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가제 멘탈 창조한 장군, 천황 따라 죽다

[동아시아 속의 만주여행①] 섬뜩한 러일전쟁의 현장

등록 2014.08.15 11:10수정 2014.08.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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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0km에 달하는 답사 이동 경로 ⓒ 김민화


8월이다.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이 한반도의 전 강토를 뒤덮었던 69년 전.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운 독립의 열망이 실현된 8월이다. 독립만세의 함성은 국내뿐 아니라 만주, 상해, 연해주 등 국외로 이주해 간 우리 민족 모두의 가슴 속에서 울려 퍼졌으리라.

'항일 독립군 투쟁의 고향'이라 불리는 만주를 다녀왔다. '중국 동북지역 항일독립투쟁 현장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떠난 이번 답사의 목적지다. 만주는 항일무장투쟁의 국외 본거지로 치열한 독립운동을 펼쳤던 곳이다. 이곳은 '동북 3성'이라고 불리는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지역을 가리킨다. 이번 여정은 헤이룽장성을 기점으로 지린성을 지나 랴오닝 성까지 약 2000km에 달했다.

왜 국내가 아닌 만주지역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을까?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후 국내에선 의병 활동과 신민회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일제 군경의 무자비한 탄압이었다. 탄압이 점점 거세지자 독립운동의 거점을 국외로 옮겨 항일투쟁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속적으로 구국운동을 펼쳐가기로 한 것이다. 독립운동의 국외 근거지로 택한 곳이 바로 만주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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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지방 항일독립투쟁 유적 답사는 하얼빈 공항에서부터 출발했다. ⓒ 김민화


일본 제국주의 꿈틀거린 러일전쟁 현장에 가다

30여 년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만주 지역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적이 많았다. 시간의 한계로 다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청산리대첩과 봉오동 전투 현장, 윤동주 시인 생가, 백두산, 두만강과 압록강 등등 가는 곳마다 치열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제의 침략과 전쟁,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에 이어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까지. 역사적 논란의 중심에선 만주. 근 100여 년의 한반도 역사를 거슬러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 노선을 취한다. 서구 열강의 위협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일본이 선택한 방법은 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일본의 이러한 선택으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 위로 불행한 역사의 서막이 드리워졌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지배권을 두고 일본은 두 번의 전쟁을 일으킨다.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다.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대만을 할양 받는다. 기세가 오른 일본은 다음으로 만주 진출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1904년 일본군은 중국의 요동지방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한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년에 걸친 러일전쟁도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중국 요동지방에서 러시아를 몰아낸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기회로 1905년 일본은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는데, 이로써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기 시작한다. 이렇듯 러일전쟁은 우리민족에겐 역사의 암흑기를 불러온 결정적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 중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203고지'에 갔다. 203고지는 여순에 위치한 언덕이다. 여순은 랴오닝 성 서남부 끝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도시다.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03고지'는 이 언덕의 높이가 해발 203m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불한 길을 걷다가 숨이 턱에 차 오를 때쯤 어느새 고지 정상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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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의 203고지에 세워진 탑 ⓒ 김민화


203고지 오르막길 끝에는 탑이 하나 세워져 있다. 푸른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탑은 총탄 모양이다. 이 탑은 203고지 전투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총탄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정상 한 켠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당시 사용했던 실제 탄피를 전시해 뒀다. 이젠 고철 덩이에 불과하지만, 한땐 적의 심장을 관통한 살상 무기였을 총알을 보니 섬뜩했다.

탑에는 이령산(爾霊山)이라고 쓰여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사한 일본군의 망령을 위로한다는 의미로 세워진 탑에 '203'의 중국어 발음과 같은 '爾霊山'을 새겨 넣은 것이다. '위령탑을 세우기 좋아하는 일본답다'고 생각했다. 과연 탑을 세우는 것으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죽어간 넋을 위로 할 수 있을까.

