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옹호하는 진보당? 사실은 이렇다

진보당 당원, 헌재 판결을 말한다 ⑤

등록 2015.02.05 18:14수정 2015.02.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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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사건 상고심이 열린 지난 1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 전 의원의 중형을 선고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두둔하고 편들어 보호하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한 '옹호'라는 단어의 뜻이다. 통합진보당(진보당)은 북핵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인식되어 있다. 즉, 진보당은 북한의 핵무기를 혹은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을 "두둔하고 편들어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당에 대한 이같은 시각은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진보당은) 북한 핵실험의 당위성을 적극 선전하였"고(46쪽),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하여 일관되게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고 북한을 비난하는 데 반대하였"다고(49쪽) 적고 있다.

진보당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자위적 성격으로 파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회에서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을 채택한 것에 반대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위를 '북핵 옹호', 더 나아가 '북핵실험의 당위성 적극 선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언어 도단이고 색깔 공세다.

그렇다면 진보당은 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자위적 성격으로 파악하고, 국회에서의 북한 핵실험 규탄 결의안 채택을 반대했을까?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배경에 대한 진보당의 인식

진보당은 북한의 핵개발을 북미 적대적 관계의 산물로 본다. 북한과 미국이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같은 적대적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고 격퇴한다는 구실로 전쟁계획을 수립하고 전쟁훈련을 해왔다.


한반도 핵무기 배치와 미국의 핵전략 그리고 그에 따른 한미연합군사 연습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번 글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다만,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은 미국의 핵무기 배치, 전쟁연습, 전쟁계획 등은 모두 북한을 대상으로 하며, 때문에 북한은 끊임없는 안보 위협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한 지 5년이 흐른 뒤인 1963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전국토를 요새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록 우리 쪽에 핵무기가 없더라도, 전국토의 요새화에 의하여 핵무기를 가진 일당들을 무찌를 수 있다. 지하터널을 파야 한다. 방공·연안방위 강화는 물론, 제1전선뿐만 아니라 제2전선·제3전선구역의 요새화가 필요하다. 지하에 많은 공장을 건설해야 한다. 이같이 전국토를 요새화했을 때, 제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미국이라도 우리나라를 침략할 수 없을 것이다."

레이건 정부 들어 한미군사연습이 더욱 확대되자 1982년 북한은 아래와 같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다수의 핵무기를 동반한 미증유의 대규모 전쟁연습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전면핵전쟁으로 확대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북한은 미국의 핵전쟁 계획과 전쟁 연습을 극도로 경계해 왔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전국토의 요새화 등 4대군사노선을 채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처음부터 핵무기 개발하려는 시도를 노골적으로 보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1990년대 1차 핵위기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능력 또한 확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990년 말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일본을 방문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최종단계에 들어섰다"고 일본 외무성에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과도한 주장이었다. 실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3년의 일이었다.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해 진보당이 주목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도보다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다. 1990년대 초반 쟁점이 되었던 것은, 북한이 추출했다고 하는 플루토늄의 양이었다. 1992년 1월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에 대한 항의의 일환임을 부각시키면서 이 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있던 북한이, 1991년 말 미국이 한반도로부터 전술 핵무기를 철수하자 이 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그리고 1992년 5월 16개 핵시설 목록을 IAEA에 제출했고, 재처리한 플루토늄 양을 신고했다.

당시 북한이 신고한 플루토늄 양은 90g이었다. 그러나 미국과 IAEA는 이보다 더 많은 수kg의 플루토늄을 북한이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당시 한미 양국과 많은 언론들은 북한의 '거짓 신고'가 핵개발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북한은 특별사찰은 자신의 군사시설을 들여다 보니 내정간섭 행위라며 반발했다. 1차 핵위기가 고조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했고 이에 반발해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2008년에 와서야 1993년 당시 미국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이 확인됐다. 2007년 10월 3일 합의에 따라 북한은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서"를 제출하기로 했고, 2008년 5월 방대한 양의 문서를 제출했다. 이 문서를 검토한 후에 미국 정부는 "북한이 제출한 약 1800쪽 분량의 문서는 1986년부터의 운전 기록이 담겨 있었다"면서 당시 북한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1992년 북한의 플루토늄 신고량이 정확했음을 미국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1992년 미국이 실수했는지, 의도였는지 확인하는 것은 힘들기도 할 뿐더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근거 없이' 지속되고 강화됨에 따라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까지 치닫는 참담한 경험을 해야 했다. 이같은 일련의 흐름은 진보당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을 내리게 했다.

첫째, 북한과 미국은 군사적 적대관계에 있으며, 특히 북한은 한국 전쟁 이후 줄곧 미국의 핵위협 아래 놓여 있었다. 따라서 북한은 안보 확보의 차원에서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2002년 하반기 부시 행정부에 의한 대북적대정책이 보다 노골화되어 1994년에 체결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사문화된 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대한 '반작용' 차원이었다. 따라서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적대정책이 변해야 한다. 미국의 적대정책 변화 없이 북한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강대국의 지배논리에 순응하는 것이며, 이는 진보정당의 노선이 될 수 없다.

지난 2008년 6월 27일 밤 당시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서울 세종로 외교통상부청사 로비에서 북한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 폭파와 관련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수영


셋째, 북한은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는 협상카드로 핵을 사용해왔다. 북한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 2000년 북미 공동코뮤니케,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에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이 변한다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일관된 입장을 표명해 왔다. 그리고 미국이 그에 맞춰 선의의 행동에 나서면 북한 역시 선의의 행동으로 화답했다.

