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가 되면 죽고 싶었던 나... 이제 알 것 같다

[유럽포토에세이⑪] "제대로 예쁘게 늙었더라"라는 말이 주는 의미

등록 2015.02.19 19:55수정 2015.02.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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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을 가면 어디를 가야 하고, 파리를 가면 무엇을 봐야 하고, 프라하를 가면 인형극을 보는 게 좋다는 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진 정보였다. 그래서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그곳을 안 간 것 같고, 나만 손해를 본 것 같고, 바보 같이 놓쳐서는 안될 것을 놓친 것 같은 억울함마저 든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라는 게 그런가. 물론 그때 당시만 하는 것들이라면 정말 아까울 일이지만(예를 들어 특별전·특별 공연·축제 등) 그 시간 그걸 놓쳤다면 다른 것을 보았을 것이고, 그 다른 것 또한 분명 그곳을 말해주는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더 소중한 경험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재즈공연 대신 택한 연극... 남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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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2008 년. ⓒ 배수경


프라하에서는 인형극이 유명했다. 하지만 나는 전날 체스키 크롬로프를 다녀오면서 들었던 정보를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그건 레듀타라는 재즈 클럽 공연이었다. 워낙 프라하에서 유명한 클럽인데다가 마침 시간이 딱 맞는지라 다음날 떠날 것이라 더 이상 환전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오직 그 공연을 위해 다시금 돈을 뽑아 달려갔던 곳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재즈 공연이 8시가 다 된 시간인데도 열리지 않고 옆에 작은 소극장에서 연극이 예정돼 있어서 대신 그것을 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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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키 크롬로프 2008년. ⓒ 배수경


작은 소극장 안에 연극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둘 좌석을 채우기 시작했다. 나는 일부러 앞 자리에서 봤는데 전반적인 빛의 조화나 연극의 총체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그닥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 배우들의 표정 하나 하나 눈빛 하나 하나를 읽을 수 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성 맞춤이었다.

무대 위, 눈에서 혈기가 느껴지는 젊은 남자배우는 멋진 미소를 가졌지만 그의 옆에는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의 노(老)배우가 있었다. 살아온 연륜이 난폭하거나 세차지 않고 곱게 내려 앉아 있는, 누구든 포용할 것 같은 얼굴에는 그러나 사물을 꿰뚫어 보고도 남을 만큼의 눈빛이 숨쉬고 있었다.


젊은 배우에게는 좀 더 크고 싶은 욕망과 열정이 함께 공존했다면 나이든 배우에게서는 유명하고 안하고를 떠나 배우로서의 본인을 부드럽게 풀어놓는 여유가 내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려고만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둘러보며 그 공간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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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한 연극 공연장. 2008 년. <공연 중에는 카메라 사용이 안되서 배우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연극 시작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 배수경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 연극 자체가 주는 메세지들을 떠나 배우들로부터 얻게 된 생각들이 주위를 맴돌았다. 노배우가 지닌 얼굴이 너무나 근사하도록 멋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근사했다. 잘생겨서가 아니라 살아온 연륜이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자신을 무던히도 두드렸을, 무던히도 다독이고 엄격히 책망하고 다시 따뜻하게 안아냈을 그 노력들이 가늠 될만큼 그의 얼굴은 텅빈 듯하지만 꽉찬, 아주 멋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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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거리 거리의 악사로서 너무나 평온한 얼굴을 하고 소박한 일상을 고양이와 친구와 함께 즐기던 아저씨의 얼굴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던 프랑스 한 역 앞 거리에서. 2008 년. ⓒ 배수경


내가 12살 때 쯤 친척 중 한 분은 24살이었다. 나와 띠 동갑인 24살이었던 그녀는 당시의 어린 내게 너무나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12살 그리고 그 이후로도, 나는 24살까지만 살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24살도 지나 29살이 됐을 때 그 이름 모를 불안감을 나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29살과 30살이라는 나이의 차는 불과 1년 이다라는 사실을 몰라서도, 서른이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은 나이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그건 뭐랄까, 29라는 숫자는 그것을 경계로 청춘과 청춘이 아님이 잔인하게 구분되는 차가운 쇠사슬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넘어오지 못하는 국경선. 이제 버리고 떠나가야 하는 안타까움들이 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 바로 29라는 숫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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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중 한 기차 안에서. 2010 년. 마치 기도를 하듯, 조용히 앉아 한참동안 아래를 응시하던 기차 안의 한 장년의 여인 ⓒ 배수경


그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점은 '서른은 그 나름의 맛이 있다'는 점이다. 애써 청춘의 그 화사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똑같아 보이기만 했던 30, 40 , 50, 60의 나이들이 그 각각의 맛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가능케 하는 세월이라는 놈의 그 의미를 조금씩 느껴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10대와 20대의 가녀린 선이 아니라, 마치 바이올린으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켜는 그런 섬세함이 아니라 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사회자 역의 게리슨 케일러를 사랑하는 메릴 스트립이 그가 다른 여자와 노래를 부르는 눈꼴시린 장면을 참다못해 둘의 노래 중간 냅다 옆에 있는 징을 때려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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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의 한 거리 위 희끗한 머리, 단정한 양복, 그리고 소박하고 자연스러보였던 자전거를 탄 장년의 신사. 2008년. ⓒ 배수경


억지를 쓰지 않는 거, 노래 그 자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삶을 노래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나이, 노랫 속에 지나온 삶이 녹아 있는 나이, 그래서 딸 역의 20대인 린제이 로한이 50 대 이상의 동료 배우들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를 감히 세월의 힘, 곰삭듯이 세월을 살아낸 그 청춘이 아닌 자들의 힘이라 부르고 싶어졌던, 흘러가는 물을 거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니라 흘러가는 물속에서 그 물을 즐길 줄 아는 나이의 이들이 보여주었던 한편의 쇼와 같던 그 영화에서처럼.

"제대로 이쁘게 늙었더라, 제대로 곰삭은 맛 말이야!" 언젠가 얼굴이 이뻐서가 아니라 삶의 맛을 제대로 표현해 낼 줄 아는 한 중년 여자 드라마 작가를 두고  어떤 시인이 이렇게 표현했던 것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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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괴팅겐 Gottingen 2008 년. ⓒ 배수경


누군가, 어디에선가 '잃어야 얻을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내 살아가는 모습도 때론 그런 것이 아닐까 ? 24살이면 죽고 싶다던 나는 이제 인생 각 단계의 나이가 주는 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의 청춘이 아닌 자들이 보여주었던 비(非)청춘의 자화상처럼, 세월의 흔적들이 줄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을, 젓갈처럼 나이 들어간 이들의 멋진 얼굴들을 세상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기에.

"중요한 건 삶에서 지금 내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느냐라기 보다는 지금 내가 그곳에 어떤 얼굴로 서 있느냐" 임을 알려 주었던 길 위의 스승들의 그 무언의 가르침들이 있었기에.
덧붙이는 글 2008년 유럽여행 중 체코의 한 극장에서의 연극에서 노배우를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유럽여행 #나이듦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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