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에게 이쁨 받는 법? 이건 좀 아니다

[주장] 실패한 참여정부의 병영문화 개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록 2014.08.12 16:10수정 2014.08.1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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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윤 일병 사건에 대한 충격 속에서, 지난 6일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출범했다. 또한 '군 전문가'들도 언론을 통해 이러저러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병사들의 관점에 기반한 논의들은 보이지 않는 듯싶다. 그들은 단지 '풍뎅이를 먹어야 했다'거나, '소변기를 핥아야 했다'는 등 엽기·가혹행위 사례의 피해자일 때에만 가시화될 뿐이다.

가족주의에 갇힌 윤 일병

윤 일병 사건 이후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이래서야 어떤 부모가 안심하고 자녀를 군에 보낼 수 있"느냐며 질책을, 국방부 장관은 "윤 일병을 부모님께 건강하게 돌려보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를,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공동대표는 "부모님의 마음을 담아서 병영문화를 진단"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고 한다.

'군에 자식을 보낸 애타는 부모의 마음'이라는 관점하의 병영문화 비판은, 단지 '자녀를 맡겨주신 부모님을 대신하는 심정으로 지휘하겠다'는 군의 진부한 대답, 그 이상의 대안을 요구하지 못하는 한계에 갇혀 버린다.

그렇게 병사들은 우리의 시각에서 사라진다. 그들은 군의 주체인 '늠름한 국군장병 아저씨'도 국방의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는 공적 존재도 아닌, 그저 보호받고 관심받아야 할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자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입대와 함께 지휘관이라고 하는 '엄한 아버지'와 부사관이라는 '인자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갓난쟁이 신병이 된다. 물론 '이등병 막내'로 시작해 '짬'을 먹고 '아버지 군번'을 거쳐 '할아버지 군번'이 되어갈 때쯤 "부모님 앞으로!"라는 전역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제서야 사회는 그들을 '싸나이' 혹은 '철든 어른'으로 인정해준다.


그렇게 군대는 '어른이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군대와 사회의 공모 속에서, 자녀는 군 생활의 이러저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사회적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그 거대한 서사는 대단원에 막을 내린다.

군을 가정으로 의미화하는 '군대가정' 담론은 군 내에서도 그 역사가 길다. 일제 시대 병영을 '군인의 가정'이라 하여, 의식주 등 생활의 단위(전술단위가 아니라)로 조직했던 내무반 제도로부터 1970년대 국가적 정책으로 강력히 시행된 군 새마을 운동의 '내무반 가족화 운동'. 1990년대 이후 '국가에 충성하는 것과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같은 것'이라 설명했던 '충·효·예' 정신교육. 그리고 2000년대 병영문화개선의 일환으로 제기된 다양한 군대가정 프로그램들.

물론 병영을 '정상 가족'의 형식으로 구성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잘 시행되어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없는 그리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명령을 수행할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가족주의는 군인이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는 자'라는 관점을 놓치게 만든다. 즉, 병역을 국가의 자녀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도리 혹은 본분으로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하급자는 상급자를 존경하고, 믿고, 따라야 한다는 식의 '태도로서의 복종' 논리에 우리를 가두어 버린다. 즉, 상급자의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자에게 복종하기 때문에 수족이 되어 그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될 뿐이다.

소원수리나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신고·고발이 제한되는 것도 이 영향이 크다. 동생이 형을 고발하거나 자녀가 아버지를 신고한다는 것은 패륜이거나 혹은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의미화되기 때문이다.

비합법적인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권리, 불가능한 명령에 거역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병영 부조리를 신고하는 것이 조직을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식의 발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가족주의적 관점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참여정부 시절의 그것은 가족관계가 아니라 시민적 관계로 구성되는 병영을 만들고자 했다. 이는 문민통제라는 큰 틀 속에서, 병영 내부를 입법부·사법부·행정부라는 제도권 내부로 편입 시키기 위한 구조적인 개혁을 시도한 것이었다.