1994년 제네바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북한은 IAEA 감시요원을 받아들이고, 감시카메라를 설치했으며, 핵시설을 동결했다. 2008년 미국의 테러지원국에서 북한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하자 북한은 냉각탑을 폭파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이 대북정책을 포기한다면 북한은 관련 합의를 준수해 비핵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넷째, 따라서 북한 핵실험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긍정적이지 않으며,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할 것을 미국에 요구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많은 합의들을 준수할 것을 관련국들(북한을 포함)에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진보당은 이와 같은 입장을 갖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 입장에 근거해 발언하고 행동해 왔다. 비록 고위 당직자들의 발언들이 다소 국민 정서에 반했던 내용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발언들 역시 위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2006년 이용대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의 '북핵 자위적 수단' 발언이나, 김선동 전 의원의 "미국의 핵에 대한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는 것은 북핵을 '옹호'하는 발언이 아니라 지금까지 서술했던 진보당의 입장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한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야 한반도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던 것이다.

북핵에 대한 진보당의 인식은 보편적 인식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이고, 군사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로는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이끌어 낼 수 없으며, 북한의 핵무기 포기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철회되어야 한반도 비핵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진보당의 인식은 단지 진보당의 인식이 아니었다. 국내의 진보개혁 진영만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양식있는 인사들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해왔다.

1991년 플루토늄 불일치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시사저널> 75호는 일본의 군사문제전문가 쓰카모토 가쓰이치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사무국장을 인터뷰했다. 쓰카모토는 이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원면에서는 독자적인 핵개발이 가능하나 그것을 무기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핵무기는 정치적인 병기이다. 북한이 노리고 있는 것은 이 핵개발을 대일, 대미 수교교섭의 정치적인 흥정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북핵을 협상카드로 보는 시각의 시원을 여는 인터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기사 보기)

주한미대사를 지냈던 도널드 그레그 역시 "북한 입장에서 핵무기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북한 경제가 나아질 때까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안전보장 수단이다. 방어적 성격의 억지력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보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던 임동원, 정세현, 이종석 역시 진보당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동원 전 장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전략>에서 "북한의 핵개발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동기는 한반도 냉전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 및 장거리 미사일 위협을 제거하려면 북한이 느끼는 안보위협을 먼저 제거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피스메이커』, 400~403쪽) 또 "(북핵 문제) 해결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미국과 북한이며 다른 나라들은 도울 수는 있지만 대신할 수는 없다"고도 발언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이 "1990년대 초반 공산권이 붕괴되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면서 심한 체제불안을 느"꼈고, 북미 수교를 하자는 북한의 요청을 미국이 거절하자 "클린턴 정부 초에 결국 핵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분석했다. 또 2000년대 중반 2차 핵위기 역시 "2001년 부시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 북미 간 합의를 갈아엎어버렸습니다. 북한이 다시 초강수를 두기 시작하는데, 결국 부시의 대북정책이 6년간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의 성능을 향상시켰"다며 미국의 대북위협이 북한 핵무기 개발의 동기임을 설명했다.(<정세현의 정세토크>, 140~143쪽)

이종석 전 장관도 "북한은 미국과 항상 적대적 관계에 있던 상황에서 핵을 개발하게 되었다"며 북한 핵무기 개발이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진보당의 노선은 북한 노선 옹호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

북핵 문제에 대한 진보당의 노선은 북한 노선 옹호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의 원칙에서 비껴서지 않았다. 북핵문제가 악화되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진보당은 가장 먼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했다.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 등에서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고, 수많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왔다.

진보당의 주장이 경우에 따라서는 북한의 주장과 동일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주장과 동일하다고 하여 북한의 노선을 '추종'하고 '옹호'한다는 보는 것은 균형잡힌 사고가 아니다. 비근한 예로, 과거 5·18 광주학살에 대해 북한은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주장해왔다. 1995년 김영삼 정부는 전두환과 노태우를 내란죄로 구속했다. 그렇다고 하여 김영삼 정부의 이같은 조치를 친북으로, 북한 노선 '옹호'로 비판받지 않았다. 북한의 주장이기에 앞서 그것은 보편적 가치였기 때문이다.

한반도 핵문제가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 대결보다는 대화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가 북한 핵무기 폐기의 결정적 조건이 된다는 것 역시 북한의 주장이기에 앞서 보편적 가치다.

진보정당은 현실적 이익보다는 미래의 가치에 더 주목하는 정당이다. 비록 진보당의 주장이 당장 현실화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래서 비현실적, 이상적이라는 평가와 비판을 받을 수는 있으나, 현실적 어려움 때문에 진보적 가치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진보정당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

2015년 한 해도 수월치 않아 보인다. 미국은 대통령까지 나서서 북한 붕괴를 확신하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최근 밝혔다. 한반도에서 대화의 부재는 곧 전쟁 위기의 고조를 의미한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에 착수할 수도 있고, 이럴 경우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가할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고조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 노선의 설자리는 갈수록 좁아질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통일이라는 진보적 가치는 흔들려서는 안 된다. 비록 진보당은 해산되었으나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하고, 북한을 목표로 하는 한미연합 전쟁연습은 중단되어야 한다. 한국 내에서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야 한다.
덧붙이는 글 통일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진보당 해산 #한반도 비핵화 #북핵 옹호 #통합진보당 #핵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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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글로벌피스연구원 특임교수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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