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 40시간... 10분 만에 허무해졌다

[남편이 쓴 아내의 출산기] 4.22kg 첫째 아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등록 2014.07.15 20:14수정 2014.07.15 21:15
6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출산을 앞두고 있느 아내 유도분만을 시작한지 20시간쯤 지나서인듯.. ⓒ 홍기웅


"엄마 아빠가 빨리 보고 싶었나 보네."


유도분만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내는 출산을 위해 한 달 전 친정 포항 집에 내려갔다. 아이가 크다는 이야기를 그전부터 들었지만 출산 방법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와 아내가 무사히 이 시간을 잘 넘겼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제왕절개는 알겠으나 '유도분만'은 생소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물을 사용해 강제로 자궁을 열어 출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도분만이 잘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내는 수술에 대한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수술로 인한 고통은 출산 고통보다 크다.

며칠 뒤 병원에선 아이가 커서 늦어질수록 수술해야 할 확률이 크다며 바로 입원하라고 했다. 그 얘길 듣자마자 나는 출산휴가를 내고 부랴부랴 포항으로 내려갔다. 지난 6월 27일의 일이었다.

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9시. 입원은 오후 10시였다. 한 달 만에 아내를 만나는 상봉의 기쁨을 나누는 것도 잠시, 입원 준비를 서둘렀다. 의사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약물 투여를 시작으로 유도분만에 들어갔다. 고생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자궁 확장을 활발히 하기 위해 많이 움직이라는 말에 잠도 안 자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조금씩 자궁이 열리면서 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12시간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초조하게 자궁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자궁 확장 15%. 기다린 시간에 비해 결과는 초라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유도분만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수술을 할 것인지 넌지시 의견을 물어봤다. 아직까진 자연분만을 해보고 싶단 아내의 말에 다시 한 번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두 번째 유도분만을 시작한 지 다시 12시간. 자궁 확장 30%. 좌절스러운 결과였다. 꼬박 24시간이 흘렀다. 의사 선생님은 계속 진행할지 수술을 할지 다시 한 번 묻는다. 이제 수술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아내를 보니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이번엔 촉진제를 링거로 투여했다.

자궁 열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다시 12시간을 뜬눈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결과는 자궁 확장 45%. 그사이 의사 선생님도 퇴근해 다른 분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진행했다간 산모나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에 들어온 지 36시간이 지나서야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수술 시작 10분이면 아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10분이라... 허무해졌다. 40시간 동안의 우역곡절이 스쳐 지나간다.

a

안녕? 탄생의 순간 ⓒ 홍기웅


정말 10분이었다. 초조해 할 사이도 없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더니 핏물 흥건한 수건에 쌓여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가 눈앞에 들어왔다. 아이와의 첫 대면을 어떻게 할지 미처 고민도 하지 못 했기에 멍하게 보기만 했다.

누구는 아이가 태어날 때 눈물이 흘렸다는데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었다. 발목에 걸린 이름표의 이름 한 번 확인하고 바로 다시 병실로 들어간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 찍는 것으로 기념행사를 대신했다. 이마저도 앞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아이가 바뀌어도 모를 수 있다는 말을 엿들었기에 급하게 한 장 찍은 것이다.

그렇게 아이와의 첫 대면이 순식간에 끝나고 얼마 후 아내가 병실을 나왔다. 이제 막 마취에서 깨어나는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보니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할 새 없이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38주보다 길게 느껴졌던 유도분만으로 보낸 40시간. 신고식 한 번 톡톡히 치른 것 같다. 그렇게 일 주일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은 솔직히 탈출하는 심정이었다. 아이가 출산한 지 이제 열흘. 자식 키우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했다고 하며 '오버'겠지만 그래도 엄마들의 위대함을 절실히 알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여보. 수고했어. 어려울 때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서울에 올라오면 못했던 몫까지 다할게."

a

신생아실 앞 괜히 으쓱해지는 장소 "제가 4.22kg 아이를 둔 아빱니다." ⓒ 홍기웅


에피소드1
아이의 몸무게는 4.22kg. 예상대로 컸다. 퇴원하기 전까지 신생아실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하루 세 번 만났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옆의 신생아들과 조금씩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이런 게 자식에 대한 욕심인가 싶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우리 아이를 보며 유독 큰 몸집에 놀라워한다. 속으로 '제가 아빱니다'하고 으쓱해한다.

그러길 몇 번. 병원에서 가장 큰 신생아라는 타이틀이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 그 뒤 버릇처럼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들의 몸무게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퇴원할 때까지 타이틀을 지켰다. 누가 상 안 주나?

에피소드2
수술을 꺼려 했던 이유 중 하나는 100만~200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 때문이었다. 아내가 포항까지 내려간 것도 산후조리원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였다. 수술하기로 결정할 때 간호사는 어느 병실을 이용할지 물었다. 속으로 계산기를 몇 번 두드리고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결국 그 병원에서 가장 큰 7인실을 사용하기로 했다.

퇴원하던 날, 마음 졸이며 병원비 내역서를 봤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병원비가 50만 원도 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와 다른 한 집만이 7인실을 특실 부럽지 않게 사용했기에 지난 일 주일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첫 아이 출산인데 너무 짠돌이처럼 굴었나?

에피소드3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들어온 아내는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의 고통을 호소했다. 아내가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은 "이제 둘째는 없다"였다.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악의 순간"이라고 했다. "아이는 한 명이면 충분하다"는 아내의 주장이 완벽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당분간은 둘째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야겠다.

a

첫 가족사진 7일간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찍은 첫 가족사진. ⓒ 홍기웅


#출산 #유도분만 #제왕절개 #출산비용 #홍기웅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2. 2 "아이 어휘력이 떨어져요"... 예상치 못한 교사의 말
  3. 3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4. 4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5. 5 MBC가 위험합니다... 이 글을 널리 알려 주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