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은 어떻게 대한민국을 지배하는가

[서평] 이동연의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

등록 2014.11.19 18:06수정 2014.11.2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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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났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예전에만 해도 이런 말을 흔히 마을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자유주의 자본 우선' 사회가 아닌가.


가끔 언론에서 수능 만점자나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학생을 인터뷰하면서 은근히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것처럼 보도할 때가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 교과서만 공부했노라 읊조린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일부의 예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해당한다. 일종의 조작이다. 현실은 자본이 지식과 권력을 지배한다.

어떻게 재벌이 탄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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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 표지 ⓒ 북오션

왜 부익부 빈익빈은 계속되는가? 여기에 대해 '재벌'이란 특수한 형태의 기업 문화가 있는 한국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추며 대답한 책이 있다. 이동연의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가>가 그것이다. 저자 이동연은 <대화의 연금술>, <소비트렌드>, <CEO형 인재>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낸 작가다.

저자는 '재벌(CHAEBOL)'이란 단어가 영어사전에 우리말 발음 그대로 등재되었다는 데 착안해 한국의 트레이드마크 '재벌'에 대하여 해부한다. 저자에 의하면 정치와 재벌은 공생 관계다. 새 대통령이 설 때마다 재벌 개혁을 외치지만 결국 재벌에게 지고 마는 것은 그들의 미끼에 취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주소가 있다고 한다.

소위 1%가 사는 재벌시(市) 정치인구(區) 관료동(洞)과 99%가 사는 서민도(都) 자영업자군(郡) 비정규직(面)이 있다. 이 두 지역 사이에 거주 이전의 자유는 형식일 뿐 실제론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소통이 멈춘 사회는 흐르지 않는 물처럼 썩기 마련이다.(6쪽)


재벌과 정치인은 서민이 사는 동네 사람이 아니다. 재벌 중심의 경제 성장 기조가 무너지지 않는 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허울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이 책은 재벌의 태동기인 광복 후부터 적산 불하, 사채 동결, IMF, 출자총액제한제, FTA 등의 경제적 줄기들을 짚으며 재벌이 어떻게 정치와 야합하며 성장했는지에 집중한다.

재벌은 대한민국의 정경유착이 만들어낸 세계사적 기업형태다. 1941년 동양척식주식회사가 토지를 헐값에 불하하고, 해방 후 미군정이 일본인 재산(적산)을 불하하는 과정에서 재벌이 탄생했다. 거상 박승직의 장남 박두병이 기린맥주(OB맥주)를 불하받는 등 김성곤의 쌍용그룹, 민후식의 해태그룹, SK그룹, 삼성물산, 한화그룹, 대한양회 등이 이때 등장하게 되었다.

미군정은 '친미반공' 노선의 이승만에게 정권을 넘겼다. 이승만이 일제의 은행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줌으로써 재벌이 형성됐다. 삼성의 이병철에게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을 헐값에 매각한 것도 이때다. 친일로 태동한 재벌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유착하며 몸집을 키웠다.

어떻게 재벌이 성장했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재벌 우선 정책의 대부였다. 그의 고환율 정책은 고물가로 국민에겐 고통이었지만 수출 기업에게는 환차익으로 수익이 극대화되는 구조였다. 1972년의 사채 동결 조치는 그야말로 재벌에게 날개를 달아준 사건이었다. 빚을 얻어 경영하던 재벌들이 상상도 못할 특혜를 입은 것이다.

