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상상력'의 힘, 둘 중 어느 게 더 셀까?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회, 리움에서 5월 10일까지

등록 2015.02.23 14:08수정 2015.02.24 12:07
0
원고료로 응원
a

양혜규 I '소리 나는 의류(Sonic wears)' 놋쇠와 니켈로 도금된 방울, 금속 고리, 고무끈 2013-2015. '소리 나는 의류'를 위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로 보이고, 전시장 본관 입구에는 4개의 코끼리 '상(象)'자가 보인다. 이 두자를 합치면 상상력 할 때 '상(像)'자가 된다. 이번 전시의 주제가 뭔지를 암시한다 관객이 소리 나는 의류를 착용해 볼 수도 있다 ⓒ 김형순


삼성미술관 리움(용산구 한남동)은 2015년 첫 기획전으로 오는 5월 10일까지 설치미술가 양혜규(1971-)의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을 연다. 리움이 2004년 개관한 이후 국내 생존 작가 개인전으로는 '서도호' 이후 2번째다. 기존의 작품과 새로운 개념으로 만든 작품을 같이 감상할 수 있어 반 회고전의 성격을 띤다.

리움미술관 기획전시실 입구에는 4개의 코끼리 '상(象, 코끼리)' 자가 상하좌우로 적혀 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 코끼리는 한 번도 안 나온다. 그런데도 전시명에 코끼리가 붙은 건 작가가 전시를 구상하면서 'G.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코끼리를 소재로 한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에서 그 주제를 따왔기 때문이다.


전자는 식민 지배가 한 나라의 자연과 인간을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를 언급하고 있고, 후자에는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주인공 '모렐'이 그 악몽의 시간을 코끼리를 상상하는 힘으로만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양혜규 작가는 누구인가

a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과 양혜규 작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양혜규 작가와 같이 커미셔너로 나갔던 미술기획자 주은지 씨 ⓒ 김형순


그러면 작가 양혜규(1971~)는 누구인가. 그는 '백남준'과 '이우환' 이후 '이불' 작가와 함께 차세대 가장 촉망받는 작가다. 서울예고와 서울미대 조소과를 거쳐 세계화시대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술학교 '슈테델슐레'에서 유학했다. 1990년대 이후 산업화의 현장을 목격하고 자란 세대다.

2010년 독일경제지 '캐피탈'이 발표한 '세계 100대 미디어 및 설치작가' 중 이불(25위)에 이어 92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역시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대표작가로 참여하면서부터다. 거기에 출품한 작품 '살림'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1억5천에 소장된 것.

그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 명성의 독일 '카셀 도쿠멘타13'에 초대받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 외에도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에서 10년간 숨가쁘게 전시를 해왔다. 내년 후반기까지 전시 스케줄이 다 짜여 있다.


국내에서는 '셋을 위한 목소리(2010)'라는 제목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번이 국내 큰 전시로는 2번째다. 유명세에 비해 한국에서 전시는 적었다. 이번을 계기로 그에 대한 한국 관객의 목마름이 많이 해소될 것 같다.

양혜규는 우리 시대의 담론을 시적이고 추상적인 설치미술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과학기술대 김성원 교수는 이번 전시 글에서 그를 근대화의 허구와 세계화의 산물인 문화의 평준화가 낳은 다양성의 상실에 저항한 작가로 기술한다. 인터뷰를 통해서 본 그는 잠시도 창조의 욕망을 내려놓지 않았다.

문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계 조망

a

양혜규 I '중간유형_보로부두르(Borobudur 인도네시아 고대왕국에 의해 8세기 경 건축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최대불교유적지)에 부쳐' 인조 짚, 알루미늄 프로파일, 분체도장, 바인더 끈 275×489×585cm 2015[상단 좌], '중간유형_바다연꽃'[상단 우], '중간유형_털복숭이(드래곤볼)' 2015[하단 좌], '창고피스(Storage place)' 2004. Haubrok collection Berlin[하단 우] ⓒ 김형순


그러면 이제 아래층 '그라운드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는 그의 신작을 감상해 보자. '중간유형(연작)'은 작가가 일본 '가나자와' 공원에서 짚으로 만든 겨울나무 보호 장치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불교유적지 '보로부두르'(위)와 고대 마야 피라미드인 '엘 카스티요' 그리고 러시아에 있는 현대이슬람사원인 '라라 툴판' 등 종교유적지와 함께 인체를 연상시키는 인조 짚 작품들도 선보인다.