이령산 탑을 등지고 언덕 아래를 바라봤다. 언덕 너머로 여순항이 한 눈에 들어왔다. 203고지의 지리적 이점은 일본군의 야욕에 불을 붙이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당시 여순항에는 이미 많은 러시아 군함이 있었다. 일본은 여순항을 차지하기 위해 203고지를 함락 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이를 눈치챈 러시아군은 일본군을 막기 위해 203고지에 견고한 요새를 구축한다.

길을 돌아 다른 갈림길로 가면, 남아 있는 요새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여순항을 향해 조준하고 있는 대포도 하나 놓여 있었다. 러시아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본군이 설치한 것이다. 일본군의 공격을 받은 러시아군은 일본군에 여순항을 뺏기고 점점 패배의 길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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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고지 전투 당시 사용되었던 실제 탄피. 정상에 세워진 탑은 총알을 모양을 본뜬 것이다. ⓒ 김민화


'카미가제' 아이디어 제공한 노기 마레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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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돌격' 부추긴 노기 마레스케

러일전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일본군 육군사령관 '노기 마레스케'다. 러일전쟁으로 신화적인 인물이 된 노기는 203고지 함락을 위해 엄청난 군사와 물량을 투입한다.

이때 일본군의 전술은 무조건 '돌격'이었다. 일본군은 1개 사단 병력을 투입해 총공격을 가한다. 1만 5천명의 군인을 투입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천여 정도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1904년 12월 5일, 66일간의 무모한 돌격 전술로 결국 승전기는 일본의 차지가 된다.

러시아군 희생자 5000여 명, 일본군 희생자 1만4000여 명. 패자보다 더 큰 희생을 치른 이상한 전투였다. 러시아 군에게 뺏은 203고지에 일본군은 중포대를 설치하고 다음은 여순항에 있는 러시아 군함을 공격한다. 러시아 군함은 모두 침몰하고 여순항도 일본군의 손에 들어간다.

203고지의 승전기는 일본의 차지가 됐으나 일본군의 인명 피해는 너무도 컸다. 일본군 전사자 유족들은 노기 장군의 무모한 작전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하지만 메이지 천황이 노기 장군을 감쌌고, 책임 추궁은 그렇게 흐지부지 됐다.

더불어 반전이 일어났다. 203고지에서의 무모한 돌격 작전이 '일본군의 정신승리'로 미화된 것이다. 203고지 전투가 호전한 전쟁으로 포장되고, 일본군 전투 양식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돌격 스타일'은 이후 일본의 전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차 세계대전에 활약했던 공포의 '카미가제 특공대'의 정신적 토대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1912년 메이지 천황이 죽자 노기 장군은 할복하여 순사(殉死)한다. 노기의 천황에 대한 충성심은 당시 일본이 내세웠던 군국주의와 맞물려 신화화 된다. 그렇게 노기 장군은 '군신'의 대우를 받게 됐다. 노기 장군이 죽은 뒤 일본은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본 내 곳곳에 '노기신사'를 지어 숭배하도록 했다.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노기신사'를 지었다. 남산에 위치한 리라초등학교 안쪽 한 켠에 그 터가 여전히 남아 있다.

러일전쟁 최고 격전지서 '아베' 야욕 떠올리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203고지를 둘러보며 '러일전쟁이 일본의 실패로 끝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랬다면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조선의 식민지 통치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최근 일본은 '제국주의로의 회귀'라는 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해석개헌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소식으로 동아시아가 시끄럽다. 아베 총리가 꿈꾸는 천황제를 바탕으로 한 '제국주의 일본'. 203고지에서 목격한 동아시아의 격변이 다시 재현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전하자. 일본의 마음 – 메이지 정신-'

203고지를 향해 돌격하는 일본군과 이를 지휘하는 노기 마레스케 장군. 그런 노기 장군을 기리는 '노기 신사'의 누리집 메인 화면의 문장에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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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고지 요새에 설치 된 중포. 멀리 보이는 여순항을 향해 조준되어 있다. ⓒ 김민화


덧붙이는 글 필자는 7월 17일부터 23일까지 6박 7일 동안 중국동북지역 항일독립투쟁의 현장으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독립운동 #만주 #러일전쟁 #203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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