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진보는 진보의 무덤이다

[김성호의 독서만세 28]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

등록 2014.09.25 17:52수정 2020.12.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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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뼈를 깎는 각오"로 출범했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꼴이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박영선 원내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유족의 뜻을 거스른 특별법 합의로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결국 정당혁신안으로 빚어진 내홍에 부닥쳐 침몰하고 말았다. 박영선 원내대표의 탈당 논란까지 나올 만큼 파행으로 치달았던 상황은 탈당의사 철회와 새로운 비대위원장 선임을 통해 일단락된 듯 보이지만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합의는커녕 제대로 된 혁신조차 하지 못하는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상당하다. 정권의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고 불만에 찬 민심도 대변하지 못하는 야당이라니 그 존재의 이유마저 의심되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진보와 야당, 나아가 한국정치의 위기다.


야당의 패배, 진보의 위기는 어디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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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 <싸가지 없는 진보>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08 / 1만 3000원 ) ⓒ 인물과사상사

돌이켜보자. 야당에게는 대체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었던가. 지난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권에 이르기까지 야당은 대체 무엇을 했고 무엇을 잃었는가. 뼈를 깎는 각오로 비대위를 출범시켰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계파 갈등이 전면에 드러났다. 내홍에 휩싸여 주저앉고 마는 제1 야당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있었던 지난 두 차례의 선거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우리 국민의 답변이다.

꾸준한 저술활동을 통해 사회와 정치에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신간을 냈다. 그는 그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를 통해 야당이 거듭 선거에 패배하는 이유가 싸가지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소위 진보 진영의 인사라 불리는 이들이 유권자의 감정을 돌아보지 않고 우월감에 차서 상대방을 일깨우려는 행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에게 무례한 언사를 일삼는 모습 등을 자주 보였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이런 태도가 감정에 무감각한 진보진영에 넓게 퍼져있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을 끝없이 심판하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오히려 그들을 얽어매는 족쇄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진보진영은 선거구제 개편이나 풀뿌리 정치의 실현 등을 통해 스스로의 체질을 개선할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가 이미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지역기반을 갖고 있으며 중앙정계에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진보세력은 기득권인 데다 공감능력도 없어 스스로를 개혁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기에 바쁘며 이러한 모습을 유권자들은 싸가지 없다고 이해한다는 말이다.

그의 진단은 다소 거칠고 과격하다. 그러나 현 상황에 비추어 보면 크게 틀린 구석도 없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는 섬뜩할 만큼 정확하다. 그는 유시민, 손학규, 이정희, 김어준, 김규항, 진중권, 안철수, 문재인 등 유명인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여러 사례를 들어 진보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리고 진보의 자책골로 인해 보수가 얻은 이득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작금의 상황에서 흥미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심판론과 비난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진보가 취해야 하는 전략은 무엇인가.

다소 거칠지만 의미있는 비판

저자는 의회정치는 물론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 여러 논객, 지역구도, 일베 논란까지 많은 분야를 아우르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마지막에는 대안으로 생활 공동체식 풀뿌리 정치활동의 정착을 내고 있다. 완결성 있는 저술이다.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한 의견을 비롯해 몇몇 부분에서는 다소 편협하게 느껴지는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던지는 메시지가 날카롭고 유효적절하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책에 실린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의 말을 소개하는 것으로 서평을 마친다.

"저는 결혼식, 장례식 때 교회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본 적이 없어요. 신도나 그 가족이 아프면 교인들이 와서 간병까지 해줘요. 친척보다 더 낫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의 '대가족제'를 유지합니다. 오늘 태어난 아이부터 내일 돌아가실 분까지 하나의 '가족'입니다. 실제로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릅니다. 정서적 유대감이 큽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는 아예 집을 한 채 구해서 상설 노인정을 운영합니다. 갈 곳 없는 노인의 거처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노인들이 교류하는 곳이에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곳도 많습니다. 정당은 왜 교회처럼 못합니까? 무료 법률 상담, 문학 학교, 영화 학교, 댄스 학교 등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을 거예요. 지금 한국의 정당은 재미를 주나요, 정보를 주나요? 아니면 새로운 네트워크에 참여할 기회를 주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월 1만 원씩 내라고 하면 누가 선뜻 내겠어요? 재미, 정보, 네트워크를 준다면 1만 원 아니라 10만 원도 선뜻 낼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바로 한국형 교회가 그 증거입니다." (본문 225쪽 중에서)
덧붙이는 글 <싸가지 없는 진보> (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 2014.08 / 1만 3000원 )

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4


#싸가지 없는 진보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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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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