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그 말도 이 슬픔을 표현할 수 없다

[서평]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인터뷰하고 쓴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

등록 2015.04.15 15:30수정 2015.04.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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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년의 시간이 지났다. 푸른 잎과 색색의 꽃이 피어나는 봄의 기억은 이제 차갑고 검은 바닷속 기울어진 배의 형상으로 잔인하게 각인됐다. 세월이 흘러갔어도 세월이란 이름의 배는 여전히 물 속에 있고, 탑승한 사람들 중 9명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295명의 사망자를 낸 세월호 참사는 4월 16일을 잊을 수 없는 날로 만들었다.

사고가 생중계되는 순간부터 온 국민이 기울어가는 배를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전원 구조'의 속보가 오보로 밝혀진 순간에는 허탈함을, 가라앉은 선박에서 누구도 살아서 구조되지 못했다는 사실에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이후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에는 시민들이 격분하기도 했다.


그 날로부터 1년, 우리는 이제 어디쯤에 서있는 걸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을 방관하던 국가는 현재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의 텅 빈 가슴은 오늘 어떤 기억을 새기고 있을까.

세월호 참사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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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의 표지사진. ⓒ 창비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이를 기록으로 남긴 결과물이다. 본문은 당사자들이 토로하는 말과 감정의 무게를 문장으로 담아 고스란히 종이 위에 옮겨 놓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압축된 슬픔이 소리 없이 번져 가는 것 같다. 마치 읽다 보면 저릿저릿한 상실감이 손 끝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아들 시신이 나오자) "옆에서 다들 부러워 하더라고요. 이게 부러워 할 일인지. 그런데 그게 부러워요, 거기에선. (중략) 아, 미쳤구나. 뭐가 감사해. 애가 죽어서 나오는데 뭐가 감사할 일이야. 이게 미친 세상이지." (본문 29~30쪽 중에서)

눈을 감은 아이의 시신을 사진으로 본 심정은 "내가 살아온 50년이란 세월 중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울컥 감정이 복받친다. 무너져내린 가슴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수백 개의 우주가 사라져 버린 사건. 각각의 사연들은 떠나간 아이들에게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애절하게 들려준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사를 다정하게 받아주지 못한 것, 용돈을 더 주지 못한 것, 새 신발을 사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서 울었다는 이야기들. '전원구조' 소식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가 오보임이 밝혀지고 엉망이 된 삶. 그 후로 지금도 끝나지 않은 상처들까지.

"딸 장례를 치르고 와보니 소포가 하나 와 있었어유. 풀어보니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책들인듸 소설책과 참고서였어유. 그걸 보고 엄청 울었네유. 그 책들을 샀을 때는 열심히 살려고 그런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겄시유." (울음) (본문 96쪽 중에서)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을 지언정 독자는 짐작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간 두 글자, '울음'이 그 짧은 단어보다 더 많은 것을 눌러놓은 감정의 묘사라는 것을. 쌓이고 쌓인 후회가 결국 넘쳐 흐르고, 파편이 된 기억들에 찔린 듯이 아파서 터져나온 눈물을 새긴 글이라는 걸.

사고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짚는 책

본문은 유가족의 증언으로 사고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짚는다.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사고가 일어난 이후 벌어진 사건들을 분 단위까지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한 순간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마주한 상황은 잔인하게도 닮았다. 수학여행을 보낸 아이들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자, 부모들이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지 결정해야 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가 밀려왔다. 시신 수습 초기에는 '아이의 얼굴을 다시 눈에 담고자' 보았다가 망가진 얼굴에, '기억 속의 아이 모습 그대로 남기고자' 눈을 감았다가 마지막 모습이었다는 생각에 흐느낀다.

항암치료를 받던 엄마는 자기 없이 살아갈 딸을 걱정하던 와중에 아이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열한다. 건강하던 아이가 허망하게 먼저 가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에어포켓의 존재와 산소 투입, 구조인력 등 언론에 발표된 사안들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유가족들의 간절한 기다림은 실망으로 변해간다. 뒤집힌 배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점차 사망자로 돌아오면서 실망은 분노가 된다.

그 날, 4월 16일 그날, 진짜 최소한의 노력만 보여줬어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안 해요. 그런데 한 명도 안 구했잖아요. 그때 그 사람들 행동은 급한 게 하나도 없었어요. 의문투성이에요. 이제는 인양도 제대로 안 해줄 것 같아요. 그럼 다 우리 몫이에요. (중략) 그럼 애들도 못 건지고 증거도 다 사라지고 돈만 없애는 거예요.

그럼 국민들이 또 뭐라고 하겠어요. '그만큼 건져줬음 됐지, 또 돈 들이게 하네', 그런 식으로 우리만 자꾸 몰아가요. 부모들이 어느정도 마무리를 짓고 사회활동을 하게 해줘야 되는데, 이 정부는 부모들까지 몰아붙여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어요. 그래놓고 '유족들이 보상금을 몇억을 받았다더라' 그런 식으로 말해요. (본문 130쪽 중에서)

4월 16일, 잊지 않겠습니다

3박4일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은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다.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 16일부터 그 해 12월까지, 시민 기록단 작가위원회는 학생 희생자의 유가족과 동고동락하며 13명의 인터뷰를 기록으로 남겼다. 유가족의 애타는 기다림, 힘 없는 개인이 느끼는 무력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충격에 얻은 트라우마도 책에서 볼 수 있다. <미생>의 윤태호 작가, <아만자>와 <D.P>의 김보통 작가 등 8명이 그린 삽화도 본문에 포함됐다.

안전불감증에 빠진 사회는 1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돈에 눈 먼 사람들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는데 그 피해자들에게도 돈 문제만을 말하고 있다. 잔인한 참사의 여파는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중이다. 본문의 표현처럼, "4월 16일은 떠나온 과거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가다가도, 현실을 둘러보면 마치 다시 그 날로 되돌아간 듯하다. 이런 상황을 두고 김훈 작가의 세월호 기고문을 인용하자면, 세월호 참사는 '한 시대 전체의 도덕적 침몰과 국가기능의 파탄'인 셈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이제는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수백 개의 금요일에 관한 기록들이다. 희생자 유가족의 내면을 세밀하게 적어낸 글을 읽으면 가슴에 통증이 몰려온다. 책의 '여는 글'에 나온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영혼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에 동의가 된다. 작가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길 위로 나선 사람들의 기억을 되짚은 것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이제 그 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의 첫걸음이 힘겨운 기록이었다면, 다음 발자국은 독자들이 넘기는 책장과 사람들의 기억이 아닐까. 4월 16일을 그저 누군가에게서 '재회의 금요일을 앗아간 날'이 아니라, 슬프지만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 날'로 떠올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물어야만 한다. '왜'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으로 끝나는 <금요일엔 돌아오렴>의 이야기가, 당신을 이끌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금요일엔 돌아오렴>(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지음/ 창비 / 김보통 윤태호 외 6인 그림 / 2015. 1. 16. / 1만 2000원)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창비, 2015


#금요일엔 돌아오렴 #세월호 참사 #4월 16일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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