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아닌 보편급식, 보편복지

등록 2015.03.14 15:22수정 2015.03.14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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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을 폐지하기로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새누리당도 지난 4년간 실시되어왔던 무상급식을 폐지하기 위해 손을 걷고 나섰다. 부유한 집 아이들에게 공짜밥을 먹여주는 불합리한 일에 나라 돈을 쏟아붓다 보니 재정에 구멍이 생겼고, 따라서 부족한 재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이다.

과연 아이들 급식 때문에 국가 재정이 파탄나게 된 것인지, 그리고 모자란 재정을 메꾸는 방법이 아이들 급식을 중단하는 것 외에는 없는 것인지는 홍 지사와 여당 정치인들이 먼저 밝혀야 할 것이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느라 돈이 없으니 이제 그만 먹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방정부를 운영해야 할 책임을 진 사람이, 그리고 국가의 운영을 담당하는 인사들이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너희들 밥 먹이느라 집안에 돈이 떨어졌으니 이제 자기가 제일 배고프다는 것을 증명하는 아이에게만 밥을 주겠다고 윽박지르는 가장의 모습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집안 꼴이 그 모양이 되었다면, 가장이 먼저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지 식구들을 겁박할 일이 아니다.

경남도의 사태로 인해 학교급식 문제가 다시 쟁점화되고 있는데, 기왕 이렇게 된 마당에 지금까지 학교급식을 가리켜 '무상'급식이라고 부르던 그간의 관행을 바로잡았으면 한다.

무상급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마치 그것이 공짜밥이라는 듯한, 그래서 누군가의 시혜로 인해 가능하게 된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는 밥은 누군가의 동정심에 근거한 자선사업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고 노동하면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관리하고 운영하게 하려고 우리가 낸 세금에서 나온 것이다.

학교급식은 결코 공짜 점심이 아니다. 무상급식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가 잘못된 프레임 위에 놓여져 있다. 정치는 본래 프레임이라고 하지 않던가. 학교급식을 가리켜 '무상'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한 홍준표 지사와 같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원래 공짜라는 프레임 말이다.

대신에 이제 '의무급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마치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이 국민들을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는 것을 드러내듯, 의무교육의 현장에서 주어지는 급식은 역시 의무급식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지급한 세금으로 편안히 한 끼를 해결하도록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나도록 해 보자.


아니면 '보편급식'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학교급식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이들을 보편적으로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즉 이제 우리사회가 지향해 나가야 할 '보편적' 복지국가의 전망을 담고 있는 '보편급식' 말이다.

지금 경남도와 새누리당이 그간 별 탈 없이 운영되어 오던 보편급식을 폐지하려고 나서는 것은 경남도의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시민들이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거나, 경남도민 안 됐다는 식으로 조롱하고 말 일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학교급식을 전국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불씨를 지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서 보편급식은 우리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대단히 위험한 '좌파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밥값을 가지고 이들이 이렇게 소란을 벌이는 것은 그 아래에 내재한 이유가 있다.

이 일은 앞으로 한국사회가 '보편적' 복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소위 극단적 시장 중심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이들이 말하는 '선별적' 복지 즉 '차별적' '비복지'로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극단적 시장주의자들에게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던 '보편급식'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할 악폐일 것이다. 왜냐하면, 보편급식은 사회의 모든 이들이 서로를 보편적으로 돌보는 보편복지의 모습을 아이들이 학교에서 미리 경험하게 하는 대단히 위험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향후 우리가 보다 서로를 잘 돌보기 위해 보다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논의를 야기시킬 수도 있으며,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서 직접세 및 누진세 비율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요구들을 촉발시킬 도화선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금 촉발된 학교급식 문제를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로 확대 발전시키지 못하고, 단지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줘야 한다는 식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부족한 재정을 건실화하고, 국민의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애초 약속했던 대로 복지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필요한 세수를 확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공짜밥을 줘야 하냐는 그럴싸한 수사는 오히려 가진 자와 가난한 자를 분리시키고, 그들 사이에 거리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단히 반사회적인 언사이다. 나는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얼마든지 내가 낸 세금으로 밥을 먹여줄 의사가 있다. 그래서 있는 집 아이와 없는 집 아이들이 서로의 집안 형편과 관계없이 식탁 교제를 나누고, 우정을 쌓고,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 더더욱 세금을 더 낼 의사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이상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고, 그래서 우리 사회가 그간 강화되어 왔던 서로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서로를 돌보아주는 진정한 선진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면, 내 세금으로 이건희 회장 손자를 먹이는 게 도대체 뭐가 아깝겠는가. 보편급식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것이다.

보편급식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고전적인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오병이어의 이야기이다. 예수께서 어린 아이가 가져다 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것이 그 대강의 줄거리이다.

예수는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다녔는데 그 수가 남자만 5천 명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저녁 때가 되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예수의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 마음에 작은 아이 하나가 화답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든 자기 도시락을 예수에게 건네준 것이다.

그걸 본 제자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예수는 보란 듯이 그 작은 재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한 끼 식사를 마련해 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부족한 양을 나누어 함께 식사했더니 남은 것을 12개나 되는 광주리에 모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성서는 오늘 우리에게 도전한다. 해 보라! 돈이 없다고 탓하지 말고, 없는 것을 나눠 쓰면 더 많이 남게 된다. 결국 사람을 향한 마음이 먼저다. 사람을 돌보는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보편급식이 그 시작점이다.
#무상급식 #보편급식 #보편적 복지 #오병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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