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인터넷? 스마트폰도 가끔 꺼두세요"

[책, 인터넷을 말하다①] <투 베터 라이프스타일-인터넷 편>

등록 2014.12.07 14:14수정 2014.12.0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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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독 인터넷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책들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국내 인터넷 상용화 20년을 맞아 KT에서 펴낸 무크지 <투 베터 라이프스타일-인터넷 편>(라이크컴퍼니)과 인터넷 태동기였던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간 정지훈 경희사이버대학 교수의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메디치미디어)가 대표적입니다. 우선 <투 베터 라이프스타일>를 통해 '한국의 인터넷' 먼저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영화배우 한석규가 스님과 조용한 대나무 숲을 걷는데 갑자기 휴대폰 벨이 울린다. 휴대폰을 끄자 화면엔 이런 자막이 뜬다. 지난 1998년 화제가 됐던 SK텔레콤 TV 광고 한 장면이다. 당시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이 문제였지만 요즘엔 스마트폰-인터넷 중독이 더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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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tter Lifestyle ⓒ 라이크컴퍼니

유·무선 통신사인 KT와 라이크컴퍼니는 지난 11월 무크지 <투 베터 라이프스타일-인터넷 편(To Better Lifestyle-with internet)>을 펴냈다. 우리말로 '더 나은 생활방식을 위해' 정도가 되겠다. 지난 1994년 6월 20일 국내 인터넷 상용화(코넷) 이후 성년을 맞은 대한민국 인터넷이 지금까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꿨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조명하려는 시도다.

우선 '인터넷 상용화 20년 백서' 같은 딱딱한 틀 대신 단행본과 잡지를 결합한 부정기 간행물인 '무크지' 형태를 띤 것부터 반갑다. 책 내용도 딱딱한 기술 설명 대신 미디어 전문가부터 여행사, 쇼핑몰 등 온라인 사업가, 디지털 아트 예술가, 고등학생 스마트폰 영화감독 같이 우리 주변의 '인플루언서(영향력자)' 30명 인터뷰가 중심이다.

한국은 왜 페이스북-허핑턴포스트에 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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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To Better Lifestyle with internet'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 KT


말이 20년이지,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보듯 당시는 휴대폰은커녕 '삐삐(무선호출기)'로 '1004' '8282' 같은 '숫자 암호'를 주고받던 시절이었고, 인터넷도 전화로 'PC통신'에 접속해 게시판에 텍스트를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이후 20년간 국내 인터넷 인프라와 서비스는 급속히 발달했다. 이 책 '인터넷 연표'에선 국내 주요 인터넷 서비스와 유사한 미국 서비스 시작 시점을 대비시켜 놓고 있다. ▲ 1995년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베이'와 1996년 '인터파크' ▲ 1996년 무료 웹메일 서비스 '핫메일'과 1997년 다음 '한메일' ▲ 1999년 소셜 네트워크 '싸이월드'와 2004년 '페이스북' ▲ 2000년 시민 저널리즘에 바탕을 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와 2005년 '허핑턴포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인플루언서'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선 싸이월드, 오마이뉴스 등 혁신적인 서비스가 많이 나왔는데 왜 뒤이어 나온 페이스북, 허핑턴포스트와 달리 세계적인 서비스가 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세계 최초 아이디어가 풍성하던 당시와 지금 분위기는 왜 다른가?"

첫 번째 질문에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미국 포털업체 '라이코스' CEO를 지낸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은 "미국은 개방적이었지만 한국은 폐쇄적이었다"면서 "한국엔 특별한 서비스가 있었지만 콘텐츠가 부족했다, (중략) 기술이 부족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념을 플랫폼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질문에 김정철 <얼리아답터> 편집장은 "그때는 새로운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아 뒷일 생각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다"면서 "지금은 모두가 '어떻게 수익모델을 만들까'에서 시작하니까 실험적인 서비스가 탄생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프리카TV VJ(비디오자키)처럼 '혼자서 소규모로 뭔가를 하는 사람'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에스코어 박성호 셀(cell)장은 "한국은 소프트웨어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받쳐줄 만한 기업은 부족하다"면서 "미국은 매해 소프트웨어 분야가 선호하는 직업 1, 2위에 오르는데 (중략) 한국에서는 백발 노인 개발자를 볼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꼬집었다. 그만큼 한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기회의 땅? 양날의 검? 그냥 밥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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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 열린 '인터넷 상용화 20주년 행사'에 전시된 1990년대 PC 통신 시절 단말기. ⓒ KT


모든 인터뷰 대상자들에게 공통으로 던진 '당신에게 인터넷이란' 질문에 대한 답변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인생의 중심"(임정욱 센터장)이라거나 "큰 기회의 땅"(신기현 뉴미디어 아티스트), "전기나 수도처럼 기반 산업"(염재승 텀블벅 대표)과 같이 긍정적인 평가였다.

특히 그래픽 디자이너 문상현씨는 "인터넷은 새로운 바벨탑"이라면서 "(자신을 신이라고 착각한 정부와 여러 기관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바벨탑이 두렵기 때문에 우리가 구축한 사회망을 무너뜨리려고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김정철 <얼리아답터> 편집장에겐 "밥벌이"일 뿐이었다. 김 편집장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필요악 같은 것"이라면서 "가족과 함께 있을 땐 일부러라도 인터넷을 멀리하고 있다"고 답했다.

성훈식 빈브라더스 대표는 "양날의 검"이라면서 "잘 쓰면 효과적이고 잘 못 쓰면 망할 수도 있다"고 인터넷의 양면성을 강조했다. 박성우 에스코어 셀장도 "신이 인간에게 준 하나의 큰 선물"이라면서도 각종 범죄와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들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점점 몸 안으로 파고드는 인터넷... "인간성만은 잊지 말자!"

앞으로 달라질 인터넷 환경에 대해선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컴퓨팅 등 기술 발달에 대한 긍정과 부정도 엇갈렸다.

박기영 봄바람 공동대표는 "가까운 미래에 사물 인터넷이 활성화된 세상이 올 것"이라면서 "사물과 사물끼리 통신해서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성훈식 빈브라더스 공동대표는 "나중에는 SF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뇌에 칩 하나 꽂으면 모든 게 해결되지 않을까"라면서 "미래 인터넷도 우리 신체와 완전히 통합되어 현재와는 전혀 다른 뭔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모바일 영화감독 윤성호는 "인터넷과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면 곤란하지 않을까"라면서 "인터넷이 가능한 시계를 차고 나중에는 그마저도 몸에 이식되는 게 두렵다"며 지나친 '결합'을 경계했다. 인포그래픽 뉴스 매체인 비주얼다이브 은종진 대표도 "인간의 감정까지 통제하는 인터넷으로 발전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사람다운 인터넷, 인간성 있는 형태의 인터넷'을 바랐다.

결국 모두가 바라는 건 '휴머니즘'의 회복이었다. 뮤지션 최고은은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정보가 범람해 지식은 많아지지만 오히려 가슴은 비어가는 것 같다"면서 "휴머니즘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인터넷이 사람들에게 더 밀착되고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마주침도 피상적인 게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미래의 우리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돼요."

결국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도 16년 전 한 통신사 광고와 비슷하다.

"가족이나 친구와 있을 땐 스마트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TO BETTER LIFESTYLE #투 베터 라이프스타일 #KT #인터넷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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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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