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소녀들의 반란 '빙신당 전당대회'

[홍대기생의 게스트하우스 창업기10]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은 청년의 대안적 '발악'

등록 2014.10.17 18:12수정 2014.10.1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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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게스트하우스 대관에 대해 문의하는 단체들이 간혹 가다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받은 메일은 쉽게 넘기기 어려운 성질의 것이었다.


<행사장 대관요청>
행사명 : 빙신당 전당대회
부제 : '그런 나쁜놈인줄 알았더라면'
취지 : 사회와 남자에게 상처받은 빙신여성 4인이 2006년 이래 출범 8주년을 맞아 빙신당 전당대회를 열고자 합니다. 주요행사로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선출 등 당내 간부 선출과 맥주 100캔 마시기 대단합 등이 있습니다. 사전행사로 당출범에 가장 큰 기여를 하신 최대표님에 대한 헌정식이 있을 예정이며 이후 그와 헤어진 나쁜놈의 연락처 및 잡다 메시지 삭제식이 거행될 예정입니다.


그들은 첫 입장부터 남달랐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20대여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자전거 하이킹용 타이즈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그 연유를 묻자,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한 복장이란다. 이럴 수가! 레일바이크를 정말 바이크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니.

부연 설명을 하자면 레일바이크란 안 쓰는 철로 위에 자전거 페달로 움직이는 작은 마차 형태의 자전거를 놓고 움직이는 여행 기구다. 그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근력은 오리배를 몰 정도의 발놀림 정도면 충분하다. 뭔가, 엉뚱하면서도 진중한 그들의 첫인상을 보고 역시 올 것이 왔음을 짐작했다.

그들은 서로를 큰빙신, 작은빙신으로 낮춰 불르고 있었으나, 그렇다 해서 눈꼽만치도 주눅든다거나 자조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과도하리만치 밝았고, 또 과도하리만치 말이 많았다. 음악치료사인 내 경험상, 일단 말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울증 가능성이 현저하가 낮다. 불필요한 말을 해서 손가락질을 받을망정, 불필요한 감정들을 속에 쌓아두고 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한국여성들이 가장 많이 앓았던 질병 중의 하나가 바로 위장병인데, 그것은 흔히들 얘기하는 '속병'과도 맥을 같이 한다. 참고 참을 것을 강요받아 속병이 생긴 사람의 소화기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내 추측대로 그들은 쉼없이 술과 고기를 먹어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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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를 축하하며 와인증정 이 사회를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말이 많아져야 한다 ⓒ 강드림


정치외교학 전공자들답게 그들은 남자들에 대한 분노 외에 한국 정치에 대한 분노까지 토해내었다. 보통의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는 쉽게 꺼내기 힘든 사안이 될테지만 이들은 거침이 없었다. 함부로 정치색을 드러내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편가름에 대한 주저보다는 정치는 바로 내 일상을 좌지우지 하는 문제임을 실감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그들이 보여준 통렬함에 나도 모르게 시원함을 느꼈다. 정치얘기가 나올 때 곧잘 '전 그런거 관심 없어요'를 흡사 매우 쿨한 모습으로 착각하는 몇몇 젊은 여성들과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빙신처럼 살고 있지만 그것은 이 사회가 빙신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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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그들의 반란 체면과 도도 대신 그들은 본능을 택했다 ⓒ 강드림


그렇게 그날의 파티는 새벽 무렵에서야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들은 태연히 아무 일 없다는 듯,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그들이 남긴 자리는 셀 수 없는 술병들이 나뒹굴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의 여성들은 말벙어리 귀머거리를 은연중에 강요받고 있다. 잘 듣고, 잘 말하는 여성에 대해서 칭찬은커녕 자제를 말하는 경우도 아직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들은 빙신이 아니라 '신'일지도 모르겠다. 단, 그리스의 신마냥 인간처럼 미워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욕망하는 그런 신 말이다. 그들과 함께 했던 밤이 내게는 하나의 신화처럼 남았다. 그들은 여전히 낡은 신화 속에 살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을 깨우는 신성(晨星)이었다.
#춘천 #게스트하우스 #인간실격패 #강드림 #빙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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