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양심, <양철북> 권터 그라스 타계

전범국 독일 죄의식과 불안함 통찰... 메르켈 "깊이 존경"

등록 2015.04.14 08:35수정 2015.04.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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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대문호 권터 그라스의 타계를 보도하는 BBC 뉴스 갈무리. ⓒ BBC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세계적 대문호 귄터 그라스가 타계했다.

AP,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권터 그라스 재단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그라스가 독일 항구도시 뤼베크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향년 87세.

소설 <양철북>으로 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널리 이름을 알린 그라스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며 독일의 전범 역사를 반성하고 성찰한 독일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양심으로 꼽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성명을 통해 "깊은 존경과 함께 그를 떠나보낸다"며 "그라스의 타계는 독일의 엄청난 손실"이라고 애도했다. 요하임 가우크 독일 대통령도 "그라스의 작품들은 독일의 영원한 문화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1927년 독일과 폴란드의 접경지역 단치히(폴란드 그단스크)에서 태어난 그라스는 세계 2차 대전 후 조각과 그래픽을 공부하다가 한 방송국에서 주최한 서정시 경연에서 입상하며 등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라스는 1957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양철북>을 발표했다. 고향인 단치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추락 사고로 성장이 멈춘 난쟁이 주인공 오스카의 시선을 통해 나치 정권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전후 독일 사회를 조명했다.

<양철북>은 1979년 영화로 제작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1999년 그라스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다. 그는 <양철북> 이후에도 <고양이와 쥐>(1961년), <개들의 시절>(1963년), <넙치>(1977년) 등 다양한 작품을 내놨다.


이처럼 그라스는 나치 정권과 2차 대전, 전후 사회 등을 배경으로 독일의 정체성 혼란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문학계는 독일 사회가 그라스의 작품을 통해 자성하며 과거를 반성하고 오늘날 다시 국제 사회의 존중을 받는 강대국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라스는 2007년 발표한 회고록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어린 10대 시절 2차 대전에 참전해 나치의 무장 친위대로 복무했던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며 큰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

나치에 부역한 사실은 지울 수 없는 데다 너무 늦게 고백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오히려 전쟁을 겪으며 얻은 죄의식이 그라스의 문학 세계를 아우르면서 현실적 고민을 정확하게 관통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반박도 적지 않다.

그라스는 현실 정치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2006년 베를린 국제펜클럽대회 연설에서 당시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를 "총과 성경을 들고 먼 나라까지 죽음을 나르는 성직자 같다"고 꼬집었다.

또한 유대인 학살의 죄로 이스라엘 비판이 금기였던 독일인이지만, 2012년 발표한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이라는 시에서 "이스라엘의 핵무장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강하게 반발하며 그라스의 입국을 금지했다.

무엇보다 그라스는 "독일 통일이 너무 급속하게 진행됐다"며 "통일을 너무 서두르고,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통일하면서 경제적 격차와 심리적 거기로 사회 통합이 더 느리고 어려워졌다"고 비판하는 등 남다른 지식인의 통찰력을 보여줬다.
#권터 그라스 #양철북 #노벨문학상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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