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다닐 수 없는' 하노이에서 여행하는 법

[우리 가족의 베트남 여행기 ②] 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것

등록 2015.02.03 11:18수정 2015.02.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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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부터 23일까지 13일간 가족과 함께 휴가차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이끌고 부모가 따라가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여행이었지만, 아이가 한 뼘 더 성장한 모습이 보여 뿌듯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베트남 여행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들려드리려 합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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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서 속의 질서? '올드 쿼터(Old Quarter)'라고 불리는 하노이 구시가의 입구 모습. 차선도 신호등도 유명무실한 '당황스러운' 풍경이다. ⓒ 서부원


공항을 나오니 한겨울이라는데도 푸근하다. 현지 기온 17도. 사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베트남의 겨울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더니만, 제대로 속은 기분이다. 아이 둘과 동행하는 길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왔건만, 배낭 속 두툼한 패딩은 여행 내내 짐이 될 것 같다. 긴팔 셔츠 하나만 달랑 걸친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로 외투에다 목도리, 장갑까지 낀 베트남 사람들이 어째 좀 우스꽝스럽다.


하노이 시내로 향하는 길, 베트남은 우리를 '요란하게' 환영해주었다. 쉬지 않고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차안에서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마저 방해한다. 이방인의 호불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기사는 습관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도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그렇다고 서로 흘겨보거나 화를 내지도 않는다.

베트남 하면 '쌀국수'? 모르는 이야기

소음과 바깥 풍광에 정신이 팔려 택시 요금을 미처 신경 쓰질 못했더니만, 아니다 다를까 예상했던 요금을 훨씬 초과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아이가 첫 만남부터 바가지를 쓴 거라며 아쉬워했다. 차에 탈 때부터 기본요금이 터무니없이 찍혀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거스름돈도 돌려받지 못했다. 하긴 웬만해선 거스름돈을 주지 않으니 잔돈을 미리 챙겨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래봐야 우리 돈으로 3천 원 남짓에 불과하지만, 베트남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게 구겨졌다.

'베트남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바가지'라는 어느 관광객의 블로그가 떠올랐다. 해외여행 중 불쾌했던 기억은 단 한 번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지만, 설마 내가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관광지 입장료는 물론, 버스 요금까지도 외국인들에게는 차등 적용했다고 한다. 그런 방식이 '관행'이 되어 바가지라는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알면서도 당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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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주차돼 있는 오토바이들 인도도, 차도도 '주인'은 단연 오토바이다. 도저히 걸어다닐 수 없는 이유다. ⓒ 서부원


과연 하노이는 오토바이의 천국이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오토바이에 포위되지 않은 것이 없다. 오토바이와 '공존'하지 못하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이 베트남이라더니, 이제야 그 말뜻을 알겠다. 외국인들은 베트남 하면 쌀국수와 아오자이를 우선 떠올린다지만, 그건 베트남을 직접 와보지 않은 사람들 이야기다. 와본다면 단박에 생각이 바뀔 것이다. 주저없이 오토바이로.


명색이 한 나라의 수도인데도, 도로에 신호등 체계가 전혀 정비되어 있지 않다. 도로 위에 건널목 표지가 또렷이 그려져 있긴 하지만, 이를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등을 찾고, 오토바이 행렬이 줄어들 때까지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차도를 인도처럼 스스럼없이 건너다니는 서양 관광객들이 아니었다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언제까지 장승처럼 거기에 그대로 서 있었을 것이다.