동시대미술에서 자료에 대한 독창성이 중요한데 원생적인 짚을 썼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런 재료는 고대부터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으로 쓰였으나 그 양상은 나라마다 다르다. 작가는 이런 문명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관계를 조망한다.

그런 면에서 이 연작의 제목이 '중간유형(The intermediates 다른 문명 사이 매개자)'인 건 적절하다. 문화권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나라 마다 고유성과 특이성을 넘어 그런 가운데 서로 만날 수 있는 매개체나 접점을 찾고 있다.

IT시대에 메이저미술관에서 짚으로 만든 작품이 나오니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의 파괴와 인간 존엄의 상실은 더 심각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야생적 사고'나 현대미술의 비상구였던 '원시주의 회복'과 관련성이 보인다. 이 작품의 주제를 미술관 자료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기술하고 있다.

위 작품과 같이 전시된 '창고피스'는 양혜규의 출세작이다. 음악과 다르게 미술은 작업을 하다보면 물리적 짐이 생기는데 이걸 둘 곳이 없어 난감해진다. 작가는 궁여지책으로 이걸 운송용 팔레트에 쌓아두었다가 풀지도 않고 전시장으로 보냈다. 이런 미술계 독특한 생리를 잘 개념화 했다고 해 2007년 독일의 컬렉터가 사갔다.

경계가 있기도 없기도 한 '블라인드' 연작

a

양혜규 I '성채'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천장구조물, 분체도장, 강선, 무빙라이트, 향분사기(모닥불, 산안개, 침향나무, 우림, 삼나무, 바다, 베인 풀, 탐부티나무향 가변크기 2011 ⓒ 김형순


양혜규 작가 하면 먼저 떠오른 게 '블라인드' 연작이다. 처음엔 작가가 벽을 싫어해 기능성으로 활용하려다 나중엔 그 자체가 예술품이 된다. 그 중 대표적 작품은 '성채'(2011)인데 이번에 리움 전에서 그 실물을 볼 수 있게 되어 반갑다.

186개의 블라인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정방형에 가까운 성곽과 수직으로 뻗은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리움 2층 200평 중 100평을 차지한다. 작가 말처럼 리움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다 품기에 비좁아 보인다. 전시장 위에 설치된 6대의 움직이는 '라이트'와 블라인드, 빛의 조합으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작품은 정말 시각만 아니라 공감각적인 오감도 일깨운다. 관객이 지나가면 곳곳에 장착된 분향기에서 커피나 나무의 향을 내뿜으며 코를 자극한다. 관객이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그 소리에 따라 조명의 색상도 변한다. 몸에서 뭣 모를 진동도 온다. 귀로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 같다. 백남준의 '참여TV'와 같은 발상이다.

블라인드는 배타성과 흡수성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러니까 경계가 있으면서 또한 경계가 없다. 여기 블라인드 '성채'는 그런 점을 노린 것으로 실제의 성채와 다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양혜규의 특징인 '양가성과 대조성'을 잘 대변한다. 

이런 작가의 특징을 리움미술관 태현선 수석큐레이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명료하면서 모호하고, 이성적인가 하면 감성적이고, 도회적인가 하면 민속적이다. 지적이면서 지극히 노동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모습이면서 수공예적이다. 이렇듯 종잡기 어려울 만큼 종횡무진 하는 이중성 혹은 양가적인 특성은 갖추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작품 속에 녹아있고 은유적이면서 수사적이다."

리움 전 야심작, 신 블라인드 작품

a

양혜규 I '솔 르윗 뒤집기_23배로 확장된, 3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 알루미늄 블라인드, 알루미늄 천장 구조물, 분체도장, 강선 350×1053×353cm 2015 ⓒ 김형순


양혜규는 위에서 본 기존의 블라인드방식에 만족치 않고 미국의 개념작가이자 미니멀 아티스트인 솔 르윗(1928-2007)의 작품 '3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1986)을 차용해 그걸 뒤집고 23배로 확장해 '솔 르윗 뒤집기_23배로 확장된, 3개의 탑이 있는 구조물'이라는 신작을 만든다. 여기에 들어간 재료를 보면 정말 독특하다.

