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름값 안 떨어지는 이유, 이런 거였어?

[게릴라칼럼] 국제 유가 하락, 공공요금과 물가 하락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록 2015.01.13 18:01수정 2015.01.1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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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전기요금은 고유가 현상으로 전반적인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2012년 5월, 당시 기획재정부 수장이었던 박재완 장관은 기업인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물가와 공공요금 인상 등의 여파를 감안해 인상을 억제해 왔지만 국제 고유가로 인한 누적적자 증가로 더 이상 전기요금 인상을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전기요금은 6번의 요금조정을 거쳐 19.6%가 인상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인상된 5.4%까지 합친다면, 지난 7년 동안 25%나 인상된 셈이다. 도시가스 요금의 인상은 더 가팔랐다. 서울 도시가스를 기준으로 하면, 이명박 정권에서 17번 변동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에서 인상된 것까지 감안하면 무려 44.6%가 올랐다.

국제 유가가 들썩일 때마다 정부는 어김없이 '고유가 때문'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인상을 억제해 왔지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인상을 합리화 해왔다.

국내 기름값 하락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최근 국제 유가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6개월 사이 반토막이 났다는 기사도 이어지고 있다. 유가 정보를 제공하는 오피넷(Opinet)이 공시한 원유 가격을 보더라도 6개월 동안 절반 가까이 폭락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국제 유가가 폭등해 원유 가격이 리터당 900원을 넘어가던(2008년 7월 3일 브렌트유 962.1원) 2008년 7월에 비교하면 1/3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등 판매 유가의 하락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지난 6개월 동안 국제 원유 가격은 50%p 이상 폭락한 반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보통휘발유, 자동차용 경유 하락폭은 15%∼17%p 수준에 그쳤다.


국내 기름값 하락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유류세 영향이 가장 크다. 2014년 12월 넷째 주(2014.12.29~2015.1.3) 정유사 보통휘발유 판매 가격은 리터당 1416.51원, 이중 61.7%인 874.66원이 세금이다. 수입 원가가 포함된 세전 가격은 541.38원으로 판매가격에 38.2%에 지나지 않는다.

유류세 중 교통에너지환경세(529.00원) 교육세(79.35원) 주행세(137.54원)는 국제 유가의 변동과 상관없이 보통휘발유 1리터를 판매할 때마다 항상 따르는 세금이다. 리터당 800∼900원의 고정 유류세금은 국제 유가의 하락 국면에서 국내 기름값의 하락을 막고, 국제 유가 상승 국면에서는 국내 기름값 폭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유류세가 현 상태로 유지되는 한 국제 유가 폭락이 국내 기름값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 기름값에 영향을 받는 물가나 공공요금이 국민들의 기대만큼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공공요금과 물가

지금의 공공요금과 물가 수준은 고환율과 고유가가 서민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던 MB정권에서 굳어진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들어 멈춰 있는 물가를 두고 '저물가가 디플레이션을 불러 장기 침체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도 하지만, 국제 유가가 반토막이 나고, 천정부지의 고환율이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았다면 그 차이만큼은 공공요금과 물가에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국제 유가 하락은 호재이고, 유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도 크지 않다."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 장관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발언이다. 국제 유가 하락은 공급의 과잉에서 오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디플레이션 우려보다는 유가 하락이 제품 가격으로 연결될 수 정책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국제 유가의 하락을 공공요금이나 물가 하락으로 이끌지 못하면, 기업과 공공 기관만 저유가의 수혜자가 될 것이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고물가에 시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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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 하락으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휘발유 가격이 ℓ당 1천400원대인 주유소가 등장했다. ⓒ 연합뉴스


같은 날 한국개발연구원은 '유가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유가하락으로 인한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을 주문했다. 또 보고서에는 IMF가 유가하락의 영향으로 2015년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0.3∼0.7%p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제 유가의 하락이 저물가, 장기침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대다수 국내 경제지나 보수 언론들의 우려와는 상반된 견해다.

유가 10% 하락 시 경제 전체의 구매력이 9조5000억 원 늘어나며 가계의 구매력도 5조2000억 원이나 늘어난다. 가구당으로 계산해보면, 17만 원 정도 이익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유가 하락이 제품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다. 보고서는 유가가 10%p 떨어지더라도 제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으면, 경제 전체 구매력이 증가하더라도 거의 대부분 기업이 독식할 것이고 가계의 구매력 증가는 미미하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 같은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에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유가하락이 기업의 수익성 개선뿐만 아니라 가계의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에 경기회복세가 보다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따라서 유가하락에 따른 생산비용 하락이 소비자 가격에 가능한 빨리 반영되도록 물가구조를 개혁할 필요."

저유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부와 기업

국제 유가의 하락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저유가→저물가→디플레이션'의 도식만 반복하며, 국제 유가의 폭락을 남의 일 보듯 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의 태도는 제 배만 불려 보자는 속셈으로 읽힌다. 얼어붙은 내수 시장, 국제 유가의 하락은 서민 경제의 훈풍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기업과 정부의 인식 전환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 저유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정부와 기업이다. 기름값 하락으로 사용량이 늘어나면 유류세 수입도 비례하여 커질 수밖에 없다. 2000원대 휘발유값에 맞춰진 물가와 공공요금은 기름값이 떨어질수록 기업과 공공기관에 막대한 이익을 안길 것이다.

국제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 악영향을 미칠지는 박근혜 정부가 하기 나름이다. 국제 유가 하락이 정부와 기업의 배만 불리는 비정상,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서민들이 미약한 훈풍이라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국제 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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