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다"... 임신한 막내 여동생, 뭐든 해주고 싶었다

[입양, 안에서 그리고 밖에서 보기④] 임신 4개월을 지나는 여동생과 맛있는 저녁식사

등록 2015.05.08 20:26수정 2015.05.0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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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고 싶어?"
"응, 그냥. 아무거나 사줘."
"생각해봐. 대전에 자주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맛있는 거 먹어야지."
"알았어. 생각해볼게."


지난 4월 말, 막내 여동생과 통화를 했습니다. 이제 임신 4개월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습니다. 임신을 하면 어머니가 더욱 그리울 것 같았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느끼는 감정도 있고, 몸조심하라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살가운 어머니 말입니다. 

임신 4개월 지나는 막내, 엄마의 손길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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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여동생과 함께 먹는 쇠고기 여동생과 멀리 사는 관계로 자주 들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5월 1일, 우리 네식구 그리고 여동생 부부와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 김승한


우리 막내는 친정이라고 해봐야 3명의 오빠들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한 명은 해외에 있고 한 명은 울산에 있습니다. 큰 오빠가 근처에 있긴 하지만, 밤낮을 거꾸로 사는 직장이라 가끔 들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동생의 임신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는 말은 해 줬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데다 오빠들이나마 자주 들러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지난 1일, 우리 네 식구는 대전에서 동생 부부를 만나 소고기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제일 먹고 싶은 걸로 골라."
"정말? 그래도 돼 오빠? ​"
"정말이라니까. 뭐 먹고 싶어?"
"음, 생각 좀 해보고."

아직은 배가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걸음걸이가 임산부답더라고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하는 생각에 마음 속으로 울컥합니다. 35년 전, 한겨울 매서운 바람을 등지고 우리 가족이 된 막둥이! 벌써 이렇게 커서 결혼도 하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살고 있고, 그들만의 2세를 가졌습니다. ​


동생은 제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임신 중 아프면 어떻게 하며, 음식은 뭘 먹어야 하는지, 병원은 어떨 때 가야 하는지 뭐 이런 겁니다. 저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임신 중에는 태교가 중요해. 모차르트 음악을 즐겨듣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그림,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해. 그러면 말이지, 나중에 우리 ○○이 같은 아들이 나와. 말도 정말 안 듣고 말썽만 피우는~"

하면서 ​첫째 아들놈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습니다. 그러자 아들도 한 마디합니다.

"네, 거기까지! 아빠, 그만 하세요. 머리 아파요."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습니다. ​막둥이 역시 처음엔 주의 깊게 듣더니만 내가 첫째 아들에게 한 대 쥐어박는 것을 보고 크게 웃습니다.

딸을 원하는 막내, 갖고 싶은 건 엄마와 딸의 관계

"병원에서는 뭐래? 아들이래, 딸이래?"
"아직 뭐라 얘기가 없네. 근데 오빠! 난 아들보다 딸이 좋아."
"아들도 좋아. 듬직하고 아빠랑 레슬링도 하고 발차기도 하고 말이야. 좀 힘들긴 하지만. 흐흐."
"그래도 난 딸을 갖고 싶어."

나는 추측을 해봅니다. 길을 걷다 보면 흔히 엄마와 딸이 팔짱을 낀 채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녀 간의 다정한 모습! 막둥이는 이 모습이 부러웠을 겁니다. 아마도 자기가 그리워했던 엄마의 역할을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엄마와 딸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성 말입니다.

​여동생보다 9살이 많은 나도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러나 따스했던 느낌만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합니다. 말썽을 피워 매도 많이 맞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엄마의 등에 업혀 집에 오던 길이 참 포근했습니다.

마을 체육대회에서 엄마와 내 품 사이에 풍선을 넣고 힘껏 껴안아 터뜨렸을 때 엄마의 가슴은 너무도 따뜻했습니다. 모내기할 때나 감자 캘 때면 아들이 어디에 긁힐까 봐, 벌레에 물릴까 봐 꼼꼼히 챙겨주던 손길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내겐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입니다.

자녀 교육? 부모가 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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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남동생과 찍은 사진 어릴 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옛날 사진이 많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경남 진해에서 지금은 인도에 살고 있는 남동생과 찍은 사진입니다. ⓒ 김승한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자녀 교육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주제의 특강을 보았습니다.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특강이었습니다. 참석자의 질의와 강사의 문답으로 진행된 이 강의의 주된 내용은 바로 이겁니다.

'자녀 교육은 따로 필요가 없다. 부모가 잘 살면 자녀도 잘 산다.'

부부 관계가 좋은 부모 아래서 자란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는 아이 집에는 문제가 있는 부모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부모님의 조언이 더해져 스스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책임감을 갖고 임할 수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강사의 모습에서 40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깨달은 노하우가 묻어납니다. 그렇게 볼 때 제가 지금 연재 중인 기사 <입양 밖에서 보기, 안에서 보기>의 방향은 정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1편에서는 영화 <허삼관>을 주제로 가족이란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관련 기사 : '핏줄'이 이어져야만 '가족'일까요?). 가족은 혈연뿐 아니라 입양, 재혼, 및 기타 관계로 이뤄지며 대개 한 집에서 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그 구성원 안에서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부딪히며 감정 싸움도 생기죠. 자녀의 진로나 직장,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다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모든 형태의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2편과 3편에서는 입양했던 막내 여동생이 다시 보육원으로 가는 사건, 이후 가정의 심각한 불화로 가출을 감행한 우리 형제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관련 기사 : "업둥이 잘못 들여서 엄마가..." /  관련 기사 : 파양된 여동생... 30년 지났지만, 악몽에 시달리다) 저는 3편까지 연재한 후, 이 특강을 봤을 때 딱 중요한 한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부모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겁니다. 내 핏줄이 섞인 자식이든, 입양한 자식이든, 재혼으로 결합한 배우자의 자녀든 간에 말입니다.

부부는 자녀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부간의 문제는 '칼로 물 베기'일 수 있지만 자녀에게는 상처가 됩니다. 부부가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그들에겐 잠깐의 악몽일 수 있지만, 자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깁니다. 이 아픔은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후에 사회 생활과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데 나쁜 영향을 줍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입양과 재혼으로 만들어진 우리 가정이 해체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우리 형제들은 아직도 끔찍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순간 순간 노여움이 솟아오릅니다. 이 생채기는 아마 생이 다할 때까지 아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기억 저 편에 밀어 넣고 굳이 꺼내려 하지 않지만 가끔 무의식 중에 나를 분노케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가족은 커다란 힘이 됩니다. 가족은 우리가 치유해야 할 곳이기도 하지만 치유받는 쉼터이기도 합니다.
#가족 #입양 #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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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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