그러면 두 블라인드 작품의 차이를 작가의 설명으로 들어보자.

"이번 리움 전에는 2개의 블라인드 작품을 선보이는데요. 격자모양의 '성채'는 안팎이 상통하는 방식으로 물 속을 유영하는 것 같죠. 그런데 저는 이런 기존 방식을 탈피해 비전형으로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솔 르윗 뒤집기'예요.

방법론으로 보면 '성채'는 추상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 '솔 르윗 뒤집기'는 아예 서사 구조 자체가 없어요. 존 케이지가 주사위 던져 작곡하듯 무작위적이고요. 어찌 보면 목적을 찾는 걸 포기한 그런 무용한 방식이에요.

그리고 두 작품의 또 다른 점은 전자는 블라인드가 186개지만 후자는 조밀한 블라인드가 무려 500개 넘어 밀도(density)가 아주 높아요. 이 밀도를 극한으로 끌고 가다보면 반투명성인 블라인드의 특징도 무력화되어요. 일단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것(radicalization)이었죠. 저는 예전 방식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싶었어요."

삶이 축제가 되는 '바우하우스'에서 영감

a

양혜규 I '상자에 가둔 발레_소리 나는 인물(활달한 스트레쳐)' 2013-2015 ⓒ 김형순


다시 2층 전시장 왼쪽을 보면 '상자에 가둔 발레_소리 나는 인물' 연작이 보인다. 우아한 발레 춤을 황금색으로 빛나는 놋쇠방울로 만들었다. 화려한 의상은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라 특이해 보인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바우하우스' 전에서 본 바로 그 춤과 그 의상이다.

이런 모습은 100년 전 바우하우스출신인 '오스카 슐레머'가 몸을 해방시키는 개념으로 발명한 발레 의상이다. 20세기 초에 일어난 바우하우스 운동은 나치의 박해로 미국으로 건너가 향후 백년 서구의 가구, 건축, 미술, 패션, 디자인, 무대장치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나치가 정권을 잡으면서 철저하게 유린된다.

'소리 나는 인물들' 사이로 선풍기가 5분 간격으로 돌아 놋쇠방울에 소리를 내게 한다. 마치 주술 효과를 내듯 사람들 마음을 다듬어준다. 이 발레 연작의 부제도 '요염한 것, 활달한 것, 납작한 것' 등으로 위트 있게 붙였다. 그 모습이 어떤 것은 서 있는 형상이고 또 어떤 것은 하늘로 향하고 있는 등 이채롭다.

이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게 저도 바우하우스(W. 그로피우스가 1919년 바이마르에서 설립) 공부하면서 알게 됐지만 바이마르는 지금 베를린처럼 당시 중심 도시였어요. 그 배경을 알게 되면 안타깝고 눈물겨워요. 이들이 품은 이상향과 래디컬한 실험과 진보적 건축 그리고 때로는 엉뚱한 인형극까지 지금 보면 다 빛나 보이지만 당시 나치 당국은 이런 축제 주의자들을 볼썽사납게 봤고 그래서 완전히 추방시켰죠."

서울 사람 근성, '광원조각'으로 의인화

a

양혜규 I '서울근성_약장수' 200×100×90cm 행거, 바퀴, 전구, 전선, 끈, 밧줄, 방울, 말린 인삼과 마늘, 금속 고리, 밧줄, 약통, 플라스틱 과일, 안마기, 계수기 2010 ⓒ 김형순


이번에는 양혜규가 2010년 서울에 3개월 정도 살면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서울 사람의 '근성'을 다양한 전구와 전선으로 만든 '광원조각'으로 시각화한 작품을 보자.

여기서는 서울 사람의 민낯을 볼 수 있다. 행거 위에 의료기구, 약통, 인삼 뿌리가 보이고 핸드폰 고리에 다는 울긋불긋한 장식 액세서리 또 다양한 화장품도 보이는데 이건 다 서울사람의 건강과 외모에 대한 집착 그리고 당시 서울 사람 대다수가 핸드폰에 붙이도 다니는 현상을 희화시켜 작품화했다.

작가도 이에 대해 "저도 이걸 어디서 구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각설이 작업이에요. 거기에 온갖 잡동사니 다 들어있는데 저는 이걸 쇼핑이라고 하고 헌팅이라고도 불러요. 그 재료가 다양하긴 한데 극도로 하찮고 미미한 거예요"라고 설명한다.