흰 점선으로 표시된 도로의 중앙 차선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지다. 역주행도 다반사고, 서로 알아서 눈빛을 교환하며 익숙한 듯 피해간다.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곡예 운전을 하는 모습이 절묘한 한편의 서커스처럼 느껴진다. 시내 어느 도로를 가든 '사람 반, 오토바이 반'인데, 이 기괴한 모습을 혹자는 '교통 지옥'이라 평하겠지만, 베트남을 상징하는 풍경이자 최고의 볼거리라 할 수도 있다. 9천 만 명의 인구에 오토바이가 4천 만 대라고 하니, 결코 과장된 언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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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차도의 경계(?) 오토바이가 통행하고 주차하기 쉽도록 인도와 차도의 턱을 없앤 모습. 거의 대부분의 도로가 이렇게 '배려'돼 있다. ⓒ 서부원


하노이의 유명 관광지는 충분히 걸어 다닐만한 거리에 대개 모여 있지만, 여간해서는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인도조차 주차된 오토바이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예 인도가 차도고, 차도가 인도다. 어디든 빈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고, 오토바이가 합법적으로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되며, 자전거와 인력거를 결합해놓은 '씨클로'가 도시의 구석구석을 활보하고 있는 건, 어쩌면 걸어 다니기 곤란하기에 생긴 그들만의 해법 아닐까 싶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오토바이의 대수를 제한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지만, 웬만해서는 도로의 '주인'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은 데다 간선도로를 제외하면 교행조차 어려울 만큼 도로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해서, 도시의 모든 교통 체계가 오토바이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토바이로는 어디든 갈 수 있다. 통행료를 받는 고속도로에서도 주행이 가능하고, 인도에서도 통행하거나 주차가 가능하도록 차도와의 턱을 없앴다. 건물에 넓은 공간과 승강기만 있다면, 근무하는 사무실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올라갈 수도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복잡한 도심은 말할 것도 없고, 장거리가 아니라면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훨씬 이동성과 편의성이 높다.

그럼에도 도심을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험천만하게 느껴진다. 여행 전 챙겨 읽은 몇몇 여행 자료집에서는 '쎄옴'이라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흥정해 타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라며 추천하고 있지만, 웬만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니라면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하물며 대여해서 직접 운전한다는 건 현지 법적으로만 가능한 일일 뿐, 적어도 도심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닌 게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남녀노소,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다. 면허증도 따로 없고, 대여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요금 또한 무척 싸다. 그러다 보니 안전의식이 매우 희박해보이기까지 한다. 이마저도 최근의 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안전모를 썼다는 것만 빼면, 위험천만한 것 투성이다. 조그만 스쿠터에 네 가족이 '매달린' 채 운행하는가 하면, 그 복잡한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곡예 하듯 운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괴기스러운' 사고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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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사고가 난 현장 혈흔은 모래로 대충 덮었고, 그 옆에는 누군가가 향불을 피워놓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일상으로. 괴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 서부원


13일간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동안, 운행 대수에 견줘 사고율이 낮다는 여행 자료집의 내용을 의심할 만한 오토바이 사고를 세 번이나 목격했다. 모두가 사망 사고였는데, 그 중 하나는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다음 날 사고 현장을 지나는데, 모래로 덮인 짙은 혈흔 곁에 누군가 작은 종이 제단을 만들어 향불을 피워놓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그 곁을 지나다니는 모습이 괴기스럽게 느껴졌다.

사흘간 머물렀던 하노이에서의 저녁은 늘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호안끼엠 호수에서 마무리했다. 역사와 전설을 간직한 유서 깊은 곳일 뿐만 아니라, 주변에 이름난 여러 관광지를 품고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 받는 곳이다. 그런데, 저녁 시간을 굳이 그곳에서 보낸 이유는 따로 있다. 오토바이의 소음과 공해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을 수 있는, 시내에선 거의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다닐 수 없는 호수 주변 산책로를 거니는 것도 좋고, 호수 곁 스카이라운지에 앉아 분주한 도심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적어도 먼발치에서 내려다보는 개미떼 같은 도로 위 오토바이의 행렬은 더 이상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외려 이곳이 아니면 만끽할 수 없는 흥미롭고 이채로운 풍경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느지막하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 로비에서 직원이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으며 '오늘은 무얼 보고 왔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엉뚱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만 봤어요."

그가 예상했던 대답은 아마 여러 유적과 박물관, 유서 깊은 성당, 특별 공연 등이었겠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하노이의 볼거리는 단연 '오토바이'였다. 직원은 적이 황당해하는 표정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베트남 여행기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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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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