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주인만 17명? 얼마나 장사가 잘 되기에

'요일가게-다 괜찮아', 인천 배다리에 문 열어

등록 2014.12.14 21:28수정 2015.04.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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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 청산


인천 배다리(동구 창영동·금곡동 일대)에 수상한 가게가 들어섰다.


동인천 중앙시장에서 헌책방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 그리 넓지 않은 39㎡(약 12평) 공간에 가게 주인만 자그마치 열일곱 명. 업종도 디저트카페, 액세서리 가게, 나무공방, 뜨개공방, 타로카페, 극장, 서점 등 쇼핑센터 못지않게 다양하다. 협동조합도 아니고, 가게 주인들이 보증금을 함께 모은 것도 아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가게, '요일가게-다 괜찮아'(이하 요일가게)가 지난 3일 문을 열고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가게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요일가게는 서로 다른 주인 일곱 명이 각각 한 요일씩 맡아 가게를 운영한다. 월요가게에선 하루 두 차례 영화를 상영하고, 수요가게와 금요가게에선 각각 그림 수업과 뜨개 수업을 연다. 일요가게에선 차와 디저트를 판매한다. 여기에 요일 주인이 해야 할 역할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가게에 입점한 다른 가게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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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 안에 입점한 '가게인가게'. 선반마다 주인이 따로 있다. ⓒ 청산


요일가게에는 또 다른 가게 열두 개가 공간을 나눠 들어서 있다. 이른바 '가게 in(인) 가게'. 가게라고는 하지만 각 가게 주인들은 선반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곳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오로지 주인 마음이다. 현재 생활소품, 액세서리, 자기 용품, 수제 쿠키와 초콜릿, 사진엽서, 뜨개 소품, 책, 그리고 종이와 나무로 만든 각종 공예품이 판매되고 있다. 대부분 주인이 직접 만든 창작품이다.

요일가게 근처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는 사진 전시와 함께 자신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 판매하고, 평소 뜨개질을 즐기던 이는 틈틈이 만든 장갑과 모자, 무릎 덮개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다양한 재료로 만든 아기자기한 제품이 한 데 모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상품인 동시에 가게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가게 인 가게 주인은 굳이 날마다 가게를 지킬 필요가 없다. 요일가게 주인들이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가게에서 물건을 팔아주기 때문이다. 대신, 판매한 상품 가격의 10%는 요일가게 주인의 몫으로 돌아간다. 가게 인 가게 주인은 상품에 간단한 설명과 함께 가격을 붙여 놓고 요일가게 주인들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진열만 해놓으면 된다. 이른바 '윈-윈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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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에서 판매되는 상품들 ⓒ 심혜진


대형서점에선 진열도 안 되는 내 책, 이곳에선 당당히 주인공

'가게 인 가게'에서 반지와 귀고리 등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김애연(서울 양천구)씨가 개소식날 요일가게를 찾았다. 그는 서울에서 액세서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직접 만들거나 고른 액세서리를 이곳에서 판매한다.

그는 "친구 소개로 지난달에 처음 이곳에 왔는데 가게 분위기가 맘에 들었어요"라며 "이곳에 상주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좋았고요, 별 고민 없이 계약했어요"라고 했다. 그는 11월 중순 입점해 지금까지 10만 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물건이 팔리면 요일가게에서 그때그때 연락이 와요. 무척 반갑고 기분이 좋더군요. 내가 맘에 들어 하는 물건을 누군가 선택해 준다는 것이 기뻐요."

아기자기한 수공예품 사이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오유진(인천 남동구)씨가 운영하는 '숲속여우비' 서점이다. 그는 1인출판사를 운영하며 발행한 책들을 이곳에서 판매한다. 오픈식을 시작하기 전 벌써 책 네 권을 팔았다는 그는 자신이 만든 책을 독자의 눈앞에 직접 선보일 수 있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는 "기획과 편집, 인쇄, 홍보를 모두 혼자서 해요. 아무래도 대형출판사에 밀릴 수밖에 없죠"라며 "열심히 좋은 책을 만들어도 대형서점에서 사람들의 눈에 띄는 자리에 놓이는 것은 꿈도 못 꿔요. 분명 서가 어딘가에 꽂혀 있지만 독자를 만나기는 참 어렵죠"라고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책이 팔리면 출판사와 서점이 6:4로 나눠 갖지만 이곳은 직거래라 좋아요. 큰 이익을 바라고 이곳에 입점한 이는 아마 없을 거예요. 다만 이렇게 새로운 방식의 가게들이 생기다보면 유통시장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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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인가게 주인 김애연 씨가 자신이 진열해 놓은 액세서리를 매만지고 있다. ⓒ 심혜진


월세 낼 돈도 없는데 무슨 공사?