행정부는 대통령 직속의 '병영문화 개선위원회'와 '군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를 통해 군에 개입함으로써, 입법부(의회)는 '군 인권 기본법' 제정과 '군 옴부즈맨'제도를 통해 군을 견제함으로써, 그리고 지휘관의 재량에 속했던 사법 영역을 독립시키는 '군사법 개혁'을 통해 병영 내 사법적 질서를 구현함으로써 군을 제도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군대라는 조직, 특히 병영 내부를 입법·사법·행정부라는 큰 제도적 틀거리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견제와 균형의 논리를 작동시키고, 이를 통해 군을 운영하며, 병영내부를 민주화 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사병 월급 현실화를 통해 PX에서 기호품 정도는 구매할 수 있고, 휴가 때 친구들과 소주 한 잔 정도는 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그래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유지 정도는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제도적 틀 속에서 군대는 법과 자유 혹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넘어설 수 없게 되며, 병사는 인권과 기본권으로 무장한 '군복입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더 이상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병역이라는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시민으로서의 권리도 행사할 수 있는 당당한 '군의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선임에게 사랑받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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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28사단 폭행 사망 희생자 윤일병과 군 사망 희생자 추모제에서 11사단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한 신성민 상병의 친구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이희훈


물론 모두 알다시피 당시의 개혁은 실패했다. 군대에서 장병이 누리고 행사해야 할 기본권과 인권은 상급자가 보호해야 하는 '인격 모독' 금지로 국한됐다. 그리고 이젠 '인성검사'로 변질되어 개별 장병을 평가하고 배제하는 부메랑이 되어, 오히려 병사들을 옭아매고 있다. 또 '한부모 가정', '경제적 빈곤가정' 출신의 병사 또는 '내성적인 성격'의 병사(성격장애자)를 낙인찍는 '보호관심 병사' 제도는 군 문제의 원인을 오히려 가정으로 그리고 개인으로 돌리고 있다.

병영 내부는 어떠한가. 보여주기식의 관제 문화운동은 병사들에게 수시로 '사랑합니다'를 외치게 했고, 점호시엔 선후임이 서로 포옹하는 등등의 전시성 이벤트 만을 넘쳐나게 했다. 각종 입대 안내서와 '밀게(밀리터리 게시판)'에서 유행하는 '군대에서 귀여움 받는 행동수칙', '선임에게 사랑 받는 요령', '부대에서 이쁨받는 팁' 따위의 처세술에 의존하는 병영이 된 것이다.

시민권과 인권이 배제된 채 시행된, '정과 사랑이 넘치는 군대'는 병영 문제를 단지 병상호간 개인 감정 정도의 문제로 치부하게 했다. 이는 현실에서 후임이 선임의 감정을 충족 시키고 만족 시켜 주는 것으로 실천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구타·가혹행위의 이유가 단지 '재밌어서'. '그냥', '기분 나빠서'라고 설명되는, 선임의 기분을 거슬리는 것이 폭력의 근거가 되어 버리는 '묻지마' 폭력이 양산되고 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역설이지만, 윤 일병이 육군훈련소에서 작성했다는 지도기록부의 "선임과 상관에게 사랑받겠다"는 다짐은, 병영 현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는 개 흉내'를 냄으로써 귀여움을 떠는 방식으로, 혹은 구타로 인해 '무릎이 없어지는 신기함'으로 선임을 즐겁게 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군복입은 시민'이 만능 해결책은 분명 아니다

참여정부의 군 개혁이 실패한 지 10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사회도 그리고 병영도 많이 바뀌었다. '악이 평범한 게 아니라, 평범한 게 악'이 되어 버린 시대에서, 우리 모두를 동등한 권리주체로 규정하는 시민권 논의는 분명 구태의연해 보일 수 있다. 혹 개인의 취향과 적성 그리고 개성을 제한하고, 저마다가 갖고 있는 능력과 열정 그리고 창의성을 질식 시킨다는 걱정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구타·가혹행위의 현실적 대책을 '병사용 민간 상해보험'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며, 소원수리와 구타 신고를 독려하기 위해 '군파라치' 제도를 도입하는 상황은 너무 암울하지 않은가.

군 개혁의 3대 패키지로 얘기되는 '군인권법', '옴부즈맨 제도', '군사법 개혁'이 단지 구타·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수단만은 아닐 것이다. 병영 내부의 문제를 시민의 이름으로 병사들 스스로가 제기할 수 있고, 또한 그 해결책까지도 그들의 입으로 얘기할 수 있는 군대. 그들이 군대의 일 주체가 됨으로써, 명실상부 '시민의 군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그런 군대를 꿈꾸는 것은 단지 허황된 생각일 뿐일까?
#군대 #가족주의 #군대 가정 #군복입은 시민 #시민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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