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등 경남 지자체장들, 도 넘은 '꽃사랑'

도·시·군청 앞 무더기 대형화분 즐비... "불통 상징, 민의 저버리는 행위"

등록 2015.02.13 15:14수정 2015.02.13 15:14
25
원고료로 응원
"경남도지사와 시장·군수들이 꽃을 정말 좋아해서 그렇겠지?"
"그래도 어떻게 하나에 80만 원짜리 화분을 설치할 수 있나."
"주민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거 아니냐. 왕조시대보다 못하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안상수 창원시장이 취임한 뒤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앞에 대형화분이 무더기로 설치되더니, 최근에는 거창군청과 함안군청 앞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자 시민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남도를 비롯해 시·군청 측은 '환경미화' 차원이라고 하면서도 천막농성 등 불법집회를 막기 위한 의도라고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은 "화분 설치는 불통의 상징"이라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거창] 교도소 반대 천막농성에 개당 80만 원 화분 제작

a

학교와 주거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거창구치소(교도소)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며 주민들이 거창군청 앞에서 천막농성과 집회를 열고 있는 가운데, 거창군청은 1~2월 사이 대형화분 20여 개를 설치해 놓았다. ⓒ 독자 제공


거창군청 앞 광장에는 대형화분 20여 개가 놓여있다. 거창군청이 지난 1월 중순께부터 화분을 가져다놓았고, 연말연시 점등 조형물이 지난 4일 철거되자 그 자리를 화분이 차지했다.

광장에는 현재 주민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교와 주거지역에 인접한 곳에 거창교도소(구치소) 설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난해 11월부터 1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구치소 설치 여부를 주민투표로 결정할 것 등을 요구하며, 이곳에서 한때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형화분이 차지한 광장에서는 통기타 등 다양한 문화공연과 바자회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형화분이 2m 정도 간격으로 들어서 있어 문화공연은 엄두도 못낼 판이다.


거창군청은 군청사 주변 등에 있는 화분을 옮겨 왔고, 다섯 개는 새로 만들었다. 새 화분은 화강석으로 1개당 80만 원을 들여 제작했다. 여기에 화분을 옮기는 데 필요한 장비도 동원됐고, 예산 지출도 있었다.

거창군의 조치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거창군 주민 임영태씨는 "화분을 설치하는 데 많은 돈을 들였다는 말이 있어 행정정보공개청구를 해놨다, 어떻게 하나에 80만 원짜리 화분을 설치할 수 있나"라면서 "군청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가 봐도 교도소 반대 목소리를 막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점도 '함께하는거창' 대표는 "화분은 거창군이 군민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억지행정의 상징이다, 광장은 문화활동과 바자회 등이 열리는 공익적인 장소였다"라면서 "교도소 반대집회를 하니까 화분을 설치한 것이다, 이제는 화분이 차지하고 있어 문화활동도 할 수 없게 됐다"라고 지적했다.

거창군청 재무과 관계자는 "구치소 반대주민들이 지난해 11월부터 불법으로 천막을 치고 시위를 하고 있다, 몇 번 계고장을 보냈지만 철거가 되지 않고 있다"라면서 "집회를 막아보자는 의도로 화분을 설치했고, 봄이고 해서 환경정비 차원도 있다"라고 말했다.

[함안] 해고자 방송차량 막기 위해 화분 10여 개 설치

a

함안소각장 해고자들이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함안군청 앞에서 방송차량을 틀어놓고 항의하자 함안군청은 지난 10일 대형화분 10여 개를 설치해놨다. ⓒ 윤성효


a

함안소각장 해고자들이 함안군청 앞에서 방송차량을 통해 노동가요를 틀어놓자 함안군청은 진나 2월 10일 방송차량을 주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형버스를 주차해놨다. 이곳에는 '주차금지'라는 표시가 있었다. ⓒ 윤성효


함안군청과 함안군의회 앞. 최근 대형 화분 10여 개가 놓였다. 함안군청은 지난 10일 군청 앞 입구 도로 가장자리에 화분을 설치했다.

요즘 함안군청 앞은 시끄럽다. 함안소각장 해고자들이 '고용승계' 등을 요구하며 군청 앞 주변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승합 차량에 방송장비를 설치해 노동가요를 틀어놓고 있다. 당초 해고자들은 방송차량을 군청 앞 도로에 주차해놨다. 이 자리는 '주차금지' 표시가 돼 있고, 그 옆 주차장에는 천막이 설치됐다.