'느슨한 이웃, 보이지 않는 공동체' 회복

a

양혜규 I 'VIP학생회' 대여한 의자와 탁자 가변 크기 2001-2015 ⓒ 김형순


위 작품은 2001년에 시작한 양혜규의 공동체의 염원을 보여주는 개념 작품으로 백남준의 키워드인 '참여와 소통'도 연상시킨다. 리움미술관 태현선 수석큐레이터는 이 작품의 주제를 "보이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작가의 염원"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60년대 농경사회나 70년대 산업시대나 모두 나름의 공동체가 있었는데 이젠 그 종적을 다 감춰버렸다. 작가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장소와 시간과 거리에 구애를 받지 않는 '유비쿼터스' 공동체를 꿈꾼다.

작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리움미술관에 부탁해 주한외국대사나 미술인 등 사회 각 분야의 알려진 인사들에게 공문을 보내 의자나 탁자의 기부 여부를 묻고 흔쾌히 수용한 사람들 걸 픽업해와 모았다. 관객이 여기 전시장 의자에 앉아 쉬게 되면 그게 바로 이 작품이 완성되는 일종의 개념미술이다.

의자라는 매개로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작가와 기물 기부자, 관객이란 가상 공동체가 생기면서 익명의 이웃과도 만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프랑스 철학자 '장-뤽 낭시'가 말하는 '무위의 공동체'인가 보다.

'금력'도 압도하는 '상상력'의 힘

a

양혜규 I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_신용양호자 #240' 보안무늬 편지봉투, 모눈종이, 색종이, 액자, 비닐 시트 21점, 920×775cm 2015. 양혜규 I '정지(井址, 우물터) 괴목 밤나무 느티나무 바둑판 은행나무 바퀴 157×155×115cm 2015 ⓒ 김형순


끝으로 이번 전시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작품명이 등장한다. 바로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자춤_신용양호자'다. 여기에는 코끼리 대신 춤추는 사자가 나온다. 중국 사자춤에서 형상을 따온 것이다. 이 사자 토템에는 보안봉투로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의 '감시와 처벌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여기 사자토템의 별명이 '신용양호자'다. 자본주의에서 신용양호자라면 승자다. 그렇다면 이 토템은 자본의 신과 싸워 이겼다는 말인가. 위 괴목 같은 그런 괴력은 어디서 나오나.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보기에 상상력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번 전시의 모티브가 '로맹 갈리'의 소설 속 인물 '모렐'이 나치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태에서 '코끼리'만을 상상하며 그 역경을 이겨냈듯 작가에게 인류의 구원은 금력이 아니라 상상력에서 온다는 말인지도. 작가는 여기서 우리를 지배하는 '자본의 신'과 '상상력의 신'을 서로 싸움 붙이고 '누가 이기나'를 구경하는 모양새다. 

a

2015년 2월 9일 리움미술관에서 인터뷰 중인 양혜규 작가 ⓒ 김형순

- 한국에서 전시한 지 10년, 이전과 이후 이번 전시와 차이는?
"한국에서 첫 전시는 미술관이 아닌 폐가(廢家)인 인천 <사동 30번지>에서 열었죠. 제가 젊은 작가로서 1년 반 쉬다가 컴백한 전시라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이 양혜규라는 작가를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이잖아요. 10년 전과 지금 물론 차이가 많죠. 그동안 상황도 바뀌고 관심도 달라지고 국내외 많은 전시를 하면서 작품과 아이디어가 축적되었고요.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매번 전시 때마다 제대로 '끝장'을 보려고 해요"

- 이번 '리움' 전을 준비하면서 느낀 소감은? 
"리움미술관을 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저한테는 이 정도의 규모의 전시가 사실 필요했어요.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면 풍부함도 안정감도 동반되고요, 차분하게 어떤 이슈나 캐치프레이즈에 구애 없이 한 작가의 개인전을 실어줄 수 있잖아요.

그럼에도 사실 서울시내에 제 생각을 충족시킬 만한 전시장이 그리 많지 않아요. 그 많은 전시장 중에 전시할 곳이 없다니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전 그래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큰 전시 공간이 제공되어 다행이에요. 사실 전시란 신작을 발표하는 건데 미술이 어렵다는 이유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가 재단되죠. 저도 예외가 아니에요."

