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버터칩의 반란, '반짝 꼬꼬면'은 잊어라?

[오마이뷰 특집] 보수적 입맛 움직인 '꼴찌의 반란'

등록 2015.01.02 08:18수정 2015.01.0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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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과 2014년 데자뷰. 한 대형마트에서 품절 사태를 빚은 꼬꼬면-나가사키 짬뽕과 허니버터칩 ⓒ 김시연


'데자뷰'. 텅 빈 진열대와 품절 안내를 본 순간 자연스레 3년 전 '꼬꼬면'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품귀 현상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며 허니버터칩 인기가 식을 줄 모르지만 꼬꼬면처럼 '반짝 인기'에 그칠 거란 전망도 적지 않다. 과연 허니버터칩은 새우깡이나 포카칩에 이은 스낵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12월 초 허니버터칩이 출고된다는 날에 맞춰 서울 시내 주요 대형마트와 편의점을 돌아 다녔지만 결국 실패했다. 허니버터칩을 구하기까지 1주일이 걸렸다. 지난 12일 개점 시간에 맞춰 용산에 있는 한 대형마트를 찾았더니 수십 명이 일찌감치 줄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허니버터칩 줄'이었다. 매장 직원은 허니버터칩을 실은 트럭 도착이 늦어진다며 번호표를 대신 나눠줬다. 이날 입고되는 허니버터칩은 20봉 들이 7상자. 구매량도 한 사람당 1봉으로 제한했다.

'신라면 블랙' 누른 꼬꼬면, '새우깡' 누른 허니버터칩

2011년 여름 '꼬꼬면 열풍'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당시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꼬꼬면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여서, 매장 직원에게 미리 연락처를 남겨야 할 정도였다. 당시에도 블로그를 통해 먼저 입소문을 탔고 곧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남자의 자격> '라면 대회'에서 이경규씨가 개발했다는 탄생 배경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관련 기사 : 꼬꼬면이 반짝 인기? 신라면 안 그립다)

허니버터칩은 지난 8월 출시 직후만 해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11월엔 새우깡, 포카칩을 제치고 '스낵 판매량 1위'로 올라섰다. 품귀 현상 속에서도 지난 5개월 동안 1300만 봉을 팔아 매출 200억 원을 돌파했다.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끌자 경쟁사에서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같은 아류작이 등장하며 기존 '짭짜름한 감자칩'에 맞선 '달콤한 감자칩' 시장을 형성한 것도 비슷하다. 당시에도 삼양식품에서 곧바로 '나가사키 짬뽕'을 내놓으며 농심 신라면이 주도하는 '빨간 국물'에 맞선 '하얀 국물 라면' 시장을 만들었다.

꼬꼬면은 그해 12월 라면 판매 순위에서 신라면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그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뽑은 10대 히트상품 가운데 카카오톡 등을 누르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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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스낵 시장 돌풍의 주역 해태 허니버터칩(왼쪽)과 2011년 '하얀 국물 라면' 열풍을 주도한 팔도 꼬꼬면. ⓒ 김시연


돌풍의 주역이 해태제과식품, 한국야쿠르트(팔도라면) 같이 업계 '하위권'이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해태제과는 1945년 창업한 대한민국 최초의 제과업체로 롯데제과와 쌍벽을 이루며 1980~1990년대 프로야구단까지 운영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 2005년 크라운제과에서 인수한 뒤 재기에 나섰지만 현재 스낵 시장에서 농심과 오리온에 밀려 3, 4위권에 머물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도 1980년대 '팔도 비빔면'을 앞세워 라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에 밀려 만년 꼴찌였다. 하지만 2011년 꼬꼬면 인기에 힘입어 한때 업계 3위로 뛰어올랐고 2012년 라면사업부를 분사하기에 이른다. 반면 당시 라면 시장 70%를 장악했던 농심은 '신라면 블랙' 실패까지 겹치며 60%대 초반으로 점유율이 곤두박질쳤다.

해태 "허니버터칩도 반짝 인기? 우린 꼬꼬면과 달라"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얼마나 갈지에 대해선, 맛에 대한 호불호만큼이나 엇갈린다. 그동안 오리온 포카칩, 농심 수미칩, 프링글스 같이 짭짜름한 감자칩에 익숙했던 소비자들은 벌꿀과 고메 버터 맛을 넣어 달콤한 허니버터칩 맛에 열광했다. 허니버터칩을 처음 접한 이들은 대부분 '색다르다', '맛있다'는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지만 일부 '맛이 너무 강하다', '많이 먹으면 질리겠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닭고기 육수에 청양고추를 넣어 담백하면서도 칼칼한 맛을 낸 꼬꼬면 역시 얼큰한 소고기 국물에 익숙한 소비자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렸다. 호기심에 꼬꼬면을 접했지만 입맛에 맞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찾지 않았고 결국 판매량도 급격히 줄었다. 정작 가장 큰 재미를 본 건 돼지고기 국물 맛을 낸 삼양 나가사키 짬뽕이었다.    

