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 생명의 소중함 잊은 게 문제"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219] 김지방 한국기자협회 조사연구분과 위원장

등록 2015.04.13 15:30수정 2015.04.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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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서 한국 언론은 '기레기'를 넘어 '흡혈귀'라는 말까지 들었다. 곳곳에서 반성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후 1년이 지난 지금, 한국 언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짚어보기 위해 3부에 걸쳐 언론계 종사자들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 기자 말

세월호 참사 초기, 진도 팽목항에서는 기자들이 실종자 가족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고  카메라가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 당시 언론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다. 또, 몇 몇 대안 언론과 SNS를 통해 세월호 보도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다.

이에 언론계에서는 '재난보도준칙'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단체 15곳이 모여 지난해 9월 '재난보도준칙'을 제정했다. 세월호 1년이 지난 현재, 언론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지난해 재난보도 준칙 제정에 참여한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한국기자협회 조사연구분과 위원장을 지난 6일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다음은 김지방 한국기자협회 조사연구분과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바꾸자'란 자각이 일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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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 이영광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지난 1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제가 평가할 위치는 아니지만, 사회 현상을 지켜본 언론인으로서 얘기하면, 첫째 깊이 애도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왜냐하면 큰 참사 뒤 이런저런 의혹과 문제점을 제기하면 조사하고 보완하고 해명하는 일이 당연한데, 정권 차원의 문제로 직결되면서 굉장히 민감해졌죠. 그러니 참사의 참혹함을 거론하는 것, 그 슬픔을 한탄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색깔이 있는 것처럼 돼버려서... 슬픔을 쏟아 놓지 못하니 슬픔이 계속 우리 가슴에 고여 있지요.

둘째,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대하면서 모든 것을 권력과 돈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즉, 근본적인 반성이 여전히 안 이뤄진 것이죠. 이 정도로 큰 사건이 터지면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바꾸자'란 자각이 일어나야 합니다.


보상금이 얼마 운운하는 발표가 나온 것도 마찬가지죠.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문제 그리고 이 문제를 권력의 문제로 보고, 돈의 문제로 몰고 가려는 것도 문제인 것 같아요. 국가 권력의 안위를 국민 생명의 안위보다 더 우선시한 때문이죠. 여전히 그 차원에서 사태가 진행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거죠. 비단 정치권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세월호 참사를 이런 식으로 '소비'하고 있어요."

- 세월호 참사로 인해 우리 사회 갖가지 문제가 드러났어요. 그중에 언론문제가 심각해서 '기레기'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는데, 1년이 지난 지금 언론은 달라졌다고 보세요?
"정말,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었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에는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는 반성도 많이 나왔지만, 정작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고 봐요. 하지만 조그만 변화의 조짐은 분명히 있었어요. 반성 혹은 변명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지점을 짚어보고 싶어요.

먼저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죠. 2003년에 대구에서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어요. 그때 (언론이) 비판받은 이유는 사태 수습에는 나서지 않고 '나쁜 놈 만들어 두들겨 패는데 열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론의 모습이) '너무 정치적이다, 잘못됐다'는 비판이 일었죠. 또 2008년 최진실씨가 사망했을 때 언론의 보도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죠. '언론이 장례식장에 진을 치면서, 유족이나 조문객들의 모습을 생중계하다시피 자세히 내보내서 너무 자극적이다'라는 비판이 있었죠.

세월호 참사의 경우, 초기 구조활동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비판을 받았어요. 사실은 앞서 비판을 받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취재에 나섰다가 바다 위에서 이뤄지는 구조활동에 방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측면도 있었죠. 또한 유족의 입장에 대해서 소상히 보도하지 못한 것도 유족의 인권, 초상권, 이런 것을 강조하니까 (언론들이)소극적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번에는 오히려 그런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죠.

유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측면도 있었는데, 거꾸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은 신중하게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보도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기레기'라는 지적을 받아 당황했고, '그럼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에 답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가 세월호 보도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이 있었어요. 거대 미디어, 기성 미디어가 실패한 지점에서 대안 미디어들과 SNS가 주목받았죠. 물론 SNS 같은 경우에는 폐해도 적지 않았지만, 기성 미디어가 관성에서 못 벗어나고 헤맬 때에 새로운 미디어들이 더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저널리즘의 미래를 생각할 때에 이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한겨레>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연과 박재동 화백의 그림을 1면에 연속으로 보도한 기획기사도 의미 있는 보도였습니다."

- 언론들이 조심스럽게 취재를 했다고 했는데, 참사 초기 목포 MBC에서 전원구조가 아니라고 보고했음에도 이것이 묵살됐고, 생존 학생들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인터뷰를 하거나, 보험금을 언급한 보도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월호 보도 당시 언론에는 취재의 문제와 보도의 문제가 있었죠. 그중 취재 문제는 현장에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거죠. 재난 현장 취재에 미숙했다고나 할까요. 유가족의 목소리는 신뢰하지 않고 정부의 발표만 믿었던 게 그런 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목포MBC의 보고가 묵살된 경위는 취재와 보도의 중간에 있는데 그게 정치권의 주문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판단의 착오인지는 좀 더 명확히 가려봐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심각한 거죠.

생존 학생에게 마이크를 들이댄 것은 JTBC였지요? 큰 참사 현장을 보도할 때, 그런 문제가 툭툭 불거져 나옵니다. 그런 점도 문제지만, 더 크게 봤을 때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이 이번에는 결정적인 문제였죠.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과거의 비판 때문에 지나치게 신중하거나 위축된 결과로 보입니다."

