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에 도시락을"... 홍콩의 우산시위는 진화한다

[현장] 장기화 조짐 보이는 '우산 혁명'... 학생·외국인 등 동참 늘어

등록 2014.10.06 18:28수정 2014.10.0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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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밤 홍콩의 학생 시위대가 최루탄을 이용한 경찰 진압에 대비해 마스크를 쓴채 행정장관 판공실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콩의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홍콩은 덥다. 계절은 무더웠던 여름을 지나가려나 싶지만 홍콩의 뜨거운 물결은 이제 막 시작됐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홍콩 사람들은 중심가에 모여 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혹자들은 거세진 시위에 '제2의 톈안먼'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별 대신 우산이 점령한 홍콩의 밤거리

지금의 홍콩은 '금융의 중심지' '야경의 도시' 같은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9월 22일부터 홍콩 내 24개의 대학교 학생들은 동맹수업거부를 결의하고 센트럴, 몽콕 등지의 번화가를 점거했다. 시위대로 인해 도로는 폐쇄됐고 대중교통은 마비되었다. 거리의 분위기는 짐짓 평화로우나, 금방이라도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이토록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것인가?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1997년 홍콩반환'에서 출발한다. 당시 홍콩의 반환은 중국의 역사적인 '일국양제'의 출발을 의미했다. 중국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는 과정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경제적 중요도를 고려, 영국식 자본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자치권을 보장한 바 있다.

그에 반해, 중국 정부는 자치 정부의 수반 격인 행정 장관의 후보 지명권을 가지게 됐다. 이 중국 정부의 후보 지명이 줄곧 문제가 된 것이다. 사전검열을 통해 철저히 반중(反中) 인사가 배제됐다. 또한, 1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거방식도, 선거인단 선발의 투명성에 대해 끊임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후보 지명의 사전검열 폐지'와 '보통 선거권', 이 두 가지가 반환 이후 홍콩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시위의 핵심이자 지금의 화두이다. 

그 동안 홍콩 내 크고 작은 시위는 꾸준히 발생해 왔다. 그러나 이번 시위만큼 격렬했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이번 시위의 불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것인가? 우선, 현재 홍콩 시민들의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은 1995년 이래 최고조에 달해 있다. 홍콩대학교(University of Hong Kong)의 지난 9월 홍콩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1000명의 응답자 중 52%가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에, 신뢰를 보인 응답자는 30%에 그쳤다.

이러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기존의 선거 개혁안을 번복했다. 중국 정부는 원래 인민회의에서 오는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 투표를 보통 선거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선거개혁안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중국 인민대표회의는 오히려 보다 엄격한 조건으로 후보 선출과 투표를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하며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여기에 '최루탄·최루가스 살포'라는 경찰의 무력 진압이 단단히 한 몫 했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은 공권력의 무력에 분노했고, 부상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에 절규했다. 그렇게 시위는 초기의 수업 거부(Strike)라는 표현에서 벗어나, 이제는 저항(Protest)이라 불리고 있다. 지금 홍콩의 밤거리는 더 이상 별빛과 네온사인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밤의 모습이 아니다. 대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우산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자원봉사에 나서는 학생부터 외국인까지 시위 동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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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반중 시위 사태 9일째를 맞은 6일 오전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공무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업무에 복귀했다. ⓒ 연합뉴스


정부 청사가 위치한 홍콩섬의 어드미럴티 역을 지난 2일 찾았다. 번화가로서의 기능이 상당 부분 마비된 상태에도 불구하고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위에 참여하기보다는, 시위대를 독려하거나 시위 지역을 되돌아보면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 그들의 목적인 듯싶었다. 역 바깥으로 나와서 본 어드미럴티 지역은 본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각 학생 단체에서 가져온 수많은 천막과 우산, 뜻 모를 온갖 걸개들, 그리고 도로를 메운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외부의 우려 섞인 시선과는 대조적으로 시위대의 분위기는 대체적으로 평온했다. 하지만 일말의 긴장감은 여전히 감지됐다. 시위대를 찾은 한 친중(親中) 시민과 격렬한 논쟁을 펼친, 홍콩 시민 크리스틴(28)씨는 "나 자신도 센트럴에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이지만 홍콩의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라며, "시위를 성공으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지원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에게 무료로 물을 나눠주는 봉사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알렉스(16)라고 소개한 그는 고등학교(Secondary School)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그는 "중국 정부가 홍콩에 취하는 태도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면서 "이번 시위를 통해 홍콩 시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단결됐으며, 내가 자발적인 봉사활동에 나선 이유"라 덧붙였다.

한편, 관광객을 비롯한 홍콩 내 많은 외국인들도 시위 장소를 찾아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데이브(35)씨는 "자신의 여섯 살 난 아들에게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고 싶어 온 가족과 같이 왔다. 나중에 아들이 이 모습들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라고 시위 지역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엇갈리는 시선, 시위 반대하는 시민도 존재한다

홍콩 내 언론과 외신이 조명하고 있는 시위 모습의 이면에는 대규모 시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홍콩 내에서도 친중 성향을 견지하는 시민들이 분명 존재한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생계와 직결되는 경제적 타격으로 인해 이번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다.