요일가게가 들어선 건물은 1956년 지어진 2층짜리 조흥상회 건물이다. 요일가게는 그 중 창고였던 곳을 사용한다. 건물이 낡은 데다 창고 1층엔 창문도 없어 늘 어둡고 습했다. 작년 한 해 잠시 공방으로 쓰였을 뿐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이곳에 독특한 방식의 요일가게를 들일 생각을 한 이는 청산(본명 권은숙)씨다. 그는 배다리에서 꽤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미 조흥상회 건물에서 무인책방 '달이네'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올 초에는 배다리를 찾는 이들과 주민들이 차를 마시고 쉬면서 주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역시 같은 건물에 '배다리 안내소'도 열었다. 한 가지만으로도 벅찬 일을 여러 개 벌이고 있는 그가 이번에 또 다시 복잡한 일거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그는 "비어 있는 창고가 늘 아까웠다, 쓰임새를 생각하다보니 일이 이렇게 커졌다"며 웃었다. 창고를 들락거리며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2층 천정에서 상량문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건물의 나이를 처음 알았다.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기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천정을 보자 1층과 2층을 터 한 층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일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공사비는커녕 창고 월세를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그는 우선 이곳을 여러 사람이 공유해 사용하기로 하고 함께할 이들을 찾았다. 그를 포함해 네 사람이 모였다. 월세와 전기세를 나눠 내기로 한 후 구체적인 활용계획을 세울 무렵 인천문화재단에 시민문화거점지원사업 공고가 떴다. 그는 지체 없이 계획을 보고서로 옮겼다. 결국 보증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었고 10월 공사 시작과 함께 입주할 이들을 모았다.

"공간을 제대로 꾸미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야 이곳에 오고 싶을 테니까요. 그런데 한 번 와 본 사람들이 다들 맘에 들어 하더라고요."

요일가게를 둘러보면 그의 말이 이해가 간다. 오랜 시간 시멘트에 가려져 있던 붉은 벽돌을 그대로 살려낸 벽과 높은 천정은 마치 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가게 인 가게 입주자는 금세 모였고 지금은 대기자까지 있는 상태다. 가게 인 가게와 요일가게 주인들은 약간의 월세를 낸다. 한 달 핸드폰 요금보다 적은 비용이다. 계약기간은 3개월. 연장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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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 입구. 요일가게는 동인천 중앙시장에서 헌책방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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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마다 다른 주인들이 가게를 지킨다. 요일가게 주인이 여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 심혜진


이곳에서 사는 재미 느끼길

11월 한 달 동안 시범운영도 했다. 결과는 만족. 청산씨는 기대 이상으로 잘 운영된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이곳을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공간으로 이용하길 바란다.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그런데 '과연 이게 팔릴까?'싶은 것들 있잖아요. 그걸 누구든지 이곳에서 직접 팔아보는 거죠. 월세도 적고 가게를 지켜야 하는 부담도 없고, 괜찮죠?"

사실 요일가게가 들어선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다. 그가 요일가게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큰 수익을 내는 것도, 상권 활성화도 아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보이고 서로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기를 꿈꾼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문을 여는 요일가게를 관리하기가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면서도 그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제가 관심을 갖고 관리를 하는 만큼 이곳에 온 사람들이 즐거워질 거라 생각해요. 솔직히 신경 좀 덜 쓰려는 마음에 요일가게를 열었는데, 그게 뜻대로 안 되네요.(웃음) 아마 앞으로도 계속 돌봐야겠죠? 이곳을 찾는 분들이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전 만족합니다."

월요일에 요일가게를 찾는다면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월요가게 '꼬꼬마극장'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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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가게 '자기공방' 주인장 윤선향 씨가 폐목재를 활용한 소품을 만들고 있다. ⓒ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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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가게 '디저트와 그날의 차'를 찾은 사람들. ⓒ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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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가게에서 그림수업이 열리고 있다. ⓒ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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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에서 판매되는 상품들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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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에서 판매되는 상품들 ⓒ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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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가게-다 괜찮아'에서 판매되는 쿠키와 수제초콜릿. ⓒ 심혜진


#요일가게 #배다리 #요일가게 다 괜찮아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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