바로 사격을 가해서 함께 참가했던 친구 나지 아멜(Naji Amer)는 현장에서 바로 죽고, 또 다른 친구는 6시간 이후 근처 숲에서 총격에 의해 사망된 채로 발견되었다. 함께한 디아와 마지막 친구는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체포가 되었다.

이후 한 달이 지난 5월 13일, 이스라엘 군인들 50명은 8개의 지프에 나눠 타고 바라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리고 집에 있는 바하에게 "바라(큰형)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전화를 해라, 5분 이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집을 폭발하겠다"라고 했고, 어쩔수 없이 집에 돌아온 바라와 바하는 공모혐의로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에 말도 안 되는 고문과 처벌을 받으며 디아는 4년 형을, 바라는 8개월 형,  바하는 14개월 형을 받아 다행히 현재 바라와 바하는 풀려 났고 이제 식구들은 디아가 풀려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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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와 그의 친구의 장례식 모습. ⓒ 이동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은 나지 아멜(사망)의 어머니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고맙다. 나는 내 아들이 자랑스럽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웃과 친척들은 내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가슴에 큰 돌이 얹혀지는 것 같았다.

# 이야기 넷,  모함메드 함둘라

연일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으로 사망자가 수십 명에 도달했던 지난 8일 오전 1시경, 전날의 금식과 피로를 잊기 위해 안압타 함무디(현지인 친구)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함무디의 친구인 모함메드 함둘라(MohamedHamdullah)가 그제서야 일을 마치고 놀러 왔다(라마단에는 저녁에 일을 시작하는 곳이 많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모함메드는 여기서 아주 흔한 이야기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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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놀러와 얼떨결에 인터뷰를 한 모함메드 함달라. ⓒ 이동화


"2006년 3월 13일에 비가 엄청 많이 온 날, 깔낄리야 대학 이슬람 전공으로 3학년이었던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고 있었는데, 안압타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버스에 오르면서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그렇게 잡혔지. 사실 그때는 두 번째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인들의 반 이스라엘 독립투쟁을 통칭) 이후에 산발적인 데모가 있었고, 나도 돌을 던지긴 했거든. 버스에서 끌려 내려와서는 양 팔을 뒤로 꺾은 채 수갑을 채웠고, 비가 계속 내리는데 나를 7시간 동안이나 밖에 서 비를 맞추더군.

이후에 근처에 있는 군사기지에 가서 24시간 동안 잡혀있은 후에 이스라엘 경찰에 넘겨졌어. 그리고 제라미(Jeramyinvestigation) 심문소에서 조사를 시작하는데,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조사를 하는 거야. 조사를 하지 않을 때는 독방에 가두어 놨는데, 독방의 크기가 가로세로 약 1미터 정도이고   아주 더러운 화장실도 조그맣게 있었지. 그곳은 지하여서 인지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가더라고. 도무지 얼마를 보내는지 모르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알 마스쿠비아 교도소로 이송되면서 그 독방에서 23일 동안 갇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리곤 아나갑(Anaqab) 교도소로 이송이 되었는데, 그곳은 사막 한가운데 세워져 있었고, 교도소의 담벼락도 없이 철조망으로만 둘러쳐져 있었지. 그곳에서 약 22명이 커다란 텐트에서 수용이 되었는데, 처우가 말이 아니었지. 전갈들도 흔하게 보였어. 그러다가 수용자 한 명인 모함메드 아슈칼씨가 이스라엘 군인에게 처우에 대해 심하게 저항을 하였는데, 이스라엘 군인이 무지막지하게 그 사람을 구타하는 거야. 그래서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이를 말리며 함께 항의를 했지.

그랬더니 더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와서 나를 때렸고, 사람들이 더 늘자 이스라엘 군인은 처음에 저항한 모함메드 아슈칼에게 발포하여 그 사람은 죽고야 말았지. 이 사건이 있은 후에 라몬(Ramon) 교도소로 이송이 되었고, 1년이 지난 후에 마지두 교도소로 이송이 되었지. 여러 수용소 중 가장 안 좋았던 곳은 마지드(Mazid) 교도소야. 여기 시설도 문제이지만 이곳에서는 면회가 불가능 했지.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 3년 동안 구금되었지. 2009년에 나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에는 일이 없어서 요르단으로 나가볼까 해. 여자친구도 있고 나이도 꽤 있는데(28세) 결혼하려면 돈이 필요하거든."

#이야기 다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면전?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곳의 긴장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상태이고, 연일 가자지구에 이스라엘 전투기가 폭격을 가해 7월 11일 기준으로 가자지구에서 102명이 사망하였고 60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300여 채의 가옥이 파괴되어 2000여 명이 집이 없는 상태이다.

유엔인도주의업무 지원사무소(UN Office for the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에서 펴낸 긴급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58명의 시민이 사망하였고 그 중 11명이 여성이고 21명이 아이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습이 계속되자 하마스 측에서도 로켓을 발사하여 이스라엘 거주지역에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세계 주요 언론은 현 상황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면전'식으로 보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언론은 이번 사건이 주요한 원인을 이스라엘 십대 3명의 정착민 납치와 살해에 있고, 그 배후를 하마스로 단정하지만 하마스는 부인하였다. 소위 누구의 행위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착민 3명이 납치가 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집단 처벌을 지속하였다.

매일 밤 서안지구 전역을 급습하여 팔레스타인 13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장갑차와 지프가 왔을 때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3명이 살해된 채로 밝혀졌을 때 이스라엘이 최초로 한 행위는 하마스 요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가옥을 폭발시킨 것이었다. 그들은 또다시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전역에 군인들을 투입하여 팔레스타인 여성, 아동,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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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습으로 생긴 가자지구의 커다란 포탄 흔적. ⓒ ISM


그런데 언론은 상호간의 분쟁, 전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하마스 측에서 로켓을 발포하고 이에 대한 이스라엘 측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하마스 측에서의 로켓 발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속되는 무차별적 공습,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도로와 이동은 막혀서 어디로 도망 갈 곳도 없는 이들이 선택한 방식이 그거라면 무조건 비판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하마스의 로켓에 집중을 하면 팔레스타인 전체의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돌멩이를 던지고 로켓을 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두 집단을 비교하여 사태의 책임을 양분시키는 것은 사실과 진실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수십 년간의 점령으로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의 가족들은 가족 중 1~2명은 사망하였고, 2~3명은 부상을 당했고, 3~4명은 감옥에 갇혀있거나 갇힌 적이 있다. 현 상황을 학살이라고 표현하면 동의하기 힘든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명백히 이스라엘에 의한 전쟁범죄이다. 그것도 2차 세계대전 시에 집단학살의 피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에 의해서 말이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가자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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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아디(ADI)에서 상근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디는 아시아 분쟁 재난지역에서의 피해자와 현장활동가와 함께 인권과 평화를 지키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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