정부 청사 근방의 센트럴 곳곳의 주요 은행 및 상점들은 영업을 중단하거나 일찍 문을 닫았다. 일대의 모든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비단 홍콩섬뿐만이 아니다. 구룡 반도 지역의 시위대 집결지인 몽콕은 시위대의 점거 농성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길이 줄었다. 이로 인해, 관광 수입이 대부분인 몽콕 거리의 노점상과 시장 상인들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홍콩 시민 안드레아(29)씨는 이번 시위에 반대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이번 시위를 이끄는 대학생들은 너무 감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홍콩의 시위는 중국을 자극하기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시위는 모두가 지는 '루즈 루즈(lose lose)게임'일 뿐"이라며 "이번 이슈로 인해 홍콩이 받는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홍콩 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의 입장도 갈린다. 홍콩 시위가 더욱 격렬해지는 이 상황이 무섭고 불안해서, 시위를 적극 지지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시위가 격해진 센트럴 지구로 출근하는 미국인 스티브(29)씨는 "출근길에 시위 지역을 지나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며 "시위가 격해지면서 업무에 지장을 받을까 걱정된다"라며 우려의 뜻을 밝혔다. 반대로 홍콩 사람들의 민주화 시위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하고 참여하는 외국인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홍콩 중문대학교(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교환학생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직접 시위에 참여하는 글도 올라오고 있다. 독일 출신의 한 학생은 "친구와 함께 시위 현장에서 밤을 새며 참여할 예정이다"라며 "함께 참여할 사람들은 연락해 주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려 외국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그들 시위 현장에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고 필요한 지원 물품을 모아 가져다주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그들은 이번 민주화 시위의 움직임에 감동을 받고 뜻을 함께 모으고 있다.
           
복잡한 정치 문제... 홍콩 우산 혁명 성공할까

홍콩의 이번 시위는 앞서 언급한 대로, 중국의 독특한 정치 체제인 '일국양제'와 관련이 깊다. 단순히 중국과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만, 마카오, 티베트 등 중국 내 여러 자치구의 정치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자치권과 통제권 사이에서 중국 본토는 언제나 강경한 입장을 취해 왔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자칫 다른 자치구의 민주화 열망을 불러일으킬까 우려하고 있다.

중국 중앙 정부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인스타그램'마저 통제하는 등의 강경책을 쓰는 이유다. 홍콩의 시위 관련 뉴스가 중국 대륙으로 전해지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홍콩 대학생들은 다양한 SNS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시위대를 지지할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홍콩 내 유력매체들은 이번 시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빈과일보(蘋果日報) 등의 범민주파에 우호적인 매체들은 이번 시위를 지지하며, 홍콩 경찰과 중국 정부의 대응에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 문회보(文匯報)와 같은 친중 매체는 학생 단체의 지도부가 미국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등 이번 시위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시위에 대한 평가는 갈리고 있지만 이번 시위가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모든 언론이 그 궤를 같이 한다. 몇몇 지도부의 지시에 의해서 행동하던 기존의 시위와는 다르게, 각각의 독립적인 단체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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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의 온라인판 메인 화면. 시위 생중계 링크를 톱에 배치한 모습이다. ⓒ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홍콩 언론은 저마다 시위대의 24시간 동향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이번 시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언론 반응은 다양한 의견이 혼재한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지는 지난 5일, "시위대가 거리 점거를 철수한다면, 홍콩 정부는 학생 단체와의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하며, 정부가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나선 것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간 홍콩 정부는 학생 단체의 대화 요구를 일체 무시한 바 있다.

한편, 시위의 궁극적인 성공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역시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에 사설을 기고 중인 하워드 윈은 그의 사설에서, "중국의 홍콩 단체여행 금지 정책으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입은 홍콩 시민들이 이번 시위에 대해 등을 돌릴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학생들은 이번 시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앞만 보기 보다는 대중의 지지를 잃기 전에 멈출 필요도 있다"고 진단했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고조됐던 분위기는, 시위대의 건물 봉쇄 완화에 따라 다소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홍콩 행정부장관이 건물 봉쇄를 풀면 대화에 나서겠다고 한 제안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6일 오전, 봉쇄 완화에 따라 홍콩 특별행정구 공무원이 업무에 복귀했고 일부 학교의 휴교령도 풀렸다. 그러나 아직 수백 명의 시위대가 도로 점거를 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은 홍콩의 민주화 시위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국도 홍콩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민주화 시위로 인해 아시아 금융의 허브라 불리는 홍콩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쉬이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의 움직임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모두가 무사히, 인명피해 없이 평화적인 해결방법을 찾는다면 무리한 바람일까.
#홍콩 #우산혁명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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