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창자 썩겠네... 미치겠습니다"

대구 촌놈의 좌충우돌 첫 책 출간기(12) 인쇄 사고에 대하여

등록 2015.03.17 13:25수정 2015.03.1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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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쓰이기까지 11부의 앞선 연재글이 있었다. 그간 걸어온 길을 잠시 짚어보자. 책 제작과 관련한 일들은 일련의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이뤄진다.


제작제안서 작성하기 -> 초판 제작부수를 결정 -> 인쇄업체를 선정 -> 표지, 본문, 면지, 종이규격, 종이결, 절수와 대수 결정 -> 종이소요량 계산 -> 감리 -> 라미네이팅 및 후가공 처리 -> 제책 작업 (제본작업), 띠지 작업 -> 인쇄사고 대비 -> 가제본(샘플북) ->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 -> 서지정보를 작성 -> 서점과 신규거래 계약 맺기, 서점 MD와의 미팅 ->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 책 홍보 및 지속적인 영업.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런데 저 코스를 근사한 레스토랑 정식 풀 코스라고 생각해보자. 사실 저 코스 앞에는 작가 섭외 원고 기획, 소비자 욕구 분석 등의 애피타이저가 있다. 그리고 저 메인코스를 제대로 밟고 나면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라는 달콤한 디저트가 나올 테다. 메인 코스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나와 우리 팀원들은 쉐프가 되어 코스마다 혼을 넣었다.

책이 나와도 우리는 정말 바쁘게 움직인다. 강 팀장이 갑자기 코를 풀었다. 응어리진 피가 묻어나온다.

"강 팀장, 코에 피 나온다. 이거 머꼬?"

김승범 팀장이 호들갑을 떤다.


"아, 아까 코를 후벼 파다가 머가 걸렸는지 혈관이 터졌나 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코를 부여잡은 강 팀장이 모두를 안심시키려는 듯 대답한다. 차로 한 시간이나 달려 대구대 캠퍼스에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캠퍼스를 돌며 포스터를 붙이던 때였다. 차 안에서 책을 요리조리 살피던 김 디자이너의 인상이 굳어지더니 똥 씹는 표정을 짓는다.

"와카노, 인상이 와그라노(왜그렇니의 대구 사투리)? 머 어디 불편하나?"

마케팅 계획을 점검하고 있던 내 앞에서 김 디자이너가 깊은 한숨을 푹푹 몰아쉰다. 차 안이다. 차 안. 금방 분명 양치했는데도 창자가 썩는 냄새가 난다. 고생이 많군. 김 디자이너.

"진짜 창자 썩겠네. 미치겠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라이센스로 구입한 Y서체로 폰트를 집어 넣었는데, 바깥에 야(이것이의 대구사투리, 김 디자이너는 사물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음) 폰트가 다른디유?"

"머?! 폰트가 달라? 이거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폰트가 다르면 우짜노. 빨리 확인해서 폰트 알아보고 문제 없게 조치하세요. 강 팀장, 옆에 잠시 차 세워봐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김 디자이너는 인쇄소의 김 부장님과 통화한다. 손짓 발짓하는 것을 보니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가 보다.

"대표님, 인쇄 과정에서 그게 폰트가 잘 못 들어가가 그 폰트로 되었다는데유? 그래가(그래서의 대구사투리) 폰트를 알아보니 A폰트던데 구입 비용이 100만 원정도 더 든다고 합니다. 우짤까유?"

좌심방 좌심실의 혈액이 머리의 전두전야와 편도체에 동시에 폭풍 흡입된다. 스포츠카 자동차의 엑셀을 힘껏 밟아 엔진에 가솔린이 들어차고 있는 느낌. 분노의 호르몬이 튀어 나올 입질이 온다. 심호흡을 하자. 추현호.

"김 디자이너, 하나하나 일할 때 체크를 잘 해야 되요. 이번 건은 우리 과실이 아닌 인쇄소 과실이니 김 부장님께 폰트 구입 건에 대해서 이쪽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남 앞에 싫은 말을 하는 걸 꺼리는 김 디자이너는 이 상황을 어찌되었든 모면하려고 요리조리 눈을 돌린다. 3년 전 미국에서 함께 유학할 때, 스포츠센터에서 회원비 관련 부당한 일을 당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스스로 피해를 당연하다는 듯이 감내하려는 김 디자이너에게 제대로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부당함에 정당함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한 사업가의 자질이기 때문이다. 갈등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스킬이다.

다시 나가서 전화하는 김 디자이너. 내 창자도 썩는다.

"대표님, 다 해결 했심더. 김 부장님이 이번에 폰트 구입을 지원해준다고 합니다. 다음 부턴 이런 실수가 발생치 않도록 더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그래요. 거래처 관리는 영업맨만 하는 게 아니고 제작 부서는 인쇄소와 마케팅 부서는 서점과 모두 해야 하는 일이에요. 다음에 파주에 가면 김 부장님과 순대국밥 한그릇 드시면서 서운함 없게 잘 처리해 주세요."
"네, 그렇게 할게유."

이런 일이 인쇄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인쇄 사고시에는 출판사와 인쇄소가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작시에 사고가 발생치 않도록 명확히 주문을 넣는 것.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대처이다.

오랜동안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생각한 무언가가 정확히 시장에서 호응을 이끌어낼 때, 기획자와 비즈니스 제공자는 황홀한 기분이 든다.

리더는 항상 팀원들이 한 곳을 향해 정렬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출판사도 하나의 사업체다. 모든 사업체의 운명은 창업해서 폐업하기까지의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다.

이제 김영주 팀장님의 영남대학교 신입생 2500명 앞에서의 강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인쇄사고 #폰트 #책 출간 #출판사 #출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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