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목포시 "잘 하겠다고 선처 부탁하면..."

수도 검침원 재계약 거부 논란... 해고 노동자 "시가 일방적으로 통보"

등록 2014.12.08 15:39수정 2014.12.0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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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는 수도검침원 4명을 재계약 배제 방침을 정하고 공문으로 통보했다. ⓒ 이영주


전남 목포시에 사는 50대 중반 여성 A씨는 경력 10년이 넘는 수도 검침원이다. 목포시로부터 담당구역을 배정받아 매달 수도요금 고지서를 배달하고 계량기 검침을 한다. 하지만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 설계를 하는 12월이 그에게는 너무 시리게 다가온다.

최근 A씨는 동료 3명과 함께 재계약 불가 공문을 받았다. 이는 '해고'와 다름없다. 이 과정에서 목포시(시장 박홍률)의 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24일 목포시로부터 재계약 불가 공문을 받은 검침원은 전체 17명 가운데 4명이다. 모두 40~50대 여성으로 근무기기간은 10년이 넘었다. 

목포시가 이들 4명과 재계약을 하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는 "오검침이 많다"는 것이다. "한 해 동안 오검침 20건 이상인 검침원을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재계약 불가 통보는 검침원 채용을 시작한 지난 200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목포시는 사전에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목포시 측은 규정, 절차, 지침, 기준을 강조하며 정당한 결정임을 내세운다.

하지만 공정, 상식, 양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재계약 배제에 관한 명문화된 규정은 없다. 오검침 20건 이상이라는 기준도 없다. 검침원들이 매년 12월에 작성하는 계약서에도 '계약 중도해지'에 관한 사항만 있다. 그것도 "도저히 업무수행이 불가한 경우"에 해당한다.

목포시 상하수도사업단 김치중 단장은 "절차와 기준에 따라 정리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규정과 기준이 없다는 질문에는 "자세한 규정과 평가기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담당 공무원도 "지침상 재계약하지 않을 경우 통보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재계약 중단에 대한 조항은 별도로 없으며 매년 재계약 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규정과 기준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있지도 않은 규정을 적용한 셈이다.

실체 없는 규정... "오검침 늘었다"

이에 대해 검침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검침원 B씨는 "그동안 검침원 일을 하면서 (오검침) 20건 이상이면 재계약 배제된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오검침은 늘 나오는 일"이라며 "사무실(시청), 수요자와 협의해서 재고지 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침원은 "재계약에서 배제된 4명의 기준대로 오검침을 집계하면 나를 포함한 살아남은 검침원들 대다수가 재계약 배제 대상"이라고 증언했다.

재계약에서 배제된 A 검침원은 "오검침을 이유로 재계약 해지 처사는 있을 수 없다. '너 그만둬라' 그러면 그만둬야 된다는 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면서 "검침원들이 너무 힘이 없다보니까 벌어진 일"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급조된 기준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오검침 집계 건수를 두고 검침원들은 "자르기 위한 고의적인 부풀리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검침원들이 주장하는 대표적인 오검침 오류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민원이 발생하지 않은 한 산업단지 내 업체를 오검침으로 집계
- 연립주택단지 내 한 가구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지만 오검침으로 집계
- 공터였던 곳에 새로 집을 지으면서 수도설치 요구 전화 7차례를 모두 오검침으로 집계 
- 한 곳은 정자가 들어서 수도도 없는 곳이지만 오검침 집계

이런 오검침 사례에 대해 목포시 측에 재계약 배제된 검침원과 함께 현장검증을 요구했지만 목포시 측은 거부했다. 목포시 측은 "절차대로 처리" "이미 결정난 사안" 등의 말만 되풀이 했다. 이보다 앞서 목포시의회 의장 중재로 검침원과 담당 공무원들이 면담을 가졌지만 이 자리에서도 목포시는 현장 검증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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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재계약 대상에서 배제된 목포시 수도검침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이영주



목포시 측은 한발 더 나아가 계약 배제된 검침원들을 불순한 세력으로 몰았다. 재계약 불가 검침원들은 목포시 감사실에 진정서를 내고 언론의 취재에 응했다.

