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소문을 박정희가 압수했다고?

[서평] 당차게 산 여인들의 기록 <미인별곡>

등록 2015.02.14 13:48수정 2015.02.1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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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산다는 것, 60 고개를 헉헉대며 넘고 있지만 나 역시 버겁다. '나이나 몸집에 비하여 마음가짐이나 하는 짓이 야무지고 올차다.' 그렇다. '당차다'는 말의 뜻이다. 오늘날처럼 개인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당차게 사는 게 이리 힘겹다. 것도 나이 지긋이 먹어가는, 남들이 '어른'이라고 하는 나 같은 중늙은이도 말이다.

그게 조선시대라면 어떨까. 반상이 엄연하던 때에 노비라면? 남존여비가 극성이던 시대에 여성이라면? 아마 그 환경자체로 널브러지고 말 것이다. 넘을 수 없는 바다고 오를 수 없는 산이라고 여기며 말이다. 그러나 전혀 기죽지 않고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하늘이면 하늘을 넘어버린 당찬 여인들이 있다.


'세상을 흔든 여인들의 불꽃같은 삶'이라는 부제가 말하듯, 이상국 기자의 <미인별곡>은 그런 여인들 17명을 추렸다. 그리고 피 터지도록 당찬 그들의 이야길 들려주고 있다. 저자도 말하듯, '손에 붙들리지 않는, 저쪽에서 사물거리는 여인과 소통하는 일은 고요하고 예민한 귀'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저자의 예민한 귀가 듣고 글로 풀어놓은 이야기가 사뭇 오늘을 사는 우리네에게도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든다.

초월, 임금의 술버릇에까지 쓴 소리한 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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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별곡>(이상국 지음 / 역사의아침 펴냄 / 2015.01 / 1만4000원) ⓒ 역사의아침

"주리고 목마른 것이 뼈에 사무쳐 얼굴이 퉁퉁 붓고 거죽이 누렇게 들떠 염치불구하고 문전걸식해도 제대로 얻어먹을 수 없습니다. 길에는 굶어죽은 주검이 엎어져 있고, 들과 구렁에는 송장이 널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간혹 인심이 순박하고 두터운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풍년을 당해도 세태가 각박합니다." - <미인별곡> 215쪽

세상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단다. 부익부 빈익빈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단다. 인심 또한 흉흉해져 예전 같지 않단다. 그러고 보면, 나라님이 정치를 잘못해 신민이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영의정이라도 이런 소릴 임금에게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혹 지체 높은 양반이 아랫사람에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지체에 의지하여.

"금잔에 담긴 향기로운 술은 백성의 피요, 옥쟁반에 담긴 맛있는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 촛대에 촛농 흐를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망소리 높더라.(金樽美酒 千人血, 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


이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변 사또의 잔치자리에서 읊은 시다. 암행어사라는 높은 지위를 확보했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다. 그런데 앞의 글은 상소문이다. 목숨이 둘이 아니고야 직언을 한다는 것이 허락되지 않던 시절이니 이런 상소를 올린 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용천 기생 초월이 임금 헌종에게 올린 상소문 일부다. 좀 심하게 말하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상소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가 후보로 지명되면서 한 말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 말을 액면대로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초월이란 기생은 1800년대에 벌써 임금에게 이런 글을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임금인 헌종의 술버릇에도 쓴소리를 한다. "전하께서는 밤늦게 술을 마셔 눈이 게슴츠레하고"라든가,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 익선관을 벗어버리고 왼손으로 창녀의 치맛자락을,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라는 직설적인 표현은 읽는 이의 가슴까지 조이게 만든다.

박정희 정권의 상소문 강탈, 왜?

초월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 동암 심희순의 첩실이다. 심희순은 서장관으로 청나라에까지 다녀 온 적이 있고 대사성을 지낸 인물이다. 초월은 이 상소문에서 남편도 '지각이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밥통'이라며 호되게 다뤄줄 것을 임금에게 요청한다. 더 이상 당찰 수가 없다.

"왕정시대에 군주에 대한 비웃음을 이토록 신랄하게 왕의 코앞에 들이댄 사례가 또 있을까?"라는 저자의 질문에 "없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후에 심희순이 파면되지 않고 계속 관직을 유지했던 걸 보면, 헌종은 초월의 상소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게 분명하다. 아니면 전달되지 못했거나.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초월의 2만1000자에 이르는 이 상소문을 박정희 정권 때 정보기관이 압수해 갔다는 사실이다. 1972년 뮌헨올림픽이 테러로 중단되고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던 뒤숭숭한 시절에 한 신문이 안동김씨 김병시 집안에서 발견된 이 상소문의 필사본을 입수해 실은 게 화근이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정보기관 요원들은 김병시의 방계 자손인 김병호씨에게 원본을 요구해 빼앗아갔다. 저자는 "왜 조선시대 기생의 상소문을 당시 권력이 급히 챙겨갔을까?"라고 묻는다. 임금을 향한 통렬한 비판을 박 정권을 향한 비판으로 느껴서 그렇지 않았을까. 당시 정부는 10월 유신으로 독재를 연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을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절대 권력인 조선의 왕도 흘려 지날 수 있는 걸, 박정희 정권은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인데, 얼마나 희한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이미 신문에 발표된 조선시대의 상소문을 빼앗아간다고 국민적 반항이 수그러들리라 생각했던 당시 정권과 권력의 어리석음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더 심란한 것은 요즘에 박정희가 부활한 게 아닌가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걸출한 여인들의 삶, 독특하지만 흔적이 많지 않아

<미인별곡>에는 초월의 당찬 상소문 이야기 외에도 16명의 특출한 여인들의 삶이 녹아 있다. 할 수 없는 환경인데 한다면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으며 만난 17명의 여인들에게서 환경이 그리 장애가 못 된다는 걸 새삼 발견했다. 하긴 그랬기에 이런 기록으로 남을 만한 게 아닌가.

일본, 한국, 북한을 넘나들며 춤을 추었던 희대의 춤꾼 최승희, <인생의 봄>, <고도의 정한> 등의 유행가로 히트를 친 일제시대 기생가수 왕수복, 남성들 틈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만주벌판을 누빈 독립운동가 남자현, 평생 가슴에 백석을 품고 사랑한 여인 <내 사랑 백석>의 저자 자야 김영한, 조선 여류 시인 김부용, 매창, 자동선, 황진이, 궁궐의 걸출들인 숙빈 최씨, 인현왕후, 장희빈에 이르기까지 총 17명의 여걸들이 책에 등장한다.

"나는 여자를 모른다"면서 17명의 조선여자들과 '썸을 탄' 저자의 기록은 그가 말하듯 '열애 여행'이 분명하다. 뜨거우면 더욱 싸늘하게 식는 법. 한결같이 뜨거운 삶을 열악한 시대란 도화지에 녹여 놓았으면서도 그들의 흔적은 그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몇몇을 빼놓으면.

실은 이게 우리가 자라온 여자를 보는 밭이다. 남자의 밑에서, 남자를 뒷바라지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했던 이들 사이에서, 책에 등장한 여인들은 나름 자신의 색깔을 세상이란 도화지에 칠한 이들이다. 그들의 당참에 놀라면서, 여성 대통령이 통치하는 대한민국에 이런 당찬 여인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미인별곡>(이상국 지음 / 역사의아침 펴냄 / 2015.01 / 1만4000원)

미인별곡 - 세상을 흔든 여인들의 불꽃 같은 삶

이상국 지음,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2015


#미인별곡 #이상국 #조선여인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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