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과잉 충성, 당해보니 어이없다

[주장] 세월호 참사 이후, 날로 더해가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

등록 2014.10.28 15:06수정 2014.10.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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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8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여의도 KBS본사를 항의방문한 모습. ⓒ 권우성


11월 1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200일이 되는 날이다. 4월 16일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304명을 태우고 침몰한 일은 그 자체로도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충격은, 304명이 무능한 정부와 해경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바다 속에서 죽어야 했던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수많은 문제들을 수면 위로 불러냈다. 자본의 문제, 언론의 문제, 공권력의 문제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난 5월 8일 밤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날 세월호 유가족들의 머리 위에서 KBS를 봉쇄한 경찰 차벽을 내려다보던, 70여 개의 영정사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그 추웠던 어버이날 밤, 청와대로 향한 유가족들은 자식의 영정사진을 안고 경찰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제발 비켜달라'고 빌었다. 유가족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공권력'에 의해 물대포를 맞고, 연행되고, 채증당하고, 가던 길을 제지당해야 했다.

삼청동을 걸었을 뿐인데, 경찰이 막았다

지난 9월 13일, ㅈ(20)씨는 경복궁역에 내려서 통인시장 방면으로 걸어가다가 경찰들에게 제지를 당했다. 소속은커녕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경찰은 그에게 가방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ㅈ씨가 요구에 불응하자 경찰은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 목적지를 설명하는 등 한참을 이야기한 뒤에야 길을 열어준 경찰은 대놓고 ㅈ씨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오히려 ㅈ씨에게 '그 방향이 아니다'라면서 말을 걸기도 했다.

지난 6월, 경찰은 삼청동을 걸어가던 ㄱ(24)씨의 앞을 막았다. ㄱ씨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막지 않고 자신의 앞만 막은 경찰에게 항의를 했지만, 경찰은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ㄱ씨가 계속 항의하자 경찰은 어디에 가는지 물어보고 가방을 열어보라고 요구했다. 결국 ㄱ씨는 다른 길로 돌아가야 했다.


이렇듯 불심검문을 당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런 일이 아직도 있냐'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군사정권 하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2014년 현재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이다.

불심검문은 제한된 조건 하에, 경찰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진행되어야 하지만 실제 불심검문에서 그런 절차가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 과정에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가방을 열어보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에 채증을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5월에는 경찰이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는 이유로 경복궁 관람객을 불심검문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찰이 벌이는 과잉충성, 이 정도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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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세월호침몰사고 희생자 추모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범국민촛불행동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희훈


경찰이 법까지 위반해가면서 벌이는 '과잉충성'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20일 박남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집회시위 금지가 지난해에 비해 3배 넘게 급증했다. 또한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 카카오톡 압수수색도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12년 143건에서 2013년 356건으로 증가했다.

급증한 집회시위 참가자의 현행범 체포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2012년 집회시위에서 연행된 사람은 129명이었지만, 2013년에는 839명이 연행되었으며, 2014년에는 이미 7월에 508명을 기록했다. 이렇듯 결코 좋지 않은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경찰은 이를 표창의 계기로 삼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을 많이 연행했다는 이유로 경기청 5기동대 소속 4명에게 '집회관리 유공' 명목의 표창을 내린 것이다. 지난 23일 난 5월 18일 침묵행진과 6월 10일 만인대회로 인해 조사를 받았는데, 조사 과정 중 검사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때문에 몇 백 명이 전과자가 되었는지 아냐." 전과자 양산을 걱정한 이 검사가, 경찰의 과잉대응과 표창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요즘 경찰의 집회시위에 관한 대응 중 논란이 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지난 22일부터 적용하기 시작한 강화된 집회시위 소음 규제기준이다. 경찰은 주·야간의 소음기준을 각각 5dB씩 낮추고, 5분씩 2회 측정하던 것을 10분간 1회 측정하는 것으로 바꿨다. 지난 24일 새누리당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주관의 새누리당 규탄 집회에서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소음 측정기를 든 경찰들을 보았다.

경찰은 '국민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는 법률에 따라 엄격히 제한된 조건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법률도 아닌, 시행령에 따라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 등의 소음기준을 이야기하며 외국 또한 집회시위의 소음에 대해 벌금을 부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국은 주마다 기준이 달라, 우리나라보다 낮은 곳도 있고 높은 곳도 있다. 더구나 경찰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소음기준을 갖고 있다고 하는 국가들에는 대부분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외국의 사례에 대한 경찰의 주장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 제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어떠한 사회적 논의 없이 경찰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집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세월호 이후 가장 와 닿았던 건 공권력 남용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가 갖고 있었던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외치던 시민들에게 가장 와 닿았던 건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었다.

침묵행진을 하던 시민들을 연행하고, 사회시스템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채증카메라를 들이대고, 혐의와 상관없는 개인정보를 털고... 부끄럽지만, 이것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공권력이 우리에게 보여준 민낯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드러난 문제점은 많고 다양하지만, 우리가 나가야할 방향은 명확해졌다.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의 남용 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법치주의'는 국가가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제하라는 의미에서 나온 개념이 아니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불가피하게 침해할 때, 엄격한 법적 절차와 요건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의 '법치'라고 고등학교 <법과 사회>과목 시간에 배웠다.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져야 하고, 강해져야 하며 이것들을 가능하게 할 제도적 장치들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기다.
#세월호 #경찰 #공권력 #연행 #불심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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