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소급? 좋아하고 끝낼 일 아니다

[게릴라칼럼] 정부 여론 들끓자 백기항복... 조세 형평성 논의해야

등록 2015.01.22 11:50수정 2015.01.2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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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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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8일 정부가 발표한 '2013 세법개정안' 보도 화면 ⓒ 한국경제TV


"고소득층에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함으로써 새롭게 확보하는 세수는 전액 근로장려세제 강화나 자녀장려세제 신설 등 서민·중산층에게 돌아가도록 해 소득재분배 기능을 보다 강화했습니다."

2013년 8월 8일, 박근혜 정부는 임기 5년간 조세 방향이 될 '2013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소득세와 소비세 비중을 높이되 법인세와 재산세는 성장 친화적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비중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낮기 때문에 소득세 비중을 높이고, 창조경제 기반 구축을 위해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 따랐다.

최근 '13월의 세금폭탄'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연일 해명하느라 바쁘고, 여당도 불똥이 옮겨 붙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야당은 오랜만에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보수 언론은 명백한 부자만의 증세라고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고, 진보 언론은 바뀐 연말정산 제도에 긍정적 요인도 없지 않다는 논조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정당, 언론조차도 현상의 진단에만 급급할 뿐이다. '세금폭탄'이 언제 무슨 이유로 투하됐는지 근본 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출산 장려하며 다자녀 공제 폐지한 나라, 대한민국

2015년 1월, 월급쟁이 서민들 밥상머리에서 터진 세금폭탄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다듬어져 2013년 8월 8일에 장전 발포된 것이다. 소득세와 소비세를 높이고 법인세와 재산세를 낮춘다는 2013 세법개정안이 그것이다. 담배소비세의 인상이나 소득세 인상은 세법개정안에 따른 하나의 조치일 뿐이니 그리 호들갑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다. 또 수천억 원에 달하는 법인세 감세는 나 몰라라 하면서 13월 보너스가 세금 고지서로 바뀌었다고 '조세저항' 운운하는 것도 어쭙잖은 일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소득세 비중이 OECD 국가에 비해 낮아 평균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소득세는 임금 수준과 직결된 문제다. OECD 국가 중 최저임금이 꼴찌 수준인 현실을 두고 소득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유리지갑을 더 털어 내겠다는 협박과 다르지 않다. 저임금 구조를 해소하면, 소득세 비중은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다. 저임금 구조는 그대로 두고 소득세 비중만 올리려니 억지가 생기고 비명과 비난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혼란이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바뀌고 많이 거둬 많이 돌려주는 방식에서 적게 거둬 적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바꾸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고소득층 증세를 강제하는 진일보한 조세제도라 평가한다. 때문에 몇 가지 문제점만 보완하면 될 뿐, 복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내비친다. 또 '세금폭탄'이라는 용어의 남발은 자칫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담시키는 조세개혁을 되돌릴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자들에겐 '은총의 메시지'에 가까운 세법개정안

그러나 난 그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세액공제로의 전환으로 재분배 효과를 강조했지만, 각종 공제제도를 축소하거나 없애 직장인의 70%가 내야 할 세금이 늘고 저소득층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반드시 필요해서 시행됐다는 각종 공제제도의 축소와 폐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전혀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일례로 다자녀 공제 폐지는 출산 장려 정책을 펴는 나라가 맞는지, 그 진정성마저 의심케 만드는 행위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인 임금에 과세하는 '근로소득세' 비중을 무작정 높이는 것이 올바른 조세 방향인가에 대한 논의조차도 거의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의 목적이 세수 확보였다면, 자산 소득에 대해 철저한 과세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집 가진 사람, 자산가들에게 각종 면세 혜택을 부여해 왔다. 다주택자에게 취득세를 감면해주고, 전월세 소득에 대한 과세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재벌들의 편법 상속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이나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근로 소득보다 자산 소득이 더 많은 부자들에게, 재산세를 성장 친화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세법 개정안은 혜택이 넘어서는 '은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증세 아니라 조세 형평성과 원칙 논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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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부총리 '연말정산' 긴급 회견 연말정산 관련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뒤 브리핑실을 떠나고 있다. ⓒ 권우성


"세계적인 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세를 높이는 것은 안 된다. 법인세를 낮추는 게 세계적 추세다. 법인세를 높이지 않는 게 저의 소신이다."

2013년 9월 16일, 여야 대표와 마주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명박 정권은 몇 차례에 걸쳐 법인세율을 낮췄고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법인세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 되었다. 앞서 담뱃값 인상 논란이 불거졌을 때 '법인세 인상'이란 카드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법인세를 올리면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30대 대기업이 2013년 낸 실효세율은 15.0%에 불과해, 최저한 세율(기업들이 각종 비과세, 감면, 공제 등을 통해 세금이 깎이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최소한의 세율) 17%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3년 10대 대기업의 법인세 감면액은 평균 3191억 원이나 됐다. 하지만 기업들에 대한 법인세 감면이 고용과 투자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업 창고의 현금 보유액만 크게 늘었을 뿐이다.

들끓는 여론을 지켜보던 여당과 정부는 21일, 부랴부랴 '소급적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 자녀세액공제 상향 ▲ 자녀 출생·입양 세액공제 신설 ▲ 독신근로자의 표준세액공제 상향 ▲ 연금보험료 세액공제 확대 ▲ 연말정산 추가납부세액의 분할 납부 허용 등의 수습안도 발표했다.

마치 성난 민심에 백기를 든 모양새다. 그러나 좋아할 일도,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낼 일도 아니다. 이 파문을 기회로 증세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섣부르다. 비록 지금은 정부가 한발 물러섰지만, 정부가 봉급생활자의 유리 지갑을 털어 국고를 채우려는 소득세 인상의 계획 전체를 백지화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성장 친화적 조정'이라는 미명하에선 법인세와 재산세의 감세는 요원하다. 이 파문을 기회로 새로 논의해야 할 것은 증세가 아니라 조세 형평성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만들어진 '2013 세법개정안'의 근간은 틀렸다. 근로 소득뿐만 아니라 자산 소득까지 포함해서 소득세를 과세해야 한다. 비중을 높이는 것보다 투명성 담보가 먼저다. 소비세는 물가나 서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013년 세법 개정안은 잘못 끼워진 첫 단추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아래 단추는 번번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풀어서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게 현명한 길이다.
#세금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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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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