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묵비권 알레르기', 도가 지나치다

검찰, '피고인에 묵비권 행사' 민변 변호사 7명 징계요청... 충돌 양상

등록 2014.11.06 14:22수정 2014.11.0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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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대한문 앞 집회와 탈북자 사건, 세월호 사건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들에게 대한변협에 징계개시를 신청한 가운데,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의 징계개시신청은 공안탄압이다"고 규탄하고 있다. ⓒ 유성호


검찰이 뉴스메이커로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7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요청하면서 민변과 정면충돌 양상이다. 이런 '이례적' 요청에 대한 검찰 측 설명 가운데 하나는 "세월호 집회 관련 피고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의뢰인 관계의 성격상 '강요'라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인 표현이고 방점은 '묵비권'에 찍힌 듯한데, 묵비권을 이유로 검찰이 변호인의 징계를 요청하다니 뭔가 코믹한 상황이다. 코치가 경기장 옆에서 선수들에게 조언할 수는 있지만 너무 큰소리로 외치면 안 된다는 것인가? 법정 공방의 당사자인 검찰로서는 상대방인 변호인의 조언이 미울 수는 있겠지만 그걸 가지고 징계 운운하다니, 이젠 괘씸죄도 정식 죄목인가 싶다.

묵비권과 관련한 검찰의 과잉반응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은 민변 변호사들이 대상이지만 과거엔 현직 검사도 곤욕을 치렀다. 몇 달 전까지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을 했던 금태섭씨가 주인공이었다. 지난 2006년 9월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소속 검사이던 그가 <한겨레>에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한 것이 발단이었다.

"피의자로 조사를 받을 때 아무 것도 말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단순한 내용이 파란을 몰고 왔다. 원래는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었으나 검찰쪽 압박 속에 '자진 중단' 형식으로 1회 만에 막을 내렸다. "현행법상 피의자 또는 사건 관계인들에게 인정되는 권리의 행사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라고 권유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고 했지만 검찰의 불편한 심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민변 변호사 징계 요청은 검찰의 묵비권 알레르기

당시 금태섭 검사는 "소속 기관장의 사전 승인 없이 일간지에 수사현실을 왜곡하고 검찰의 공익적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 사견을 임의로 기고했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의 경고 처분을 받았다. 이후 "편법적으로 이뤄진 사실상의 징계"라는 의심 속에 그는 인사발령을 받아 수사 일선을 떠났고 다음 해 1월 결국 옷을 벗었다. 거칠게 정리하면 '묵비권'을 옹호한 결과다.

당시 많은 사람이 금 검사의 연재에 환호했고 검찰의 대응에 분노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한겨레> 기고를 통해 "수사기관에서 말을 하지 말라는 금 검사의 충고는 사실 헌법 제12조를 그대로 읽어 준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는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상기시킨 것뿐이라는 지적이었다.


2006년의 금태섭 검사 기고 중단이나 지금의 민변 변호사 징계 요청이나 모두 검찰의 묵비권 알레르기에서 비롯된 듯하다. 피의자가 침묵하면 검찰이 답답하겠지만 그 답답한 분노를 변호인에게 돌리는 것은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태도다. 수사기관이 범죄용의자를 체포할 때 미리 알려주게 되어 있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의 근거도 헌법 아니던가. 우리 사회 최고의 가치규범인 헌법이 불만이라면 헌법 소원을 내면 될 일이다.

오랫동안 공부해 힘든 시험에 합격하고 법에 있어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이해가 이런 수준이라니 창피하다. 일찍이 금태섭 검사가 선언했던 것처럼 "변호사를 동반하지 않은 피의자를 상대로 밤새도록 똑같은 질문을 해서 자백을 받는 시대는 지났다". 한동안은 각종 국가기관이 나서 '입 다물라' 하더니 이젠 '입 열라' 윽박지르는가. 대체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
덧붙이는 글 '활골닷컴'(http://hwalgol.com/)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습니다.
#묵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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