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공항 파업, 참 잔인하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던 좌충우돌 결혼 5주년 파리여행 6] 비행기가 취소되다

등록 2014.09.04 12:10수정 2014.09.0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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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파리는 도시 전체에 낭만이 흘렀다. 화창하지만 덥지 않은 날씨, 클래식한 건물들 사이에 우뚝 솟은 무성한 나무들과 건물 창문에 놓여져 있던 알록달록한 꽃 화분들. 적당히 붐비는 도시 속의 인파는 여행자들을 설레게 만들었고 도시 곳곳에서 흐르는 음악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요소였음이리라.

파리는 맛있는 음식을 비롯해 전세계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도시이자 굳이 돈을 내지 않아도 볼거리가 넘쳐 나는 거리를 가진 도시였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파리에 대한 낭만과 좋은 추억, 그리고 아쉬움을 간직한 채 아일랜드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비행기가 취소되기 전까지는.


비행기가 운항 취소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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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티에서 보베 공항으로 데려다주는 공항 리무진 파리 Maillot 역 앞에 있는 공항버스 전용 터미널로 가면 보베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탈 수 있다. ⓒ 구글 이미지


외곽공항으로 가는 셔틀 버스를 타기 위해 파리 도심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마일럿(Maillot)역으로 향했다. 파리에는 샤를 드 골 공항(Charlesde Gaulle Airport)을 비롯해 보베 국제 공항(Beauvais–Tillé Airport)이 있다.

이 공항은 파리의 외곽에 위치하는 공항으로, 유럽의 저가항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공항이다. 우리도 아일랜드의 라이언 에어 항공을 이용했던 터라 보베 공항으로 가는 셔틀을 타야 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밤 10시. 마일럿역 앞의 리무진은 그날 비행기 일정에 맞춰 3시간 전에 딱 한 번 출발한다. 때문에 늦게 도착하면 공항 가는 리무진을 탈 수 없는 시스템이라 우리는 여유를 두고 공항 버스를 타는 곳으로 향했다.

공항 리무진을 타는 곳에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직 버스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주변 풍경으로 인식한 후 나는 느긋하게 줄을 서서 남편과 파리에서 있었던 즐거운 추억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날씨도 파리 정도만 되면 좋겠다느니, 첫날 먹었던 홍합이 참 맛있었다느니, 시간이 너무 빨리 갔다느니, 며칠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느니, 끊임없이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며 즐거웠던 시간을 회상하며 시계를 보았다.

저녁 6시 30분에 출발한다는 리무진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내 앞에 많은 사람들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을까? 오후 7시가 넘어가자 티켓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선별적으로 사람들의 티켓을 확인하는 것이 보였다. '아, 이제 공항으로 가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리무진을 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로 가세요?"
"더블린 국제 공항이요."
"그 비행기 오늘 캔슬(취소)됐어요. 캔슬 확인도 안하고 온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지? 분명히 우리 앞에 서 있던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니! 항공사로부터 받은 연락은 전혀 없는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탈바꿈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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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거리의 풍경 센느강을 따라 걷는 파리의 거리에는 어딜 가나 오래된 물건이나 화가들의 그림을 파는 노점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김현지


몇 분간 나와 신랑은 상황 파악을 해야 했다. 남편은 차분히 공항 버스 직원에게 가서 전후 사정을 물어보았다. 직원은 답변은 이러했다. 오늘부터 파리 관제탑이 파업에 들어갔고 오후 4시 이후 비행기들은 대부분 운항이 취소된 상태라고. 더블린 행 비행기 역시 캔슬되었기 때문에 보베 공항으로 가는 버스 또한 취소되었다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답변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무심코 보았던 프랑스 파업 현장이 내 삶으로 들어오니 이건 생각보다 잔인했다. 파업에 대비한 임시 노선은 없었고 공항 관계자들 역시 자기네들과는 상관이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눈 앞에 캄캄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것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들은 '오늘 어디서 자야 되지? 이 티켓은 환불 받을 수 있나? 비행기 티켓은 어떻게 끊어야 하지?'처럼 대부분 돈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파리를 떠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나를 위한 하늘의 선물이었나? 그렇다고 이렇게 무책임한 선물을 주실 필요는 없는데.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다.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것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돈이 아까웠다. 오늘 자야 할 숙소를 찾아야 했고, 새로운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야 했다. 우리가 예매한 티켓을 환불 받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답은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이 된 후에야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타려던 사람에서부터 스페인으로 가려던 팀, 이탈리아로 가려던 팀. 모두들 이런 일들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황당한 표정들이었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큰 소리를 내거나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조용히 다른 비행기를 찾거나 숙소를 찾는 사람들의 풍경 또한 낯설었다.

자,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최대한 싼 가격으로 최대한 가까운 시간에 아일랜드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책임질 숙소 예약도 잊지 않아야 한다. 데이터 요금이 아까워 그동안 한번도 쓰지 않았던 휴대폰 인터넷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돈 몇 푼을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비행기를 예약해야 한다. 아일랜드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과 잠깐이나마 동지의 마음을 느꼈다면 이제는 그들보다 더 빨리 비행기를 찾아야 하고 예약해야 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탈바꿈하는 시간이었다.

느린 와이파이를 이용해 어렵게 다음 날 저녁 비행기를 예약했다. 그리고 다른 곳으로 옮길 여력도 없이 발품을 팔아 근처의 호텔을 잡았다. 파리에 있는 동안 지냈던 에어비앤비 숙소의 3배에 가까운 숙박비를 내고도 만족스럽지 못한 호텔을 찾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우리는 철저히 고립되었고 낯선 이방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안 시간부터 상황을 파악한 후 다시 비행기를 알아보고 호텔을 알아보기까지. 약 4시간은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시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순간은 아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잘 곳도 없는 우리 가족에게 너무나 길고 가혹했던 시간이었다 장밋빛으로 끝날 줄 알았던 파리 여행의 마지막에 이런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호텔방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웠고 그렇게 파리에서의 해프닝은 끝이 나는 줄 알았다.
덧붙이는 글 유럽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가족입니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을 맞아 2014년 6월 20일부터 28일까지 파리에 다녀온 여행을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파리 #파업 #비행기 #캔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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