-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체육관에 갔을 때 유가족이 항의하는 목소리는 빼고 박수 치는 모습만 보여준다거나 잠수사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유가족의 조급증 때문이라고 왜곡 보도했던 문제도 있었는데.
"그런 점이 바로 보도의 문제인데요, 취재 현장의 문제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가장 큰 문제점을 놓친 것이라면 보도의 문제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본 거죠.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고 하고, 국가정보원이 석연치 않게 개입돼 있죠. 더구나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처참할 정도로 무능한 행정력, 이런 문제를 전혀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거죠."

- 많은 언론인은 그 당시 언론 문제로 정권의 언론 장악을 꼽았고, 실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폭로 있었는데...
"큰 방향에서 당시 세월호 참사에 대해 왜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지, 행정이나 정부의 문제는 뭐였는지에 대해 더 추궁하지 못하고 유병언만 쫓은 건 권력의 눈치를 본 측면이 있죠. 그러나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게 본질이라면 정치적인 이슈밖에 안 되죠."

- 그럼 본질은 뭐라고 보세요?
"앞에도 말씀드렸지만, 언론이 생명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거죠.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상업적인 보도를 하는데 더 열중했지 생명의 소중함을 전달하고 그 비극을 애도하는 데에는 소극적이었지요.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정치나 상업성에 더 치우칠 수밖에 없어요. 미디어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정치권력이 권위를 앞세우는 상황에서 언론이 언론의 본령을 놓쳐버린 것이 본질입니다."

"사실 현장 기자보다 데스크에게 이런 준칙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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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방 <극민일보> 기자. ⓒ 이영광


- 지난해 기자협회에서는 재난보도 준칙을 제정했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제가 기자협회에서 조사연구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어서 준칙 제정에 참여했거든요. 당시 '기레기'라는 비난이 많아서 '변명하거나 침묵할 게 아니라 실제로 취재보도 현장에서 뭐가 바뀌어야 하는지 논의를 하자'는 취지에서 한국기자협회가 가장 먼저 재난보도 가이드 라인을 긴급하게 발표했죠. 또, 좀 더 내용과 형식을 갖춘 재난보도 지침을 마련하자고 나섰어요. 여기에 다른 언론단체들도 동참하면서 제정됐지요.

사실 그 전에도 재난보도에 관한 어떤 가이드라인 같은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고 논의도 있었어요. 대구 지하철 참사 때에 이런 논의가 있었는데 문안을 만들어보는 단계에 머물렀고요. 그 뒤로 방송 쪽에서는 일본 NHK나 영국 BBC의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원용해서 나름대로 방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레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뭔가 해보자'는 차원에서 좀 더 진전이 이뤄졌지요."

-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가장 중요한 게 '현장에서 보고한 걸 중심으로 보도하고 현장에서는 지나치게 취재경쟁을 벌이지 말고, 현장 데스크들이 연합해서 공동으로 협조하자'는 것이죠. 현장의 판단을 존중해서 보도하고, 현장에서는 인권과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며 협력하자는 취지입니다."

- 제정된 재난보도준칙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개그콘서트>식으로 말씀드리자면, '재난보도 준칙 만들었군. 끝' 정도예요. '이게 필요하다, 잘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서 과연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란 게 솔직한 반응이 아닐까 싶어요. 아마 큰 사건이 터지면 또 이런 준칙을 찾게 되겠지만, 지금은 크게 관심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또 준칙이 마련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에요. 왜냐면 재난보도 준칙이 가장 잘 돼 있다는 일본 NHK의 경우, 오히려 너무 준칙만 따라갈 뿐 진실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어요. 2011년 3·11 대지진의 경우 NHK는 보도준칙에 따라 유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과연 그게 맞느냐는 찬반 논란이 있었어요."

- 준칙 제정이 문제가 아니라 제정된 준칙을 기자들이 얼마나 숙지해서 재난이 일어났을 때 준칙대로 행동하느냐가 문제인데, 박종률 기자협회장은 보도준칙을 제정하면 언론재단과 연계해 기자교육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어떤가요?
"준칙을 만들 때도 '과연 이걸 만든다고 얼마나 지킬까, 아니 제대로 읽어보기나 할까. 그냥 한 번 만들고 사장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또, 사실 현장 기자보다 데스크에게 이런 준칙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이 어떤 태도로 문제에 접근하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보도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은 데스크니까요. 언론진흥재단의 수습기자 교육이나 재난보도 교육 프로그램에 준칙에 관한 교육도 포함돼야 한다고 봐요."

- 세월호 참사 후 기자들 또한 유가족 못지 않게 트라우마가 생겼다던데.
"기자협회에서 당시 취재 보도한 기자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유하는 데에 지원하기로 했어요. 그러나 치유 받는다고 얼마나 나을지도 모르겠고 '기레기'라고 욕먹는 상황에서 취재기자들의 트라우마를 말할 상황도 아니었죠. 각 언론사들이 취재한 기자들을 돌봐주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도 아직 미흡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준칙만으로 언론의 불신이 해소되진 않을 것 같은데 무엇이 필요할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상업적인 보도, 정치적인 파장을 우선시하는 보도 태도를 극복하고 생명의 가치,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이뤄져야 언론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돈 되는 보도, 정치적인 공방을 불러일으키는 보도가 좋은 보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보도를 해야 국민들이 언론을 신뢰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록,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지방 #세월호 #재난보도준칙 #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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