함안소각장 해고자들은 "우리가 방송을 틀고 집회를 여니까 (집회를) 못하게 하려고 화분을 설치한 것"이라며 "방송차량을 주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군청버스를 2시간 가까이 주차금지 구역에 대놓기도 했다, 우리가 하면 불법이고 군청이 하면 불법이 아니란 말이냐"라고 따져물었다.

허광훈 (경남)일반노조 위원장은 "경남도청·창원시청 앞에 가면 대형화분이 많이 놓여있는데, 함안군수가 홍준표 지사를 따라해 이곳에도 화분을 갖다놨다"라면서 "군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함안군청 담당자는 "(함안소각장 해고자들이) 군청 앞 도로 쪽에서 집회를 열고 승합차를 주차해놓으니까 그것으로 인해 우회전 차량이 시야를 가린다, 차량을 주차해 놓으면 안된다"라면서 "부득이하게 방송차량 주차를 막기 위해 화분을 설치했다, 군청 별관 앞에 있던 화분을 옮겨놨다"라고 밝혔다.

[경남도청·창원시청] 광장 꽉 채운 대형 화분

a

경남도청 정문 앞. 대형 화분이 무더기로 설치돼 있다. ⓒ 윤성효


a

창원시청 앞. ⓒ 윤성효


홍준표 경남지사와 안상수 창원시장이 취임한 뒤 경남도청·창원시청 정문·현관 앞에 대형화분이 다량으로 설치됐다. 홍 지사와 안 시장은 각각 새누리당(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냈다.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앞에는 각각 100개가 넘는 화분이 놓여있다. 화분 가격은 하나당 15만~20만 원 정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에도 꽃을 심어놨지만 자라지 못해 시들어버린 화분도 있다.

두 장소는 노동단체, 야당, 시민사회단체, 장애인단체, 농민단체 등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왔던 장소다. 이곳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거나 천막농성·발족식·나락적재 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는 그동안 농민단체들이 나락적재 투쟁을 벌였고, 진주의료원이 폐업되자 박석용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진주의료원지부장은 2013~2014년 사이 수개월 동안 1인시위를 하기도 했다. 또 장애인단체들이 천막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경남도청이 화분을 설치해 나락적재투쟁을 할 수 없게 되자,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은 지난해 11월 경남도청 정문 앞이 아닌 오른쪽 인도에 나락을 쌓았다.

창원시청 앞에 화분이 설치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이전에 일반노조 창원시립예술단지회가 집회를 벌였던 창원시청 현관 앞 계단에도 화분이 즐비하다.

지난해까지 창원시청 정문 앞에는 노동단체뿐만 아니라,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이 주남저수지 개발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고, 진해 주민들이 새 야구장 위치 변경(진해→마산)을 반대하며 집회를 열기도 했다.

경남도청과 창원시청 관계자는 "화분을 설치했더니 시민들 반응이 더 좋다"라는 입장이다.

한은정 창원시의원은 "대형화분 설치는 자치단체장과 주민의 단절로 보인다"라면서 "얼마전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화분을 보더니 '돈이 남아도니까 화분을 가져다 놓는 거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대형 화단 자리잡은 진주시청 앞... "왕조시대보다 더하다"

a

진주시청 건물 앞 모습. 화단이 설치된 2002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여러 단체들이 농성을 벌이는 등 다목적으로 활용됐었다. ⓒ 윤성효


진주시청 앞 광장에는 대형 화단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 화단이 설치된 때는 2002년께다. 이전에는 화단이 없는 광장이었고, 노동단체 등이 이곳에서 집회를 열거나 농성을 벌여왔다.

민주노총 진주지부 관계자는 "이전에 진주시청 앞 광장에서 삼성교통 노동자들이 집회와 농성을 벌였다, 화단이 들어서고 난 뒤부터는 아예 농성조차 할 수 없게 됐다"라면서 "꽃을 봐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경남도청 공무원 출신인 이병하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본부장은 "행정이나 국가권력이나 사회적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의사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민주주의다, 처음부터 화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농성과 집회를 여니까 못하게 하려고 화분을 설치한 것"이라며 "권위주의 발상이다, 물리적으로 의사표현을 막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왕조시대보다 더한 것 같다, 요즘도 사극을 보면 선비들이 광화문이나 궁 앞에서 읍소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백악관 앞에서는 온갖 퍼포먼스를 다하지 않느냐"라면서 "물리적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막겠다는 것은 민의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경남도청·창원시청 앞 가득 메운 화분 ...왜?"
#화분 #경남도청 #창원시청 #거창군청 #함안군청
댓글2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