당시 꼬꼬면 마케팅에 참여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꼬꼬면이 기존 제품과 차별화했지만 라면이라는 물적 속성을 감안할 때 세상을 뒤집을 이슈로 회자될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과한 버즈(재잘거림, 인터넷이나 SNS 등을 통한 입소문을 말함 - 편집자 주)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크다 보니 실망감도 있었고 품귀 현상이 끝나자 더는 궁금하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허니버터칩도 색다른 맛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큰 버즈를 감당할 물적 속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면서 "제품의 저력에 비해 버즈가 큰 편이어서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비슷한 경쟁제품이 나오면서 제 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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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 경기 이천시 부발읍 무촌리 한국야쿠르트 이천공장에서 꼬꼬면이 생산되고 있다. ⓒ 선대식


해태제과도 현재 스낵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해 허니버터칩을 생산하고 있지만 공장 증설까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 꼬꼬면의 경우 한때 인기에 편승해 라면 공장을 증설했다 판매량이 줄며 낭패를 봤기 때문이다.

소성수 해태제과 홍보팀장은 "아직 제품 출시 초기여서 공장 증설을 검토하지 않을 뿐 앞으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할 것"이라면서 "꼬꼬면은 기존 매운 맛 트렌드에 새로운 트렌드로 잠시 머물다 잠잠해졌지만 허니버터칩은 감자칩 트렌드 자체를 바꿔 인기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꼴찌의 반란'은 보수적인 입맛도 움직인다

라면과 스낵 시장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소비자 입맛은 보수적이다. 한국갤럽이 2004년과 2013년 사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라면 브랜드를 조사했더니 농심 신라면부터 삼양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진라면까지 1~5위가 동일했다. 그만큼 입맛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반면 88%에 이르던 이들 '빅5'의 점유율은 그사이 71%로 17%포인트나 떨어져 다양해진 입맛을 반영했다. 

스낵 시장도 농심 새우깡과 오징어땅콩, 롯데 꼬깔콘, 해태 맛동산, 크라운 콘칩 같은 전통적인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오리온 포카칩과 농심 수미칩, 프링글스를 비롯한 감자칩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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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울 용산의 한 대형마트 앞에 '허니버터칩'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 김시연


김에리카 KTB투자증권 음식료 애널리스트는 지난 10월 보고서에서 "스낵 시장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소맥(밀가루) 스낵에서 콘(옥수수) 스낵, 포테이토(감자) 스낵으로 소비 니즈(수요)가 옮겨진다"고 했는데, 허니버터칩이 이같은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실제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편의점 감자칩 매출도 덩달아서 50~70%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꼬꼬면 열풍이 조금 잦아든 지난 2012년 3월 김국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꼴찌의 반란'이 성공한 건 '넘버원 따라하기'가 아니라 '넘버원 따돌리기'를 통해 차별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SNS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며 똑똑해진 소비자들이 기존 넘버원 브랜드만 고집하지 않게 된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차별화는 한 번 성공했다고 완성되는 것도 아니며, 한 차례의 차별화 성공으로 쉽게 넘버원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꼬꼬면 판매량이 줄어든 것도) 너도 나도 하얀 국물 라면에 뛰어드는 바람에 소비자들에게 하얀 국물이 익숙해져 차별적 가치가 급감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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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서울 마포의 한 대형마트 스낵 코너. '수미칩 허니머스타드' 판매대가 텅 빈 반면 허니버터칩은 예닐곱 봉이 남아있다. ⓒ 김시연


당시 꼬꼬면 개발자도 "하얀 국물 라면은 죽지 않는다"면서 "신라면 같은 메인 시장을 대체하긴 어려워도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2013년에 이미 꼬꼬면 뿐 아니라 나가사키짬뽕, 기스면 등 하얀 국물 라면은 모두 20위 밖으로 밀렸다(관련기사: '하얀 국물'은 끝났다? 꼬꼬면 안 죽었다 ).

'허니버터칩 열풍'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개점 시간에 맞춰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대형마트 진열대에 '수미칩 허니마스터드'는 이미 동이 났지만 허니버터칩은 6~7봉 정도 남아있었다. 물론 5분도 채 안 돼 모두 사라졌지만 소비자들은 '미투 상품'에도 비슷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영원한 넘버원, 만년 꼴찌도 없다'는 말은 모처럼 1등을 차지한 꼴찌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허니버터칩 #꼬꼬면 #수미칩 #감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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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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