수출위주 정책은 삼성물산, 국제상사, 현대종합상사 등의 종합상사들의 태동을 도와 재벌이 몸집을 불리게 했다. 이때 기업은 정권에 로비하는 게 주요 업무였고, 기업은 로비자금 마련을 위해 탈세, 부동산투기, 밀주 등 돈 되는 일은 다하는 형국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1980년 공정거래법, 대규모 기업집단법, 총출제 등을 시행함으로 재벌에 칼을 대는 듯했다. 그러나 삼성에 율곡사업과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의 특혜를 주며 220억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특혜와 정치자금은 전두환 정권의 재벌과의 공생 방식이었다. 현대에 220억, 그 외의 재벌들에게도 수천억대의 비자금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 때도 1조 7천억 원 가량의 정치 자금을 마련했다. 3천억 원은 차기 김영삼 대통령에게 넘겨줬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정치 자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출발했다. 그러나 금융 실명제 이후 재벌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지나친 개혁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논리로 정부와 맞섰다.

재벌의 반발은 경제성장을 이뤄야 하는 정부로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IMF 사태가 터지고 결국 재벌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입지를 보전했다. 이어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산과 맞닥뜨린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의 논리는 자본가들의 세계화를 지향한다. 규제를 철폐하고 자유 시장 질서로 나가자는 것이었다.

외국 기업과의 경쟁해야 한다는 이유로 총출제가 폐지되었다. 결국 이때 5대 재벌의 출자액 중 96%가 계열사에 집중되었다. 재벌만 덩치를 키운 꼴이다. 양극화는 더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어땠을까? 일자리창출과 신성장동력을 명분으로 '기업 도시법'을 제정하여 '전무후무한 재벌특혜법'이란 말을 들었다.

금산법 개정도 유예기간 때문에 '삼성 봐주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의 순환출자 구조를 완성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기업은 살찌고 서민은 우는 환경이 조성되고 말았다. 개혁을 부르짖기는 했지만 재벌은 더욱 세를 불렸다.

이어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노골적으로 대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폈다. 'MB노믹스', '줄푸세 747(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를 세우는)'은 박정희 시대로의 회귀였다. 고환율정책으로 수출을 늘리자는 것이어서 이때 재벌이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

세금을 줄여 기업이 이익을 내면 서민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낙수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다. 4대강 사업으로 기업은 살찌고 환경과 서민은 찌들었다. 복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도외시했다. 결국 망국적 '두 별의 세계-극빈층과 극부층'만 늘어났다. 1%와 99%가 더 먼 동네 사람이 되었다.

두 동네 간 이전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을까?

대한민국이 더 이상 1%가 사는 재벌시(市) 정치인구(區) 관료동(洞)이 주도하는 나라가 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개천에서 용 났다'는 표현이 진리인 나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을까? 책이 제시하는 대책대로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우선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유럽의 몰락 가운데서도 북유럽은 건강했다. 일례로 스페인이 성장 위주였다면 스웨덴은 복지 위주였다. 바로 보편 복지였다. 복지보다는 성장, 증세보다는 수출 위주의 정책은 재벌이 하는 말이다. 정부는 이 말을 진리로 믿고 있다. 안철수의 "삼성, LG 등의 동물원에 한번 잡히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는 말은 유명하다. 이젠 동물원에서 나와야 한다.

저자는 보편 복지가 바로 성장이라는 말을 해야 할 때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균등하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영미식 선별복지를 버리고 북유럽의 보편 복지로 가야 한다. 재벌의 집에서 모든 서민이 종노릇하는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 저자는 '기본소득제(노동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주어야 한다)'를 행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공산주의보다 더 진보적인 공산주의. 그러나 책을 전체적으로 보면, 부자 증세를 통해 균형 있는 사회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MB정부와 같은 세금을 안 걷고 복지를 줄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실패할 게 뻔하다.

차제에 이런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버리고 덴마크가 하고 있듯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리고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러면 1%의 동네가 없어진다. 물론 99%의 동네 또한 없어진다. '부익부 빈익빈'이란 말이 사라질 것이다. 비로소 거주이전의 자유가 명실공히 이뤄지게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가>(이동연 지음 / 북오션 펴냄 / 2014. 11 / 280쪽 / 1만 5000원)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가

이동연 지음,
북오션, 2014


#우리는 왜 재벌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 #이동연 #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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