- 설치작가로서 즐기는 전시 공간 사용법은? 
"제 기조는 매번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부분 경우 저는 원래 공간상태를 그대로 활용하려 해요. '베니스비엔날레'에도 그랬고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미술관' 전시에도 그랬고요. 대부분 경우 큰 전시장은 건축가가 생각을 가지고 설계한 것이라 그 의도를 읽어보려고 했어요. 그 안에는 지형이라든가 장소라든가 이미 한 번 소화한 흔적과 의미 구조가 들어있기 때문에 일단은 긍정적으로 건축을 읽어보죠. 리움의 아래층 '그라운드 갤러리'는 특이한 공간이죠. 이 어마어마한 공간이 위층 '블랙박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양이에요. 이번에 전시장 창문은 다 열어놓았어요. 제가 즐기는 공간사용법은 건축의 원상태 살리는 거예요."

- 조어능력이 탁월하신데 제목에 '코끼리'가 왜 들어갔죠? 
"처음 해본 건데 전시장 입구 기호인지 문자인지 그림인지 알 수 없는 코끼리 '상(象)'자 참 예쁘죠. 앞뒤좌우 4개로 재구성되어 붙어있어요. '정진영' 디자이너와 같이 이'상'자를 만화경처럼 비춰보면서 거기에 풍부한 개념과 의미와 은유가 들어가게 해 보려고 했어요. 코끼리 '상(像)'자에 사람 '인(人)' 자가 들어가면 상상력 할 때 '상(像)' 자가 되죠. 그러니까 이번 전시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상상력공장'이 되는 셈이죠."

a

양혜규 I '바람에는 팔이 없다' 2015. 쌀, 꿀, 소금, 설탕 등이 필수품인데 평소 주목을 못 끈다는 점을 보여준다 ⓒ 김형순

- 주변 하찮은 것이 다르게 보일 때가 언제죠?
"제가 라디에이터를 보고 '낮은 곳에 따뜻함을 전하는 장치'라고 했던가요. 그건 제 경향이자 성향이고 취향이죠. 미술가란 남에 앞서 먼저 낯설게, 다르게 보는 통찰력이 있어야죠."

- 존재감 없는 것에 주목하는 건 상실감이나 소외의 최소화?
"'서울근성'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재료가 허접하고 싸구려죠. 그런 허투룬 걸 보면 저도 민망하죠. 제게는 양가적이고 대조적인 면이 있어요. 인천 폐가에서 연 <사동 30번지>처럼 이번에도 리움미술관 주차장에 '바람에는 팔이 없다'라는 작품을 외부 전시로 설치했어요. 관객이 못 볼 수 있다는 걸 각오하고 있어요."

- 작품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시대를 넘어서는 것이라 했는데?
"전 이번에 보편성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질문과 결부돼요. 이건 제가 자주 쓰는 말인데요. 지금 우리 시대의 보편적 현상은 시대가 요구한다기보다는 그냥 뭔가 엄연하게 그리고 무한하게 흐르고 있잖아요. 일개 개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시대가 다 양가적으로 물고 물리며 상통되는 이야기 아닐까요."

- 어느 인터뷰에서 '고뇌나 고통(agony)'이 작가 생활을 유지시키는 비밀병기라고 하셨는데?
"작가에게는 고통이란 필수불가결하죠. 우리에게 확대시켜 적용해야 할 것도 많고요. 또 소위 우리가 정상이 아닌 미쳐버린 상태가 되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물론 그런 걸 다 경험하면 저 좋지만요."

- 베를린 생활은 어떤지? 
"저는 독일에서 체류증을 받고 살지만 제가 독일 팬은 아니에요. 독일을 잘 모르고 독일에 대해서 무심한 편이죠. 예상 밖으로 서울에서 하는 불평·불만 못지않고 독일에서도 많은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살아요."

덧붙이는 글 월요일 휴관 [전시기간]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0:30-18:00(매표마감 17:30)
[전시설명] 평일: 11시 13시 15시, 주말(토, 일) 오후 2시(영어)
리움 미술관 전시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아래 홈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leeum.samsungfoundation.org/html/exhibition/main_view.asp
#양혜규 #블라인드 연작 #로맹 가리 #바우하우스 #리움미술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