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싱글인 내가 교육 최전방에 뛰어든 이유

[새들교육문화연구학교⑫] 나의 오늘이 우리 아이들의 희망이다

등록 2014.11.20 15:56수정 2014.11.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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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 기자말

교육이라고 하면 흔히 선생님과 학생만의 문제라고 떠올리기 쉽다. 그 영역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부모와 자녀 정도 역시 포함될 수 있겠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교육과는 무관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는 올해로 3년이 되었고, 미혼 여성인데다가 NGO 단체에서 디자인 업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여름 즈음이었다. 대안적 삶을 꿈꾸며 함께 모여 사는 마을로 이사하며 어린이집 선생님, 대안학교 선생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매일 아이들을 마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살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아이들의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뿐이랴. 바로바로 영향을 받아들이는 스펀지 같은 흡수성부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변화에 적응하는 역동성까지 아이들의 생명력은 끝이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아이들이 뿜어내는 무한한 생명의 기운이 나에게까지 뻗친다는 것이다. 가슴이 벅찼다.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에서 진행하는,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 소식을 들었다. 생명의 교육이라는 말에 마음이 동했다.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 신청을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교육의 장에 뛰어드는 것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고 여겼다. 나는 아직 20대 미혼 여성이니까! 하지만 교육문화연구학교를 거듭할수록 내가 누구보다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대 미혼여성도 교육 문제에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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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모듬북 공연을 하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 새들마을학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아이들을 만나고, 부모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아이 셋을 키우는 것만도 벅찬데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현실.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육아를 남편 눈치 보며 혼자 도맡아야 하는 현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피곤한 하루 탓에 아이가 넘어지기만 해도 소리 지르며 혼내게 되는 현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부모도, 교사도 아니지만 공감하게 된다.


내가 일하는 NGO 단체에는 두 분의 '아빠'가 있다. 우선 이제 갓 100일이 넘은 아들을 둔 아들바보 아빠가 한 명 있다. 그리고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의 아빠가 또 한 명 있다. 연말이 다가오는 요즘, 우리 단체는 야근이 잦은 탓에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헌데 주말이 지나도 두 분의 얼굴에는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평일 내내 육아를 하느라 미뤄 둔 집안일을 하고 아빠를 기다린 아이들과 놀아 주다 보면 쉬어도 쉬는 게 아니란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일을 줄여야 한다. 회사에서는 그것이 불가하다. 회사를 그만두면 경제적으로 아이 기르는 것이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몸을 두 개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어쩔 수 없지 뭐. 더 열심히 해야지"뿐이다. 이처럼 교육은 삶의 한 부분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사회적 구조와 문화, 시대적 상황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나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나의 일상생활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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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명구


모두가 가르치고, 모두에게서 배운다

지난 14일에 진행된 교육문화연구학교 6번째 시간에는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의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의 8장부터 14장까지를 읽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에 나오는 프리스쿨의 미술시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선생님인 미시는 이젤과 스케치북을 챙겨 들고 조용한 구석자리를 찾아 앉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자기를 그려 달라며 모여든다. 그러면 미시는 모델이 된 아이를 그려 낸다.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아이들로서는 자신이 그려진다는 경험, 또 자신의 이미지가 미시의 스케치북 위에 서서히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가히 매혹적이다. 미시는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계속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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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새들마을학교 학생. ⓒ 새들마을학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교육과정과 다른 점은 가르침이 일방적으로 이론을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시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스스로 어떻게 느끼는가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미시는 그리는 일을 좋아하고, 그녀의 즐거움은 확산되어 교실을 가득 채운다. 3일째쯤 되면 미시가 모델이 되어 있다. 모델을 했던 아이가 이제는 미시를 그리는 것이다. 그 수업이 끝나 갈 무렵이면 교실은 다른 아이의 모습을 그리거나 자기 모습을 그리는 아이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처럼 프리스쿨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부모와 자녀, 그리고 어른의 역할이 고정되지 않았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모두가 가르치고 모두에게서 배운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 시간이 미술시간인지조차 모른다. 수업시간조차도 한 가지 방식으로 고착화 되어 있지 않다.

프리스쿨의 미술시간처럼 고착화되지 않으려면 매 순간 누구에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비단 이것은 교육 현장에서만 필요한 자세는 아니다. 상대에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편견 없이 만난다는 것이고,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만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허나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사람을 학벌, 직장, 스펙으로 평가하고, 마치 하나의 상품인 양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이 당연한 일이 어색하고 어려운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최전방은 바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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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문화연구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오연호 대표. ⓒ 이명구


지난 10월 17일 진행되었던 교육문화연구학교 3차 세미나에서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저자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를 모시고 덴마크의 교육부터 역사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관련 기사: 덴마크 칭찬은 했지만 이민은 가지 마라) 그중에서도 자유학교들의 공통점이 기억에 남는다.

