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골 찌르며 "넌 내가 찍었어" 한 남자, 성추행일까

[판결 대 판결③] 강제추행 유무죄, 법원의 판단 기준에 대해

등록 2015.01.07 15:17수정 2015.02.0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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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대 판결'은 복잡한 법원 판결들을 알기 쉽게 정리, 비교, 분석하는 연재기획입니다. 판결 중에서 인권이나 개인의 자유와 관련된 판례, 비판하거나 칭찬할 만한 판결, 서로 상반되는 판결,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특이한 판결 등 개인이나 사회에게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판결들을 서로 묶어서 소개합니다. - 기자 말

가슴, 손, 쇄골, 손목, 어깨. 어디까지 어떻게 접촉해야 성추행이 될까. 특정 신체부위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기준이라도 있는 것일까.

[판결 대 판결]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애매모호한 성범죄 재판 2건을 통해 법원의 강제추행 유무죄 판단기준을 살펴본다. 두 사건을 '손목 잡고 자고 가요' 사건(사례 1)과 '손가락으로 쇄골 찌르기 사건'(사례2)으로 이름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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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 함부로 잡았다는 큰일난다. 사진은 드라마의 한 장면. ⓒ sbs


[사례 1] 세탁공장 직원인 A(50대 여성)씨는 직장동료의 심부름으로 밥상을 구해 사택을 찾았다. 사택에는 동료와 함께 거주하던 공장 소장 B(50대 남성)씨가 있었다. B씨는 "잠깐만 있다 가라"면서 캔맥주 1개를 건네며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어색함을 느낀 A씨가 "소장님, 돌아가겠습니다"라면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B씨는 A씨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고 자신 쪽으로 당기면서 "자고 가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가 아니라면 B씨의 행동은 부적절했다. 그렇다면 더 냉정하게 따져보자. B씨는 도덕적 비난을 넘어서 형사처벌을 받아야 할까. "명백한 성추행"이라는 A씨의 주장에 B씨는 "손만 잡았을 뿐"이라고 맞섰다.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손목 잡고 '자고 가요'라고 했다면 성추행?

성폭력,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은 어떻게 다를까.
이 4가지 단어는 엄밀하게 구분되는 법률 용어는 아니지만 실생활에 많이 쓰인다. 여러 가지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각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정리해봤다.


성폭력 : 성과 관련된 육체적, 정신적 폭력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성폭력범죄란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간음뿐 아니라 공연음란, 음화반포, 음행매개 등을 지칭한다. 하지만 범죄에 이르지 않더라도 성적 폭력에 해당하면 성폭력으로 볼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모두를 포함한다.

성폭행 : 상대와 동의 없이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성관계를 맺는 일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형법상 강간을 말한다.  

성추행 : 형법상 강제추행을 말한다. 강간까지는 아니지만 강제(폭행 또는 협박)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정도로 신체 접촉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성희롱 : '성희롱'이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희롱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고 가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일단 강제추행의 법적인 의미부터 알아보자. 형법 298조에 나온 강제추행이다.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고, 성적 결정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강간과 성격이 유사하나 성교행위(성기와 성기의 결합)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판례는 강제추행을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와 구분해야 할 개념으로 성희롱이 있다. 성희롱이란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폭행 또는 협박과 같은 폭력적 형태를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강제추행과 다르다. 성희롱은 그 자체만으로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다시 [사례 1]로 돌아가본다. A씨는 분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를 했고, B씨는 강제추행(정확하게는 성폭력처벌법상 업무상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다. 1심(춘천지법 영월지원)은 유죄를 인정, 벌금 300만 원 형을 선고했다. B씨가 항소했지만 2심(춘천지법)도 항소기각 판결로 결론을 같이 했다.

B씨가 자기의 감독을 받는 A씨를 위력으로 추행했다는 것이다. 2심은 "어색함을 느끼고 일어서는 순간 B씨가 오른쪽 손목을 세게 움켜 쥐면서 '자고 가요'라고 했다"는 A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사건 당시 근처에서 기다리던 A씨의 딸도 같은 말을 들었다는 점을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검찰은 "자고 가요"라는 말을 속칭 '한 번 하자'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1심, 2심 유죄 인정... 대법원 '무죄취지' 파기환송

하지만 B씨의 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으로 가면서 양상은 달라진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이인복)는 지난달 24일 무죄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B씨의 행동을 성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대법원은 ▲ 손목은 그 자체만으로는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보기 어려운 점  ▲ B씨가 손목을 움켜잡은 것에 그쳤을 뿐 쓰다듬거나 안으려고 하는 등 성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다른 행동에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던 점  ▲ 손목을 잡은 것은 A씨를 다시 자리에 앉게 하기 위한 것으로 추행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비록 B씨가 A씨의 손목을 잡으면서 '자고 가라'는 말을 하여 희롱으로 볼 수 있는 언사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를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A씨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B씨의 행동은 성희롱에 가까울 수는 있어도, 성추행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여기서 중요한 판단기준은 '성적자유의 침해 여부'라고 할 수 있겠다. B씨의 내심이야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손만 잡은 정도로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손가락으로 여성 쇄골 찌르기' 내막은...

