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가야 할 길... 노무현이냐 박근혜냐

[取중眞담] 또 한번 여론에 밀린 '의원 정수 400명' 발언

등록 2015.04.08 15:47수정 2015.04.08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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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문재인'.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 검색창에 그 이름을 쳐본다. 4.29재보궐선거, 정동영, 세월호 등 최근 이슈가 되는 각종 뉴스 키워드를 많이 검색하지만 야당 출입기자로서 '문재인'을 가장 많이 찾아볼 수밖에 없다. 그는 현재 제1야당의 당 대표이고,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다. 그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뉴스가 되기 때문에 소홀할 수가 없다.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아래 새정치연합)의 '2015 다함께 정책엑스포'가 개막됐다. '정당 사상 최초'의 행사라고 홍보에 열을 올릴 만큼 당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다. 첫날 가장 주목 받은 일정은 오후에 예정돼 있던 문 대표의 '기조연설'이었다. 물론 오전에도 개막 테이프 커팅 행사가 있었지만, 많은 기자들은 "석간신문 사진을 위한 행사"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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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증인 채택문제로 공전을 거듭하고 국회 자원외교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출석을 압박했다. ⓒ 남소연


월요일 오전은 아침회의에서 쏟아진 정치인들의 발언이 기사화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문 대표는 "해외자원개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갈테니, 이명박 전 대통령도 나오라"고 말했다. 청문회가 무산되고 특위 활동이 사실상 종료되기 하루 전에 나온 전격적인 발언이었기 때문에 기사가 쏟아졌다. 당연히 문 대표가 참여한 개막 테이프 커팅 행사에는 그리 많은 기자가 몰리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돼서야 행사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문재인 "국회의원 400명은 돼야"'라는 기사제목을 보고 동공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관련기사 : 문재인 '의원 정수 400명' 발언했다가 급히 진화). 기사 내용은 행사에 참석한 문 대표가 적정 의원 정수를 묻는 스티커 설문에 '351명 이상'을 선택했고, "몇 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400명은 돼야 한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날 오후에 예정돼 있던 그의 '기조연설'에 관심이 증폭됐다. 청문회 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이 전 대통령의 출석까지 요구하고, 의원정수 의제까지 던졌다면 그날 저녁 뉴스와 다음날 조간신문의 주인공은 문 대표가 분명해 보였다.

새정치연합 "대표 의사 전달됐는데 더 언급할 필요 있나?"


그러나 이후 상황은 아주 황당하게 전개됐다. 오전 문 대표의 발언을 가지고 기사를 쓰려고 할 때, 문 대표의 발언을 기사화 하지 말아달라는 당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기사를 쓰지 않을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기조연설에서 문 대표의 추가 발언까지 확인해 기사를 쓰기로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그에게 기자들이 오전 발언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 의원정수가 400명이 적당하다고 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의 퍼포먼스(스티커설문을 두고 한 말)였으니까 제가 가볍게 그렇게 한 겁니다. 의원정수에 관한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데, 오늘 그 말씀을 드리면 정책엑스포에서 관심들이 넘어가게 되니까 다음에 더 준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오늘 하신 것도 '정책엑스포'의 일환이지 않나요?
"오늘은 간략하게, 가볍게, 장난스럽게 한 거고요. 허허(웃음). 나중에 한 번 따로 말씀 드릴게요."

문 대표는 순식간에 자신의 발언을 '장난'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유는 두 가지다. 당에서 준비한 큰 행사가 자신의 발언에 묻혀 주목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첫 번째고,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국민들이 가지는 반감 때문이다. 관련 기사에는 수많은 비판 댓글이 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국회의원의 정수 관련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현행 300명을 유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80%를 넘었다.

이후에도 당에서는 문 대표의 발언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김성수 대변인은 "400명이라는 숫자는 문 대표가 깊이 생각을 정리해서 한 말은 아닌 것 같다"며 "의원 정수 문제를 당론으로 정한 것도 아니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한 것도 아니다. 정개특위 차원에서 논의돼야하고 당론으로 정하려면 좀 더 복잡한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보면, 문 대표는 개인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이유는 정당명부 비례대표(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여성 30% 할당 등 정치개혁과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당 내부에서도 의견이 정리되지 않았고, 또 당 대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문 대표의 발언도 이러한 정황을 잘 정리해 설명했으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은 그 발언을 주워 담기에 바빴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기사가 많이 나올텐데, 그 취지나 배경을 잘 설명하는 게 좋지 않았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표의 의사가 전달이 됐는데 논란이 되는 걸 우리가 굳이 더 언급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당이 여론에 밀려 대표의 발언을 사실상 철회시킨 것이다.

'박근혜의 길'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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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새정치 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대표 회동에서 인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대표와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수차례 여론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선거 정당공천 실시 여부를 여론조사로 결정했다. 당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는 두 세력의 통합 명분이었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문 대표는 최근 이완구 국무총리의 인준안을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가 의회정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일자 발을 뺐다.

이번에도 자신의 발언을 '장난'으로 돌리면서 유력한 차기대권주자이자 제1야당 대표로서 발언의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새누리당은 이를 놓치지 않고 "장난스럽게 말한 거라고 해서 실소를 금할 수 없다"고 공격했고, 당 내에서도 대표의 메시지 관리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정치인이 잘못된 말을 하게 되면 사과하고 철회하는 것도 큰 용기다. 그러나 이번 문 대표 발언의 경우, 자신의 소신이라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잘못된 발언이라고 사과한 것도 아니다.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정치를 계속한다면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 일이다.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자신의 뜻을 명확히 하고 그것에 반대하는 대중을 설득하는 게 정치일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정수 문제는 결코 쉽게 논할 사안은 아니다.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자질을 따지고 활동량을 논하는 것과 국회의원 정수를 정하는 문제는 분리돼야 한다. 의원 숫자를 줄인다고 해서 그들의 권력이 줄지 않는다. 국회는 헌법에서 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의원 숫자가 준다면 그 권한을 더 소수의 사람들이 나눠 가지게 된다. 권력은 나누는 사람이 많을수록 약화된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줄여 단 한 사람이 가지게 된다며 그게 바로 독재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하자는 말도 현재의 국회의원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렇게 될 경우 국회의원은 '돈 있는 자'들만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표는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가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 별다른 이슈를 던지지 않고도 각종 선거에 승리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대선 지지율 1위를 유지하며 결국 당선됐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되면 그 길 역시 박 대통령과 비슷한 길이 될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달랐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지방분권이라는 이슈를 제시했다. 그를 평가하는 여러 가지 관점을 떠나서 노 전 대통령은 항상 이슈를 만들고 그 중심에 있었다. 결국 그 힘을 바탕으로 대선에 승리했다. 문 대표가 진정 대권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가 따라야 할 길은 박근혜의 길이 아닌, 노무현의 길이다.
#문재인 #400명 #의원 정수 #박근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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