덴마크에는 자유학교들이 여러 개 있는데, 이 자유학교들의 공통점은 '살아 있는 말'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다. 자유학교의 한 선생님은 "우리는 학생들이 유연한 생각을 하길 원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공동체 속에서 살아있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어울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살아 있는 말'이란 무엇일까?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서도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스펀지 같은 흡수성을 생각하며 아이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기도 했다. 좋은 어른이고 싶었다. 친밀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으면서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으며, 아이들은 내가 아이들 앞에서만 좋은 어른인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생명의 기운을 전해 주고 싶다면 실제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 조심하는 말과 행동이 몸에 배도록 평소에도 그렇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 그랬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하는 말이 '살아 있는 말'이 되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에 나오는 프리스쿨로 돌아가 보자. 프리스쿨은 학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가 있고, 프리스쿨 커뮤니티가 있다. 공동체 속에 공동체가 있는 것이다. 이 커뮤니티는 학교의 유기적 발전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면서 점차적으로 맺어진 공동체이다. 프리스쿨 커뮤니티는 함께 모여 사는 열 두 가구가 공동의 관심거리, 사업거리, 일거리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프리스쿨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게 들린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안양의 마을공동체에도 '새들마을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새들마을학교'에서는 이미 가르침과 배움의 경계가 없는 다양한 교육방법을 시도하고 있으며, 프리스쿨처럼 마을 공동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이모 삼촌들이 하나둘씩 축구장으로 모인다. 마을 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를 한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학교 아이들 중 원하는 친구는 금요일 저녁에 학교에서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달려 나온다. 신나게 땀 흘리고, 함께 아침밥도 먹는다. 체력단련도 하고 이모와 삼촌들의 사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난 후에는 텃밭 농사를 한다. 물론 학교에도 농사 수업이 있다. 농사에 더 깊은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이모 삼촌들을 따라 또 농사를 하러 가는 것이다. 아이들도 이모 삼촌들에게 배우지만, 이모 삼촌들도 아이들과 더불어 배운다. 그렇게 농사를 하고 있으면 인근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어른들이 직접 비법을 전수해 주시기도 한다. 아무리 사회가 핵가족화 되었다지만 아이를 보는 어른의 그 마음은 여전히 푸근하다. 이웃 어른들께는 이모 삼촌들도 아이들이다. 이러한 어른을 만나고 나면 이 시대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며, 힘을 내게 된다.

주말에는 몸을 부비며 만나고, 주중에는 마을밥상에서 만난다. 일 주일에 두 번 있는 마을밥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일일식당 같은 곳이다. 마을밥상에 가려면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 학교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후 마을 곳곳에서 놀다가 마을밥상으로 오곤 한다. 이때 만나는 아이들은 일터에서 지친 이모 삼촌들에게 활력소가 된다. 함께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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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을 다니며 길이를 재는 새들마을학교 학생들. ⓒ 새들마을학교

이처럼 배움은 마을 곳곳에서 일어난다. 수학 시간이라고 해서 교실에 앉아 공식과 씨름하지 않는다. 길이를 배우기 위해 근처 운동장으로 나가 길이를 재고, 도형을 배우기 위해 골목골목을 다니며 숨어 있는 도형을 찾는다. 마을에서 학교 아이들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배드민턴장을 무료로 개방해 주는 일도 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이처럼 뜻하지 않은 만남을 선물한다. 유기적이라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사는 것 아닐까?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런 것 아닐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후반부에 보면, 덴마크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 통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실이 바뀌면 사회가 바뀌지만,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교실을 바꾸는 일이 너무 힘들다. 그러므로 교실의 혁신과 사회의 혁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

교육은 삶이다, 그 곳에 희망이 있다

그렇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이 사회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는 나의 문제다. 새들마을학교 아이들이 졸업하고 사회로 나왔을 때, 아이들이 배운 대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지금 이 사회에서 그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바로 내가 이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인식하여 시대적 상황에 맞서는 삶을, 내 앞에 마주한 사람이 누구든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난 교육문화연구학교 세미나를 통해 덴마크와 프리스쿨의 사례를 보며, 살아 있는 말을 하려면, 살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20대 미혼여성인 내가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나뿐이랴.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아이가 없어도, 심지어 조카마저 없다 하더라도 교육에서 배제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미 교육의 최전방에 서 있다!

교육이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교육이 '모든 것'이라는 말이다. 교육이 나의 '모든 것'이라는 말은 곧 '삶'이라는 말이다. 교육을 누구 아버지의 문제, 어떤 선생님의 문제, 혹은 지금의 고등학생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며, 나로부터 시작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가르침과 배움을 규정짓고, 경쟁과 두려움을 조장하는 이 사회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삶을 배워 가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머지않아 고립과 단절을 끊을 수 있는 희망이 될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희망은 있다. 우리가 모인 바로 이 자리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육문화연구학교 #교육 #새들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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