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엄마 되려다... 망했습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책2] <유기견 노먼과 한 가족 되기>

등록 2015.02.17 15:09수정 2015.06.1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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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아이가 책읽는 모습은, 곤히 잠들었을 때 만큼이나 예쁩니다. 아이가 '큭큭' 대며 읽는 책 내용이 궁금한 마음에 한두 권 따라 읽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얼굴 빨개지는 책부터 독특한 그림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책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아이들 책을 기웃거리며 울고 웃은 내용을 담아봅니다. -기자말

"오늘은 네가 원하는 것 사준다고 했으니까, 골라봐."
"정말 내가 원하는 거 사줄 거지?"
"응? 응.. 그~럼."


큰아이와 동네서점에 갔습니다. 칭찬스티커를 다 붙이면 원하는 책을 사주겠노라 약속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벌써 몇 분 째 스티커 북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저 스티커 북을 산다고 하면 또 사줘야 하나? 집에도 이미 많은데...'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요? 아이는 결국 포켓몬스터 스티커 북을 손에 꼭 쥐고 말합니다.

"엄마 이거 사도 돼?"
"에이~ 뭘 이런 걸 사, 다른 거 사면 안돼?"
"내가 원하는 거 사준다며..."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더라고요. 쿨한 엄마 되려다 체면만 구기고... 망했습니다. 책 한 권 사는 일도 이런데 애완동물을 선택하고 키우는 일을 아이에게 믿고 맡기는 일은 더 어렵겠지요? 그런데 여기 <유기견 노먼과 한 가족 되기>에 등장하는 엄마아빠는 좀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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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인생의책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기견 노먼과 가족이 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개를 데려갈래?" 유기견을 입양하러 유기견보호소에 온 소년에게 엄마가 묻습니다. 소년은 "전부 다 데려갈래요"에서 한 발(?) 양보해 "가장 슬픈 개를 데려 가겠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보호소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개 노먼을요.


소년의 결정에 엄마아빠는 "저 개 털이 더 예쁜데..."라거나 "저 개가 더 똑똑해 보이는데" 혹은 "저 개가 더 깨끗한데..."고 토를 달지 않습니다.

집에 돌아온 소년은 노먼을 훈련시킵니다. "노먼 앉아", "노먼 짖어" 등등. 그러나 노먼은 소년의 말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래도 엄마아빠는 소년에게 "왜 이런 개를 고른 거야?"라고 탓하지 않습니다. 그저 똑똑하지 않은 개일 뿐이라고, 대신 "노먼은 귀엽고 정이 많다"고 말해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전이 일어납니다. 노먼이 중국어를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소년의 가족은 노먼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중국어 공부를 시작합니다. 엄마아빠는 중국어 공부가 어렵지만 쉽게 그만두자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만큼 중국어 실력이 쑥쑥 늘지 않자 실망한 소년에게 "대신 우리 가족은 정이 많아"라거나 "우리 가족은 재밌어"라고 말해줍니다.

결국 소년의 가족은 노먼을 훈련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중국어만 배우기로 하는데요. 그 이후 중국어를 알아듣는 노먼을 주변 사람들은 마냥 신기해합니다. "똑똑하다"고 칭찬도 합니다. 그러나 소년의 가족은 이렇게 말합니다. "똑똑해서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라고요.

우리 아이 말마따나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이 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참 예쁩니다'. 또 '씰룩쌜룩 기분 좋아 엉덩이춤'을 추는 노먼도 귀엽고요. 그런데 엄마인 제가 읽었을 때는 소년의 엄마아빠가 아이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말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투가 한눈에 봐도 아이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 중 하나가 자존감이라던데…. 말만으로도 충분히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에둘러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소년이 포켓몬스터 스티커를 사도 되냐고 물었다면 이 엄마아빠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이야, 포켓몬스터 스티커 정말 멋진데?"

쿨한 엄마 되기, 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유기견 노먼과 한 가족 되기

캐럴라인 애더슨 글, 친 렁 그림,
내인생의책, 2015


#유기견 노먼과 한 가족 되기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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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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