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는 쌀비'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네?

[포토에세이] 봄비에 옥상텃밭 새싹들이 삐죽삐죽

등록 2015.04.14 18:18수정 2015.04.1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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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갓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씨앗을 뿌리고 2주나 지난 후에야 겨우 새싹을 볼 수 있었다. 봄비에 한껏 싱싱하게 자라난 쑥갓이 싱그럽다. ⓒ 김민수


종일 봄비가 내립니다. 조금 쌀쌀하기도 하고, 피어난 봄꽃들은 봄비에 지기도 하지만, 가물었던 봄이었기에 봄비가 반갑습니다. 우리 집 옥상에는 20년 역사를 훌쩍 넘긴 옥상 텃밭이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님이 도맡아 가꾸시던 텃밭입니다.


몇 년 전부터 점점 규모를 줄이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규모기 완연히 작아지긴했지만 여전히 대를 이어 옥상텃밭은 진행형입니다.

작년엔 어머니의 코치를 받아가며 옥상텃밭을 가꿨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습니다. 이제 기억을 더듬어가며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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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적상추와 푸른상추 등이 뒤섞여 있다. 이제부터 열심히 솎아 먹어야 쌈으로 먹을 수 있는 큰 쌈도 얻을 수 있다. ⓒ 김민수


작년엔 시기를 잘 맞췄는지 흙이 좋았는지 씨앗을 뿌리고 이틀도 안 되어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퇴비와 깻묵 등을 섞은 흙이 문제인지 일주일이 지나도 싹이 올라오지 않다가 이주일이 지나서야 드문드문 비죽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영 부실합니다. 이유가 뭘까 살펴보니 화분 속 흙이 적당한 압력을 유지해서 물도 유지하고 뿌리도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어야 하는데 퇴비를 섞은 흙이 너무 부드러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미 씨앗이 뿌려져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고, 자주 마르는 화분이라 물을 열심히 주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새싹의 힘은 대단해서 한 번 올라오기 시작하니 우후죽순 올아옵니다. 이제 부지런히 솎아먹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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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옥상 텃밭에서 가장 잘 자라고 있는 것은 상추, 이미 모종을 내어 여기저기에 많이 심어놓기도 했다. 씨앗 중에서 가장 볼품없는 것 같더니만, 가장 실하게 잘 자란다. ⓒ 김민수


부지런히 솎아 먹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상추같은 것입니다. 빼곡하게 자라도록 두었다가는 실한 상추를 얻지 못합니다. 열심히 솎아 먹고, 적당히 간경을 주어 모종을 내주어야 쌈으로 먹을 정도로 큽니다. 모종을 낸 것과 서로 경쟁하며 빼곡하게 자라는 것은 일주일 어간이면 적어도 수십배에서 수백배 크기의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리 적게 심었어도 제대로 솎아 먹다보면 이웃과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버릴 수는 없는 일이고 혼자 다 먹을 수도 없으니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옥상 텃밭이 풍성해 지면 저희 집 식탁만 풍성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웃의 식탁도 풍성해 집니다. 그것이 텃밭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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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지난 겨울을 보내고 봄에 새싹을 낸 대파에 열린 파꽃몽우리, 올해는 나도 파씨를 받아서 뿌려봐야겠다. ⓒ 김민수


아무튼 삭을 내긴 냈으되 시름시름, 뭔가 부족한 듯한 옥상 텃밭은 어머니의 부재를 더욱 더 실감하게 했습니다.

옥상텃밭에는 봄에 삐죽거리며 추운 겨울을 내고 올라온 대파가 있습니다. 작년에 심었던 대파였으니,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마지막 대파입니다. 그래서 아끼며 두고 보았더니만 이렇게 파꽃몽우리를 냈습니다. 올 봄에 뿌린 것은 이제 막 싹이 나와 실파가 되어가는 중이고, 그걸 모종내어 옮기면 가을 쯤 대파가 되고, 그 대파가 노상에서 겨울을 나면 비로소 이렇게 파씨를 맺는 꽃몽우리를 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봄에 올라온 대파 덕분에 그 화분은 분갈이를 제대로 못했는데, 오히려 그게 그들에게 더 좋았나 봅니다. 올해는 파씨를 받아서 잘 두었다가 내년 봄에 뿌려야 겠습니다. 그렇게 파씨를 이어가면 어머니의 손길도 이어지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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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싹 심지는 않았지만 싹을 내었으니 길러봐야지 어쩌겠는가? 이것도 인연이 아닌가 싶다. ⓒ 김민수


어떤 경로를 거쳐 감자싹이 옥상 텃밭에까지 왔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떡 하니 화분 가운데 자리하고 자란 감자싹을 어찌할 수가 없지요. 그것도 생명인데 말입니다.