2012년 대구지법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논란이 된 사건의 판결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여성의 쇄골을 찌르는 행동이 성추행인지 아닌지가 관건이었다.

[사례 2] 골프장 직원 C(30대 남성)씨는 골프장내 매장 직원 D(20대 여성)씨와 대화를 하던 도중 동의없이 D씨의 신체를 접촉했다. D씨는 "C씨가 가슴을 만졌다"며 고소했다. 검찰은 C씨가 '① 왼손 손가락으로 D씨의 왼쪽 가슴을 찌르고, ② 왼손으로 등을 쓰다듬고 ③ D씨의 오른쪽 팔과 가슴을 만졌다'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C씨는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대구지법(제12형사부 재판장 김경철)은 사실관계를 따지기 위해 현장 CCTV 화면을 분석했다. 분석결과 법원은 검찰의 공소사실과 미세하게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①에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렀다는 부분은 정확하게는 왼쪽 쇄골 바로 아랫부분을 1차례 찌른 장면이 확인됐다. ②의 공소사실은 쓰다듬었다기보다는 어깻죽지 부분을 만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③에 해당하는 팔과 가슴을 만진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법원은 결국 공소사실 중에서 "왼손 손가락으로 쇄골 바로 아래의 가슴 부분을 한 번 찌르고, 왼손으로 피해자의 어깻죽지 부분을 한 번 만진 사실"만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법적인 판단만 남게 되었다.

법원은 ▲ 어깻죽지 부분은 이성간에도 부탁, 격려 등의 의미로 접촉이 가능한 부분이고, ▲ C씨가 찌른 부분(쇄골)은 상대방 허락 없이 만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더라도 젖가슴과 같이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아니며 ▲ C씨의 행위는 1초도 안 되는 극히 짧은 순간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당황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 D씨의 태도가 내심 불쾌감을 느꼈다 하더라도 특별한 변화 없이 웃는 인상을 지으며 대화를 이어가고 업무를 계속하는 양상이었으므로 ▲ 성년인 D씨의 성적 자유(성적자기결정권)를 침탈하는 양상이라고까지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성적 자유 침해여부가 성추행, 성희롱 구분 관건

법원은 "C씨가 '얘는 내가 찍었어'라고 말하면서 D씨의 가슴을 찔렀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 C씨의 행위는 추행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젊은 D씨에게 추근거리면서 수작을 거는 등으로 희롱행위를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쉽게 말해 강제추행이 아니라 성희롱에 가깝다는 판단이다.

검사의 항소로 사건은 대구고법으로 올라갔지만 '무죄'라는 결론은 변함이 없었다. 2심 법원은 C씨가 쇄골을 찌른 행위에 대해 "일부러 가슴을 겨냥하여 찔렀다기보다는 찍었다는 표시를 하는 과정에서 손가락을 내민 것이 마침 가슴 위 쇄골 부분과 일치하여 닿았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C씨의 행위가 성적자유를 침해했다거나, 추행할 마음으로 의도로 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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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추행 무죄 판결 사건 비교 ⓒ 김용국


결국 두 사건 모두 무죄로 결론이 났다. 판결에 수긍을 하기 어렵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강제추행이 아니라면 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수는 법적으로 '실행의 착수'라는 단계를 거쳐야 한다. 실행의 착수는 범죄를 실행하겠다는 의사로 실행행위를 개시하는 것을 뜻하는데 두 사건은 실행의 착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와 달리 ▲ 강제추행의사로 귀가하는 여성을 뒤에서 껴안으려 하다가 여성이 돌아보자 도망친 행위 ▲ 손으로 여성의 양팔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입맞춤을 하려고 하였으나 여성이 뿌리치고 도망을 가는 바람에 그 뜻을 이루지 못한 행위는 강제추행미수로 처벌된 사례가 있다.

손목, 쇄골, 어깨만 만져도 강제추행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성추행 사건에서 가슴, 손, 쇄골 등 특정 신체부위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가해자의 행동이 성적자유를 침해할 정도인지, 행위자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있었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체 접촉부위와 함께 접촉하게 된 배경, 접촉시간, 장소, 두 사람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따라서 2개의 판결을 '가슴이나 성기를 만지는 것은 안 되지만 쇄골이나 손목, 어깨는 만져도 된다'고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노파심이 들어서 남성이 여성의 손목과 어깨, 쇄골 등을 만져서 강제추행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최근 사례 3가지를 소개한다(남성들이여, 유심히 보시라).

① 노상에서 걸어가고 있던 여성에게 다가가, '한번 할래?'라고 하고 손목을 붙잡고 잡아당겨 안으려 한 행위(인천지법)
② 치킨집에서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라고 하고, 이를 거절하는 10대 여성의 오른팔에 손을 댄 다음 피해자의 어깨를 거쳐 쇄골에 이르기까지 상체부위를 만진 행위(수원지법 안양지원)
③ 직장 여성동료에게 귓속말로 '화장한 게 이쁘다'라고 말하고 손으로 쇄골 부위를 만진 행위(서울중앙지법)
#성추행 #추행 #강제추행 #쇄골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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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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