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냉혈인간' 된 까닭, 남편은 모르지

남편은 '남의 편'이라더니... 오늘도 미운 정만 쌓인다

등록 2014.08.24 13:58수정 2014.08.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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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연유 듬뿍 '눈꽃 빙수' ⓒ 조경이


"팥빙수 먹고 싶다~. 팥빙수 먹으러 가자."
"안 돼요, 팥빙수에 당분이 얼마나 많은데…. 설탕물이라구요."

당뇨병이 있는 남편은 합병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은 시원한 팥빙수를 꼭 먹어야겠다고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뭘 사달라고 보채듯이 팥빙수를 먹으러 가잔다. 요즘 날씨가 팥빙수 먹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하지만 남편은 특히 먹고 싶은 것을 못 참는 성미다.

"1인분 4000원, 2인분 5000원."

나는 안 먹겠다고 1인분을 시켰다. 돈이 아까워서 절약하느라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다음에 나 혼자 와서 먹어야지' 하면서도 굳이 1인분을 시킨 것은, 남편 앞에서 팥빙수를 좋아하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다. 나까지 팥빙수를 좋다고 먹어버리면 남편은 또 신나서 팥빙수를 먹자고 보챌 것 아닌가.

38년 전, 남편은 결혼을 할 때만 해도 대한민국이 검증을 끝낸 '사나이' 육군 대위였다. 긴 세월 험한 세상 살다보니 남편한테 당뇨병과 고혈압이 찾아온 지 20년이 되었다. 이런 남편과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 먹고 사는 아내로서, 먹고 싶은 것도 안 먹고 억지로 참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남편은 내가 진짜로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 줄 안다.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

남편은 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음식이 무엇인지…. 얼마 전 남편과 단둘이 2박 3일 여행을 함께 다닐 때도 그랬다. 이틀 동안 나 혼자 운전하면서 여행을 다니다 보니 졸음도 오고 힘들어서 휴게소에서 가수 조항조의 CD를 샀다.

"사랑했다는 그 말도 거짓말/ 돌아온다던 그 말도 거짓말/ 행여 나를 찾아 와 있을 너의 그 마음도 다칠까/ 너의 자리를 난 또 비워둔다."(<거짓말> 노랫말 가운데)

잘생긴 조항조 얼굴을 떠올리며 노래를 듣고 있자니 피로가 싸~악 가시는데, 그때 무정한 남편의 한마디.

"이런 걸 노래라고…."

말 잘하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남편은 왜 이렇게 인색한지…. 아예 포기하고 살고 있지만 남편은 내 작은 행복도 허락을 안 해준다.

38년이나 같이 살고도, 그렇게 나를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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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수록된 조항조 4집 앨범 (2005) 표지. 남편은 내가 그 노래 한 곡 듣는 것도 못마땅해했다. ⓒ (주)앤에이취이엠쥐


여행을 하며 들뜬 기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비싼 커피 매장에서 카페라테 한 잔을 주문했더니 또 한마디 했다.

"이 커피가 밥값보다 비싸다고 TV 뉴스에 나오는 커피구먼."

이렇게 나한테 눈치를 줬다. 무심한 남편.

"아이고 참 나 원. 관광버스로 관광도 안 다녀봤나? 관광버스를 타도 기사님 대접을 얼마나 잘해주는데!"

2박 3일 동안 나를 기사로 부려먹으면서도 나한테 해주는 것이 없었다. 아니 뭘 해주려고 생각조차 안 했다. 남편은 '남의 편'의 줄임말이라고 누군가가 말하더니, 맞는 말인 것 같았다.

"그래, 내 탓이다. 내 탓이야…."

지금까지 긴긴 세월 동안 내가 만날 씩씩하게 앞장서서 일했다. 한 번 아픈 적도 없어서 남편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한 적도 없었다. 또 무엇이든 싼 것만 찾고 비싼 것은 안 된다고 남편에게 인식을 시켜놓고, 지금 와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남편은 그놈의 팥빙수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운다. 심지어 남편은 백내장 수술을 하기로 예약을 하고 사전검사(간 검사, 혈당 검사, 심전도 검사)를 하는 중인데도 기어이 팥빙수를 먹고야 말았다. 이렇게 달콤하고 시원하고 맛있는데 왜 못 먹게 하느냐고, 팥빙수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단다. "당신 때문에 안 좋아하는 거라고! 아니 안 좋아하는 척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꾹 참는다.

이러는 나를 남편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번은 혈당체크 기계로 혈당을 검사를 하던 남편이, 내 혈당도 검사해보자고 손끝을 침으로 콕 찔렀는데 피가 안 나왔다. 그 순간 남편이 "냉혈인간"이라고 말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것을 난 보았다.

인정도 눈물도 없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사람, 냉혈인간. 칠순을 바라볼 정도로 같이 오래 살아왔으면서도, 아내가 일을 많이 해서 손끝에 굳은살이 많아 그렇다는 건 왜 모를까? 가슴 아파해야 할 남편이란 사람이 한다는 말이 고작 "냉혈인간"이라니….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함께 살아가겠지. 서로를 다 알지 못하는 채로…. 아아 오늘도 미운 정 하나를 또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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