'봄비는 쌀비'라고 합니다. 봄에 내리는 비에 따라 풍년이 들기도 하고 흉년이 들기도 합니다. 봄에 비가 잘 내려 주면 풍년은 따놓은 것이니 '봄비는 쌀비'라는 말이 있겠지요. 문득, 봄비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 정도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난 식목일에 내린 봄비를 경제적인 수치로 환산한 내용을 보니 대략 1200억 원의 가치더군요. 일년에 내리는 비의 경제적인 가치는 대략 1조 2천억 원 정도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번 봄비는 지난 식목일보다 더 단비였으니, 적어도 1000억 원의 가치는 훌쩍 뛰어넘겠군요.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의 사회가 각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본의 사회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수치를 대조하면 훨씬 빨리 와 닿습니다. 그래서 때론 당연히 해야할 일도 '얼마가 든다더라'하고 수치로 환산하면 찬반양론이 분분하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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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호박은 잎도 크고 꽃도 크고 열매도 크다. 서너 개만 있으면 5인 가족이 내내 호박에 호박잎까지 두 철을 먹는데 부족함이 없다. ⓒ 김민수


세월호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정부시행령이라는 것이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인양을 할 경우에 비용이 얼마가 들 것인가에 대한 발표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금액으로 환산되는 순간, 돈과는 비교될 수 없는 생명의 가치나 의미들은 그 가치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아마도 정부 측에서는 그것을 노렸겠지요.

정부의 주장이라면 무조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이들은 엄한 유족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고, 세월호의 진상규명의 열쇠가 되는 세월호인양을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합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무엇이 경제적으로 이익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수치가 곧 정의처럼 둔갑하는 착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비용에 따라 좌고우면 해선 안 됩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생명을 존중하고 구하는 일은 무조건 하는 사회가 되야 합니다.

부정과 부패와 비리로 수조원을 날려도 용인하면서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들의 한을 풀어줄 열쇠가 될 새월호 인양비용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이들을 보면 사람같이 보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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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 열무와 배추를 섞어 뿌렸는데 아직 누가누군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둘다 어렸을 적에 솎아서 간단하게 얼가리로 부쳐먹거나 날 잡아 선지국 한 번 끓여 먹으면 그만이다. ⓒ 김민수


작년 이맘때, 아이들은 제주 여행을 기다리며 무슨 생각들을 했었을까요? 얼마나 아름다운 봄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봄이 가기도 전에 아이들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피어나지 못한 자식들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것도 아픈데, 그 억울한 죽음에 손가락질을 하고 진상규명 외침을 불경시합니다.

이게 무슨 나라란 말입니까? 살아있는 사람이 또 그렇게 죽음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려면 많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이 사회는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라는 나라도 아니고, 그런 일들을 할 수 없는 지도자라면 지도자가 아닙니다.

오십중반의 중년, 나름 호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흔적만 남은 옥상텃밭이 이렇게 쓸쓸하고 허전합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아도 봄은 이렇게 어김없이 오고, 싹도 어김없이 나온다는 사실이 당연하면서도 못내 서운합니다. 이렇게 일년 이년 지나다보면 익숙해 지는 것이겠지요.

만수를 누리시다 호상이라 할 수 있는 이별을 한 부모와의 정도 이럴진데, 피어나지도 못한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할 부모들의 마음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봄비가 종일 내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못다 핀 꽃들을 위해 하늘이 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피어나지 못한 새싹에게 마져 피어나라, 응원하는 봄비, 그 봄비에 새싹들이 삐죽삐죽 올라옵니다.
덧붙이는 글 봄비가 종일 내린 4월 14일(화), 오후에 옥상텃밭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옥상텃밭 #쑥갓 #상추 #봄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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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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