이에 대해 목포시 측은 "통보 이후 이의제기를 해야 기본인데 사무실은 오지 않고 밖에서만 말하고 다닌다"고 검침원들을 비난했다. 심지어 한 담당 공무원은 "외부 세력을 이용해서 동료 직원들 위에 군림하며, 압력을 이용해서 좋은 검침구역을 가져갔다"고 주장했다. "검침원들은 생계와는 상관없고 5일이면 다 끝내고 다른 일하며 부업으로 한다"는 말로 검침원들의 노동을 폄하하기도 했다.

목포시의 '갑질'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앞으로 잘 하겠다고 선처를 부탁하면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떠한 말도 없고 권력을 이용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목포시는 밝혔다.

하지만 목포시 측의 발언은 상당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외부세력의 힘을 이용해 좋은 구역을 가져갔다는 주장에 대해 검침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건 재계약 배제를 합리화하려는 말이며 3, 4년에 한 번씩 구역 배정이 바뀐다"고 반박했다. 또 이들은 "사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방적인 재계약 배제 통보로 이의제기할 기회도 막은 게 누구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히려 검침원들은 일방적인 재계약 배제를 두고 의혹을 제기한다. 재계약이 확정된 한 검침원은 "검침원들 사이에서 올해 시장이 바뀌면서 선거운동 도운 사람들을 심으려고 4명을 자른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9월 50대 남성 한 명이 검침원으로 채용됐다. 한 검침원은 "굳이 추가 인력이 필요하지 않았지만 1명이 채용돼 기존 검침원들의 구역을 나눠줬다"며 "지난 선거 때 이 남성은 현 시장을 도운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재계약 배제된 4명을 대체할 새로운 검침원도 면접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비정규직센터 "오검침 사유 해고는 옳지 않아"

검침원 재계약 거부 뒤에는 1년짜리 계약직의 불안정한 고용조건이 있다. 검침원들은 매년 12월 목포시와 재계약서를 작성한다. 하지만 '근로계약서'가 아닌  '상수도 계량기 검침 업무 민간인 위수탁 계약'이다.

전남비정규직지원센터 관계자는 "근로자를 부정하기 위해서 위수탁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목포시 검침원들은 고용·산재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보험에서 소외돼 있다. 어떤 신분상 보장은 물론이고 업무 과정 중 사고가 나 다쳐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4대보험 기관에 따르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근로소득을 받고 일하면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은 의무가입해야 한다. 건강보험도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1개월 이상 근무하면 대상자다. 고용보험도 한 달에 60시간 근로한다면 의무적용 대상이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전기 검침원이 제기한 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검침원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1년 노사정위원회 최저임금 관련 자료집에도 '검침원을 감시적 근로자'로 분류했다.

수도 검침원은 40~50대의 주부들이 대부분이다. 1전당 750을 받는다. 한달 동안 1200전에서 1700원까지 맡아 급여는 120만 원~150만 원이다.

목포시로부터 담당구역을 배정받아 검침결과와 계량기 고장 및 교체 등은 담당 공무원의 결제를 받는다. 체납 독려장을 돌리고 체납요금 징수업무도 맡는다. 상수도과 공무원과 함께 단수조치도 나간다.

모든 일을 목포시의 지휘를 받으며 철저히 근로자로서 일을 하지만 근로자임을 부정당하고 있는 셈이다. 전라남도비정규직지원센터 관계자는 "근로자로 인정받으면 오검침으로 인한 사항은 시말서나 사유서 정도로 해결될 문제"라며 "해고 회피 노력은커녕 해고를 단행한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그렇게 될까봐..."

현재까지 목포시는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검침원들이 면담을 신청하자 비서실을 통해 "3번이나 회의를 했고 과장 전결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는 답변만을 남겼다. 검침원 재계약서 작성 당사자인 김치중 상하수도사업단장은 "실무자들이 절차대로 한 것인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침원은 매달 10일을 기준으로 목포시로부터 요금고지서를 전달 받는다. 4명의 검침원에게 12월 고지서가 마지막 일이 될지 모른다. 살아남은 검침원들은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이번에 4명이 재계약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우리 역시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관행이 돼 반복될 것 같아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렵지만 동료를 지키고 싶습니다"

재계약이 배제된 한 검침원의 말은 추운 겨울 날씨보다 더 시리게 다가온다.

"12월달 고지서가 마지막 일이 될 줄 몰랐어요. 검침원을 하며 사회활동을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내 자식도 공무원으로 키워 무시당하고 살지 않았는데 마치 우리를 상종 못할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비애를 느낍니다"
#수도검침원 #목포시 #1년계약직 #수도검침원 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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